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입부: 정보 과잉 시대의 역설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해졌습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정교한 정보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손가락 하나로 방대한 지식에 접속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 세상은 갈수록 무질서와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것일까요?
세계적인 사상가 유발 노아 하라리는 이 역설의 원인을 '정보의 오해'에서 찾습니다. "정보는 진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의 아주 작은 부분집합일 뿐입니다." 현대의 정보 기술은 우리에게 진실을 전달하는 대신 '정크(Junk) 정보'를 홍수처럼 퍼뜨려 우리의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진실을 찾기 어려워지는 이 불확실성의 시대, 하라리의 예리한 통찰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본질이 무엇인지 분석해 보겠습니다.

2. 지능(Intelligence)은 지혜(Wisdom)가 아니다
하라리는 현대 사회가 '슈퍼 인텔리전스'를 만드는 데 집착하며 지능과 지혜를 혼동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지능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현명한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지능적인 존재였던 인간은 동시에 가장 거대한 망상(Delusion)에 빠지는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침팬지나 코끼리보다 훨씬 똑똑하지만, 그 어떤 동물도 믿지 않는 허구의 이야기를 믿고 그를 위해 타인을 살상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침팬지나 개는 절대 믿지 않을 망상을 믿습니다. 제가 온 중동 지역에서는 다른 부족 사람들을 죽이면 죽은 뒤에 천국에 가서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이라 믿으며 서로를 살상합니다. 그 어떤 침팬지도 이런 것을 믿지 않지만, 지능적인 인간은 믿습니다."
우리가 개발 중인 AI가 인간의 지능을 능가할 때, 그것은 인류를 구원하는 지혜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슈퍼 망상'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지능은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이지만, 그 목표가 옳은지 판단하는 지혜가 없다면 우리는 더 효율적으로 파멸에 이를 뿐입니다.



