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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조직문화와 위기론: 20년차 엔지니어의 시각

by Heedong-Kim 2024. 10. 20.

최근 삼성전자에 대한 위기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주가는 오랜 기간 5만 원대에 머물며, 투자자들과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리더로서 오랜 기간 성공을 이어왔던 삼성전자가 이처럼 주춤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조직문화, 기술 전략, 그리고 경영적 결정의 문제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반도체 부문의 조직 문화입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첨단 기술 혁신을 통해 반도체 시장에서 막대한 성과를 이루어왔지만, 최근 들어 도전과 혁신을 억제하는 내부적인 문제들이 표면화되고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문화와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는 기술적 진보를 막고 있으며, 기술 개발보다는 재무적 안정성과 리스크 최소화를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20년간 근무한 한 엔지니어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삼성전자의 현재 위기를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고, 그 내부 문제들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토론 문화의 부재, 재무 라인의 강세, 그리고 보신주의로 인한 혁신 저해라는 세 가지 핵심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가 어떻게 다시 글로벌 리더로서의 입지를 회복할 수 있을지 제언하고자 합니다.

 

1. 토론 문화의 부재: 도전 대신 안전한 길을 선택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은 한때 치열한 토론 문화를 자랑하며 기술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2010년대 초반까지는 문제를 발견했을 때, 실무자들 간의 활발한 토론을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가설을 세우고 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때는 각 방법의 장단점을 논의하고, 실험 결과와 가설이 맞지 않으면 대안을 모색하며 끊임없이 기술적 진보를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열린 토론을 통해 기술적 도전이 가능했고, 새로운 시도에 대한 실패 역시 배움의 과정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와 같은 기술적 토론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조직은 점차 실패를 두려워하는 문화를 형성했고, 이는 도전을 억제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실무자가 새로운 아이디어나 개선점을 제시하면, 그 의견이 상부로 올라가기 전에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는 관리층이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한 결과이며, ‘절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되면서 실무자들이 새로운 도전보다는 기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기술적 난이도나 불확실성이 높은 프로젝트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한 엔지니어는 "실패를 두려워해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는 대신, 더 쉬운 길만을 선택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기술적 혁신을 저해하며, 삼성전자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는 큰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면 결국 경쟁사에 추월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몇 년간 반도체 산업에서 경쟁사들이 빠르게 도약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기술적 도전에 대한 주저와 선택과 집중의 부족으로 상대적으로 느린 성장을 보였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 재무 라인의 강세와 의사결정의 문제

삼성전자의 조직문화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기술 부문보다 재무와 법무 부문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로 변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기술 기반 의사결정보다 재무적 안전성과 리스크 최소화를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부문에서는 기술적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결정조차 재무 라인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이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은 기술적 용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기술적 배경지식이 없는 경영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초등학생 수준으로 풀어서 작성해야 한다는 지침을 받습니다. 이는 기술적 전문성을 요구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기술 전문가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게 만들며,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지고, 결과적으로 중간에서 정보가 왜곡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보고 과정이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본래의 문제나 리스크는 점점 희석되고, 결정권자는 변형된 정보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또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기된 리스크가 지나치게 부각되면 "이 리스크를 줄여라"는 지시가 내려오고, 그 지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실질적 위험 요소는 가려지거나 축소됩니다. 그 결과, 현실적인 리스크 분석이 무의미해지고, 비현실적인 목표가 설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토론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고, 결국 자발적 창의성을 잃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의사결정 과정의 왜곡은 기술 혁신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경쟁사 대비 느린 대응 속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전자가 과거 애플과의 협력 기회를 놓친 사례도 이러한 재무적 의사결정의 폐해를 보여줍니다. 애플이 삼성전자 시스템LSI의 모뎀을 아이폰에 탑재하려 했지만, 경영진이 ‘갤럭시와 경쟁 관계인 아이폰에 부품을 공급하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판단으로 거래를 거절했습니다. 당시의 결정을 통해 삼성전자는 모뎀 시장에서 퀄컴을 견제할 기회를 상실했고, 이는 장기적으로 삼성전자의 성장 가능성을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3. 변화를 막는 조직의 보신주의

삼성전자의 위기론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조직 내의 보신주의 문화입니다. 이는 특히 중간관리층에서 두드러지며, 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거나 책임을 지는 대신, 위험을 최소화하고 자신의 입지를 지키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중간관리자들은 실무자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시도를 반영하기보다는, 기존의 안전한 방식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는 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며, 실무진의 창의적 접근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실제 인터뷰에서 언급된 사례로, 한 엔지니어는 경계현 전 사장이 삼성전자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했을 때, 중간관리자들이 반발하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경계현 전 사장은 교육과 시스템 구축을 통해 기술과 조직을 혁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아래의 임원과 부서장들은 지난 10년간 형성된 보신주의 문화를 따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어렵고 부담스럽다”**고 느끼며, 변화 자체를 거부하거나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이로 인해 실무진은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경영진의 전략적 비전을 실현하려면 중간관리층의 지지가 필수적이지만, 그들은 오히려 변화를 막는 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현재 상황은 이러한 보신주의 문화가 심화되면서 발생한 결과입니다. 실무진들은 더 이상 창의적 토론이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않으며, 경영진은 **"왜 실무자들이 토론을 하지 않는가?"**라고 의문을 품지만, 이는 그들 스스로가 과거에 실무진의 의견을 무시하고 거부했던 결과입니다. 이로 인해 실무진은 **"어차피 우리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조직 내에서 토론과 자율성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보신주의 문화는 기술 혁신의 저해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중간관리자들은 중요한 결정을 미루거나, 자신이 책임지지 않기 위해 보고만 올리면서 상부의 결정만을 기다립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실무자들은 더 이상 도전할 의지를 잃고, 경영진의 기대와 실무진의 실제 상황 간의 괴리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조직이 자발적으로 도전하고 혁신하려는 문화로 돌아서지 않는 한, 삼성전자가 다시 성장 궤도에 오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4. 삼성전자의 미래를 위한 제언

삼성전자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외형적 변화나 단기적 성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회사는 장기적인 혁신을 위해 근본적인 조직문화 개혁이 필요하며, 이는 경영진부터 중간관리자까지의 모든 계층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첫 번째로, 중간관리자들의 대거 개편이 필수적입니다. 현재의 중간관리자들은 과거 10년간의 보신주의 문화 속에서 발탁된 인물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자리보전위험 회피를 우선시하며, 실질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고 보고만 올리는 구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로 인해 실무진은 리더십의 부재를 느끼고 있으며,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조직의 중간관리자는 팀 리더로서의 책임감과 권한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팀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 그 의견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줘야 합니다. 팀장 본인이 **"난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로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상황에서는 팀원들이 도전할 동기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팀장부터 실무자들까지 자율성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가 필요하며, 이는 경영진이 적극적으로 중간관리자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그들의 책임을 명확히 할 때 가능합니다.

 

또한, 경영진은 실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실무진들은 그동안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끼며, 경영진의 결정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 내에서 **“어차피 우리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는다”**는 무력감이 팽배해졌습니다. 경영진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무진들과의 적극적인 소통 채널을 확보하고, 토론 문화를 다시 재건해야 합니다. 새로운 도전을 장려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배운 교훈을 조직 전반에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다시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최근 삼성전자가 HBM3 공급을 놓치고, HBM4로 한 단계 도약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 그 일환입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를 뛰어넘는 도전입니다.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만큼 심각한 준비가 필요하며, 충분한 훈련과 경험을 가진 인재들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SK하이닉스와 같은 경쟁사들이 빠르게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는 이에 맞서 기술적인 기초부터 단단히 다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