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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신호의 비밀: 스펙트럼 분석기에 대한 5가지 놀라운 사실

by Heedong-Kim 2025. 12. 27.

매일 아침 스마트폰 알람으로 잠에서 깨고, Wi-Fi에 연결해 뉴스를 확인하며, 운전 중에는 라디오를 듣습니다. 우리 삶은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전파 신호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신호들이 실제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측정될 수 있는지 궁금해본 적 있으신가요?

이 보이지 않는 신호의 세계를 우리 눈앞에 시각적으로 펼쳐주는 강력한 도구가 바로 '스펙트럼 분석기'입니다. 언뜻 복잡하고 전문가의 영역처럼 보이지만, 그 작동 원리 속에는 놀랍고도 반직관적인 비밀들이 숨어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전문가들만 알 법한 스펙트럼 분석기에 대한 5가지 놀라운 사실을 파헤쳐 보며,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던 신호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가 보겠습니다.

1. 모든 신호는 숨겨진 사인파의 합창이다: 시간에서 주파수로

우리가 신호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오실로스코프 화면에 나타나는 물결 모양의 파형일 것입니다. 이는 '시간 영역(Time Domain)'에서 신호를 보는 방식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신호의 크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것은 신호의 절반만 보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 신호 분석을 가능하게 한 개념적 도약은 바로 푸리에 이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신호(그림 1-1)라도 실제로는 여러 개의 단순하고 순수한 사인파(그림 1-2)가 합쳐진 것에 불과합니다. 이는 마치 아름다운 음악 화음 하나가 '도', '미', '솔'과 같은 개별 음표들의 합으로 이루어진 것과 같습니다.

스펙트럼 분석기는 바로 이 숨겨진 구성 요소를 찾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시간의 흐름 대신, 신호가 어떤 '주파수' 성분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각 성분의 세기는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주파수 영역(Frequency Domain)'의 관점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신호에 불필요하게 섞인 고조파 성분이나 왜곡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복잡한 파형을 단순한 사인파의 '레시피'로 분해해 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호 분석의 우아함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2. 첨단 측정 장비의 심장은 AM 라디오와 같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최첨단 스펙트럼 분석기의 내부 구조가 할아버지의 낡은 AM 라디오와 거의 똑같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놀랍게도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스펙트럼 분석기는 '수퍼헤테로다인(superheterodyne)'이라는 방식을 기반으로 설계되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아는 AM 라디오의 핵심 작동 원리와 동일합니다.

두 기기의 블록 다이어그램을 나란히 놓고 보면 로컬 오실레이터(LO), 믹서(Mixer), 중간 주파수(IF) 필터 등 핵심 부품들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 두 기기 모두 외부에서 들어온 높은 주파수의 신호를 믹서에서 내부의 LO 신호와 혼합하여, 다루기 쉬운 중간 주파수(IF)로 변환('헤테로다인')한 뒤 처리하는 원리를 사용합니다.

물론 차이점도 명확합니다. 라디오의 최종 출력은 스피커를 통해 소리로 나오지만, 스펙트럼 분석기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그래프로 보여줍니다. 또한 라디오는 손으로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추지만, 스펙트럼 분석기는 정밀한 전자 제어를 통해 원하는 주파수 대역을 빠르고 정확하게 훑습니다. 이는 거의 100년 된 개념이 여전히 현대 초정밀 계측의 심장부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잘 만들어진 아키텍처의 영속적인 힘을 증명하는 경이로운 사례입니다.

3. 더 자세히 보려면, 기꺼이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스펙트럼 분석기에는 분해능 대역폭(Resolution Bandwidth, RBW)이라는 중요한 설정값이 있습니다. 이는 일종의 '주파수 돋보기'와 같습니다. RBW 값을 좁게 설정할수록 돋보기의 배율이 높아져, 서로 매우 가깝게 붙어 있는 두 개의 주파수 신호를 명확하게 분리해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직관적인 대가가 따릅니다. 스위프 스펙트럼 분석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피할 수 없는 트레이드오프 중 하나는 바로 측정 시간입니다. 스펙트럼 분석기의 스위프 시간(Sweep Time, ST)을 결정하는 공식은 ST = k (Span) / RBW² 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RBW가 분모에서 '제곱'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엄청납니다. 만약 분해능, 즉 돋보기 배율을 10배 높이기 위해 RBW를 10분의 1로 좁히면, 측정 시간은 10배가 아니라 그 제곱인 100배로 늘어납니다. 1초 걸리던 측정이 1분 40초가 되는 셈입니다. 바로 이 혹독한 트레이드오프 때문에 엔지니어들은 이 제곱의 페널티를 '속이기' 위해 고속 푸리에 변환(FFT) 기반 처리 방식과 같은 대안 기술을 개발하여 측정 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했습니다. 결국 정밀도와 속도 사이의 이 근본적인 상충 관계는 엔지니어들이 항상 최적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 고심하게 만드는 중요한 현실입니다.