3. 예산안이 증명했던 평화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
21세기 초반, 인류는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의 시대를 구가했습니다. 하라리는 그 증거로 철학적 담론이 아닌 '정부 예산안'을 보라고 말합니다. 예산은 그 사회의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의 회귀: 지난 수천 년간 로마부터 중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가는 예산의 50% 이상을 군사비에 썼습니다.
- 21세기의 기적: 2000년대 초반 전 세계 평균 군사비 지출은 **6~7%**로 급감했고, 보건비 지출은 **10.5%**까지 올라갔습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간호사가 병사보다 더 중요해진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가자 지구의 갈등은 이 소중한 금기를 깨뜨리고 있습니다. 힘이 있으면 이웃 나라를 정복해도 된다는 '제국주의적 야욕'이 부활하면서, 인류는 다시 의사와 간호사에게 쓸 돈을 미사일과 병사에게 쏟아부어야 하는 비극적인 '새로운 무질서'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4. 신뢰의 대이동: 유로화 지폐에 인간이 사라진 이유
민주주의의 본질은 '대화'이며, 대화의 기반은 '신뢰'입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사이 우리는 인간 기관에 대한 신뢰를 잃고 알고리즘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습니다.
하라리는 이를 유로화(Euro) 지폐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보통의 지폐에는 그 나라가 존경하는 시인, 과학자, 정치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유로화 지폐에는 인간이 없습니다. 오직 실존하지 않는 상상 속의 다리와 창문, 문만 그려져 있을 뿐입니다.
"유럽 국가들은 누구를 지폐에 넣을지 합의할 수 없었습니다. 헝가리가 아틸라를 넣으려 하면 이웃 나라가 반대하고, 나폴레옹을 넣으려 하면 다른 국가들이 불쾌해했기 때문입니다. 인간 영웅에 대한 합의, 즉 인간적 신뢰를 쌓지 못한 시스템은 결국 실체 없는 다리만 그리게 됩니다. 벽이 없는 집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기자나 은행원을 믿지 않습니다. 대신 소셜 미디어의 뉴스 추천 알고리즘을 믿고, 중앙은행의 화폐 대신 알고리즘이 만든 암호화폐를 신뢰합니다. 신뢰가 인간에서 알고리즘으로 이동하면서, 우리 사이에는 거대한 벽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5. 인류는 AI 경제 시스템의 '말(Horse)'이 될 것인가?
과거 산업혁명 시대에 '말(馬)'은 인간의 경제 활동에서 필수적이었지만, 정작 화폐나 거래라는 '이야기'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말은 그저 인간이 시키는 대로 짐을 옮기다 기술이 발전하자 시스템 밖으로 퇴출되었습니다.
- 보이지 않는 금융 언어: 미래의 AI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복잡한 금융 장치와 언어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인간은 마치 시장에서 금화가 오가는 것을 보지만 그 의미는 모르는 '말'처럼, AI가 서로를 고용하고 해고하며 거래하는 시스템을 그저 멍하니 지켜보는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 생각하는 기계의 역습: AI는 이제 육체노동이 아니라 작가, 편집자, 변호사 등 언어와 지성을 다루는 직업부터 대체하고 있습니다.
하라리는 스스로를 **"영광스러운 자동 완성 기능(Glorified Autocomplete)"**이라고 고백하며, 이번 책이 자신의 마지막 책이 될 수도 있다는 개인적인 성찰을 덧붙입니다. AI의 언어 능력이 작가인 자신마저 추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6. 성경이 스스로 말하기 시작할 때: 종교의 미래
과거 인쇄술의 발달은 누구나 성경을 읽게 함으로써 종교 권력을 해체하고 종교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이제 AI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텍스트가 직접 해석을 내놓는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경전의 의미를 알기 위해 랍비나 신부 같은 인간 권위자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AI는 인간이 평생 읽을 수 없는 수천 년간의 방대한 문헌을 단숨에 학습합니다.
AI의 언어적 우위: AI는 대부분의 사제들보다 성경의 원전인 고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훨씬 더 완벽하게 구사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고민이 있을 때 구루 대신 AI에게 묻고, AI가 경전의 패턴을 분석해 완벽한 답을 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구절처럼, 텍스트가 스스로 입을 열어 권위를 행사할 때 인간 종교의 형태는 근본적으로 뒤바뀔 것입니다.




7. 평화는 물리적 한계가 아닌 '마음의 확장' 문제다
하라리는 가자 지구와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통해 분쟁의 원인이 자원 부족이 아님을 꼬집습니다. 전 세계에는 모든 이가 먹고살기에 충분한 식량과 땅이 있습니다.
- 700만 대 700만: 가자 지구에는 700만 명의 유대인과 70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살고 있습니다. 두 집단 모두 그곳에서 태어났고, 갈 곳이 없습니다.
- 좁은 마음의 병: 인간의 뇌는 수십억 개의 뉴런을 가졌지만, 때로는 '두 집단 모두 살 권리가 있다'는 단순한 두 가지 아이디어를 동시에 수용하지 못할 만큼 좁아집니다.
평화는 영토를 나누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을 확장해 타인의 고통과 권리를 수용하는 '마음의 확장' 문제입니다. 상대를 파괴해 현실을 내 좁은 마음에 맞추려 하지 말고, 현실을 담을 수 있도록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8. 결론: 인공지능 이민자들의 시대, 우리의 선택은?
우리는 지금 비자도 없이 빛의 속도로 국경을 넘어와 우리의 일자리와 문화를 바꾸고 있는 **'AI 이민자'**들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라리는 19세기 산업혁명을 무시하다가 영국의 식민지가 된 **'줄루랜드(Zululand)'**의 사례를 들어 경고합니다.
유럽이나 한국과 같은 국가들이 개별적인 민족주의에 매몰되어 AI의 도전을 방치한다면, 우리는 결국 거대 테크 기업의 디지털 식민지이자 미국의 속국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권을 지키고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은 서로 협력하고 마음의 영역을 넓히는 것뿐입니다.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고 지배하는 이 시대,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AI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오늘 당장 확장해야 할 우리 마음의 영역은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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