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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 생각, 에세이21

쉰 살에야 비로소 나에게 이기적이 되는 법을 배웠다 쉰 살이 되어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나보다 남을 먼저 보는 데 써 왔다는 것이다. 사소한 장면들부터 그랬다. 함께 밥을 먹으러 가면, 메뉴판은 늘 형식적인 존재였다. 모두가 짜장면을 시키면, 나는 굳이 내 입맛을 확인해 보지 않았다. 볶음밥이 더 먹고 싶어도, 냉면이 당겨도, “저도 짜장면이요”라는 말은 너무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왔다. ‘괜히 혼자 다르게 시켜서 분위기를 깨면 어쩌지.’ 그 한 줄기 생각이 늘 나를 조용한 다수의 편으로 밀어 넣었다. 돌아보면, 그 배경에는 오래된 공기가 깔려 있다. 전체의 조화를 위해 개인은 조금쯤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고 배웠던 시절. 집안에서는 장남이니까 참고, 양보하고, 먼저 나서는 대신 뒤에서 맞추는 것이 미덕이라고 들으며 자랐다. .. 2025. 11. 23.
책을 쓰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책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된 과정이다. 한 문장을 적기 위해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고,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때로는 감추어두었던 민낯을 마주해야 한다. 그런데도 책을 써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누구나 자연스럽게 경직되고, 익숙한 방법에 안주하게 되며, 결국 스스로도 모르게 과거의 경험만을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려는 상태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즉, 책 쓰기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어선’이 된다. 꼰대란 변화를 두려워하고, 익숙한 세계 안에서 자신이 쌓아온 경험만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내세우는 사람을 뜻한다. 그는 말하고 가르치는 일에 익숙하며, 자신의 견해만이 정답이라고 확신한다. 타인의 이야기는 듣는 척할 뿐, 마음속에는 이미 자신의 말로 되돌리기 위한 .. 2025. 11. 20.
불광불급, 온전히 몰입하는 삶의 순간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는 이 말은 단순한 과장이나 열정의 미사여구가 아니다. 한 인간이 어떤 목표를 향해 기꺼이 자신을 던졌을 때 비로소 닿게 되는 지점, 그 깊은 몰입의 경지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이다. 어떤 일에 집중하고, 빠져들고, 결국 미쳐서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부터 세계는 달라 보인다. 똑같은 환경, 똑같은 사물, 똑같은 사람들인데도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모든 장면이 목표를 향한 길 위에 연결된다.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갈수록,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결들이 보이고, 이전에는 귀에 닿지 않던 소리가 들린다. 인간은 그렇게 몰입할 때 변화한다. 2000년대 초반, LG전자에 입사해 인화원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던 날이 있었다. 서울역에 내리자.. 2025. 11. 16.
성장은 계단처럼 온다 성장은 늘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직선 그래프처럼 꾸준히 올라가는 길을 상상하지만, 현실의 성장은 그와 거리가 멀다. 수영을 하며 깨달아 온 과정이 그 대표적인 예다. 10년째 아침마다 물속을 가르며 헤엄치지만, 초창기에는 자유형의 호흡 하나조차 버거웠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몸은 물에 가라앉고, 마음은 매번 포기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어느 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왔다. 호흡이 자연스러워지고, 물살 위로 몸이 가볍게 떠올랐다. 팔과 다리는 힘이 아닌 리듬으로 움직였고, 나는 그제야 ‘수영이 되는 순간’을 만났다. 이 변화가 선형적이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오늘 조금 나아졌으니 내일도 조금 더 나아지고, 다음 주에는 더 잘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면 .. 2025. 11. 15.
가을 예찬 가을은 색의 계절이다.하늘은 높고 푸르며, 나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옷을 갈아입는다. 버스를 타고 시민대학으로 향하는 길, 창밖에 펼쳐진 풍경은 매일 달라졌다. 어제는 푸른 잎이었는데, 오늘은 붉고 노랗게 물들어 있다. 가지 끝에는 햇살이 스치고, 바람 한 줄기에 잎사귀가 부드럽게 흩날린다. 같은 나무라도 빛깔이 다르고, 같은 거리라도 색의 깊이가 다르다. 그러나 이 모든 차이들이 모여 하나의 조화로운 풍경을 완성한다. 자연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언제나 변화하고, 끝없이 다채롭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이 유지되는 방식이다. 생명의 기원 이후, 진화의 모든 과정은 ‘다양성’이라는 이름의 실험이었다. 그러므로 가을의 풍경은 단순한 계절의 변주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본질이 다양함을 통해 완성된다는 자연의 선.. 2025. 11. 9.
조언하지 않는다 스무 살이 넘은 어른에게 나는 더 이상 조언하지 않는다.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게임이 있고, 자신만의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그가 어떤 수를 두든,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건 그의 몫이다.그 선택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을 감당하며 배우는 과정 속에 인생의 진짜 의미가 깃든다.그런데 내가 뭐가 된다고 그 알량한 조언을 하겠는가. 예전엔 그랬다. 누군가의 선택이 너무 위험해 보이면 말려야 했다.수년 전, 한 동료가 가진 전 재산을 바이오주식에 쏟아부었을 때도 그랬다.나는 그에게 분산 투자와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다.그 결과는 놀라웠다. 시간이 흘러 원금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지금은 더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 2025. 11. 9.
🗑️ 나는 당신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 관계 속에서 나를 지키는 현명한 심리 방어 기술혹시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지칠까?”라는 질문을 반복하고 있진 않나요?처음엔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며 관계가 깊어지는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대화가 ‘일방적인 감정 배출’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 적 있을 것입니다. 상대는 후련해졌지만, 나는 공허하고 무겁습니다.이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있습니다.감정 쓰레기통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남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방치한 결과입니다. 이 글에서는 관계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심리적 인식과 방어 전략을 단계별로 살펴봅니다. 💡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 된 심리학적 이유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반복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좋은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는 강한 내적 .. 2025. 11. 7.
영포티, 젊음의 그림자와 성숙의 길목에서 영포티(Young Forty). 한때는 세련된 자기관리의 상징처럼 들리던 단어다. 하지만 요즘 그 말에는 묘한 비아냥이 섞여 있다. 젊은 세대의 언어와 유행을 좇으며, 때로는 그것이 진짜 ‘젊음’이라고 착각하는 중년들. 그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버렸다. 패션을 젊게 입고, 최신 유행의 말투를 쓰고, 젊은 감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진짜 젊음은 옷의 색깔이나 외모의 윤기에 있지 않다. 그것은 변화와 성찰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낯선 세대와의 거리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유연함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영포티는 결국 ‘성숙하지 못한 성장’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순간을 맞이한다. 사회에서의 역할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히고, 가정에서도 아버지나 남편으로서의 책임이 익숙해.. 2025. 11. 6.
글쓰기는 늘 어렵다. 글쓰기는 늘 어렵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고통스럽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흘러가는데, 막상 글로 옮기려 하면 그 생각들은 사라지고 만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적을 때마다 내 속의 무언가가 드러난다. 그래서 글쓰기는 단순히 표현의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다.그것이 에세이든 소설이든, 글 속에는 언제나 ‘나’의 흔적이 남는다. 부정하려 해도 피할 수 없다. 문체와 어투, 말의 온도 속에는 내가 살아온 시간과 마음의 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버스 안에서 스치는 사람들의 짧은 대화 속에서도 그 사람의 여정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듯이, 글에는 언제나 그 사람의 진심이 반영된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의 민낯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래서 힘들다.특히 우리 세대, 이른바 X세대.. 2025.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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