 

 

4. 화면의 노이즈는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정확히 2.5dB만큼)

스펙트럼 분석기 화면의 바닥에 자글자글하게 깔리는 노이즈 신호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우리는 보통 이 노이즈 레벨을 장비의 측정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 화면에 보이는 그 노이즈 평균값이 실제보다 항상 더 낮게 표시되고 있다면 어떨까요?

스펙트럼 분석기가 랜덤 노이즈(random noise)를 측정하여 로그(log) 스케일로 화면에 표시할 때, 표시되는 평균 노이즈 레벨은 실제 신호의 RMS(실효치) 값보다 약 2.5dB 낮게 나타납니다. 이는 장비의 오류가 아니라, 신호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측 가능한 물리적 현상입니다. 입력된 가우시안 분포의 노이즈 신호가 내부 필터를 거치며 레일리 분포로 바뀌고, 이것이 로그 증폭기를 통과하면서 평균값이 실제보다 체계적으로 낮게 계산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며, 이를 단순한 오류가 아닌 '보정 값'으로 인지하고 측정 결과를 해석합니다. Keysight의 관련 문서에서 명시하듯, 이는 알려져 있고 보정 가능한 특성입니다.

In the log mode, then, the mean or average noise is displayed 2.5 dB too low. Again, this error is not an ambiguity, and we can correct for it.

이는 측정된 데이터의 이면과 도구의 고유한 특성까지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며, 진정한 전문성은 보이는 숫자를 넘어 그 의미를 해석하는 데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5. 측정 장비가 스스로 왜곡을 만들어내는 이유

측정의 세계에는 역설적인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측정 행위 자체가 측정 대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펙트럼 분석기는 이 역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비 중 하나입니다.

스펙트럼 분석기의 핵심 부품인 입력 믹서(input mixer)는 주파수를 변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선형(nonlinear) 소자로 설계되었습니다. 이는 고전적인 엔지니어링 트레이드오프의 완벽한 예시입니다. 믹서가 주파수 변환이라는 핵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바로 그 비선형성 때문에, 믹서 자체가 입력 신호에 없던 새로운 왜곡 성분(고조파, 상호변조 왜곡 등)을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즉, 측정하려는 신호의 순수성을 측정 장비가 스스로 훼손하는 셈입니다.

이로 인해 화면에 보이는 왜곡 신호가 원래 신호에 포함된 것인지, 아니면 분석기 내부에서 생성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엔지니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단하면서도 기발한 '감쇠기 테스트(Attenuator Test)'를 사용합니다. 입력 감쇠기를 10dB 증가시키면, 내부 회로는 이를 보상하기 위해 자동으로 IF 게인을 10dB 높입니다. 이때 외부에서 들어온 실제 왜곡 신호는 디스플레이에서 동일한 레벨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믹서에 도달하는 전력에 따라 달라지는 내부 생성 왜곡 신호는 감쇠 증가로 인해 그 원천이 약해져 디스플레이에서 레벨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이 간단한 조치 하나로 신호의 결함과 장비의 결함을 명확히 분리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대 기술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완화하는 데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예를 들어, 구형 아날로그 로그 증폭기의 정확도가 ±1dB 영역이었던 반면, 최신 디지털 IF 기술은 ±0.07dB 수준의 월등한 충실도를 자랑합니다. 이는 엔지니어들이 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스템에 도입한 '결함'을 얼마나 영리하게 관리하고 극복하는지를 보여주는 심오한 역설입니다.

결론: 신호에 대한 새로운 관점

지금까지 우리는 스펙트럼 분석기에 숨겨진 5가지 놀라운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신호가 사인파의 합이라는 사실부터, 첨단 장비가 AM 라디오와 닮았다는 점, 정밀도와 시간의 상충 관계, 화면에 표시되는 값의 숨은 의미, 그리고 스스로 왜곡을 만드는 측정의 역설까지.

이를 통해 스펙트럼 분석기라는 도구가 단순히 신호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우리가 신호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에 깊이를 더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는 기술의 이면에는 이처럼 깊은 과학적 원리와 현실적 타협이 공존합니다.

다음번에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그 작은 기기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신호들의 보이지 않는 합창과, 그것을 측정하기 위한 엔지니어들의 깊은 고민을 상상해볼 수 있겠습니까? 신호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이미 이전과 달라졌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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