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은 잘 된다는데, 왜 원화 가치는 계속 떨어지고 우리 삶은 나아지지 않는 걸까요? 많은 분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문제입니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원-달러 환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이는 한국 경제의 더 깊고, 종종 오해받는 구조적 문제들을 드러내는 하나의 증상입니다. 지금부터 이 현상 뒤에 숨겨진,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5가지 진실을 전문가의 시각으로 명쾌하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수출 대기업이 번 달러는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고환율의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입니다. 간단히 말해,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구하려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면 달러 공급이 충분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핵심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수출 대기업들은 미국에 막대한 규모의 장기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분야에 걸친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대표적입니다. 미국 현지 공장을 짓고 운영하려면 원화가 아닌 달러가 필요하기에, 이들 기업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로 들여와 원화로 바꾸기보다는 현지에 그대로 보유하고 있을 유인이 큽니다.
둘째는 기업의 전략적 판단입니다. 기업들은 앞으로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벌어들인 달러를 굳이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외화 예금 형태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환율이 오른 뒤에 환전하면 ‘외화 환산 이익’이 발생해 기업의 재무제표상 실적을 크게 개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달러 공급을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렇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는 기업들이 달러를 잘 내놓고 있지 않다라고 하는게 아 중요한 원인입니다... 가지고는 들어왔는데 어 환전을 안 하는 거죠."
2. 한미 관세 협상이 오히려 '고환율'을 고착화했다
최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은 단기적으로 3,500억 달러라는 거액을 한 번에 환전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게 해준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환율을 구조적으로 고착시키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협상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한국이 앞으로 상당 기간에 걸쳐 매년 최대 200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미국에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확정’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외환시장에서 달러에 대한 꾸준하고 장기적인수요가 보장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상품이든 미래의 수요가 확실하다면 그 가격은 자연스럽게 오르기 마련입니다. 달러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정부는 외환시장에서 직접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대신, 국민연금이나 한국은행이 보유한 해외 자산의 운용 수익을 활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과거에는 국내로 들어와 달러 공급을 늘렸을지도 모르는 그 수익금이 이제는 미국으로 바로 향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국내 시장에 유입될 달러의 총량이 줄어드는 것은 마찬가지이며, 이는 원화 약세(고환율)를 지지하는 구조적 요인이 됩니다.
"이거는 달러와에 대한 수요가 확정된 겁니까 공급이 확정된 겁니까? 필요하다는 수요가 확정이 된 거죠. 그러면은 달러와 가치가 올라가는 게 맞나요 떨어지는 게 맞나요? 올라가는 게 맞는 거죠."
3. 경제가 성장한다는 '착시', 반도체 혼자만의 잔치다
발표되는 경제 성장률이나 코스피 지수 같은 거시 지표만 보면 한국 경제가 회복세를 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위험할 정도로 한쪽으로 쏠린 현실을 가리는 ‘착시 현상’일 수 있습니다.
데이터가 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현재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2위인 자동차(약 10%), 3위인 석유화학(약 6%)의 비중은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특히 석유화학 산업은 중국과 중동의 경쟁 심화로 인해 단순한 경기 사이클 문제가 아닌 구조적 쇠퇴에 직면해 있습니다. 여러 산업이 함께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반도체 하나가 전체 경제를 힘겹게 끌고 가는 형국입니다.
"지금은 반도체가 거의 나 혼자 멱살 잡고 끌고 가듯이 잘하면서 이렇게 우리 전체 수출을 끌고 가고 있는데... 구조가 취약해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구조는 매우 위험합니다. 만약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꺾이거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다면, 다른 강력한 성장 동력이 부재한 한국 경제 전체가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경제의 기초 체력이 튼튼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며 더 취약해지고 있는 셈입니다.
4. 고환율은 이제 '약'이 아닌 '독'이다
전통적으로 원화 약세(고환율)는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한국 수출품의 달러 표시 가격이 저렴해져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이는 수출 기업의 이익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고환율 덕분에 한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현재 한국 경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은 견조하지만, 내수 경제(민간 소비, 건설 투자, 설비 투자)는 극도로 침체된 상태입니다. 과거와는 맥락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환율은 경제에 ‘독’으로 작용합니다. 원유나 원자재 같은 수입품의 가격을 급등시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떨어뜨리고 내수 중심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킵니다. 결국 잘나가는 수출 대기업과 힘겨운 나머지 경제 주체들 사이의 격차를 더욱 벌리는 ‘초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지금 맥락에서 지금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이 컨텍스트 하에서는 (원달러 환율 상승이)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는 변수이기 때문에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
5. 정부는 왜 환율을 잡지 못할까? '못'하는 것이다
많은 분이 "정부가 직접 개입해서 환율을 낮추면 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환율은 정부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아니라, 주가처럼 거대한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입니다. 사실상 정부는 환율을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잡을 수 없는’ 것에 가깝습니다.
한국은 외환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환율이 자유롭게 결정되는 ‘자유변동환율제’를 채택한 국가입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의 방향성을 바꾸려 시도하면 ‘환율 조작국’이라는 국제적 비판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특정 가격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변동성이 지나치게 클 때 충격을 완화하는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 조정)’에 국한됩니다.
국민연금이나 외환보유고를 동원하는 것도 비현실적입니다. 특히 국민연금의 제1 목표는 가입자들의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화 약세(고환율)는 국민연금이 보유한 막대한 해외 자산의 가치를 원화로 환산했을 때 평가 이익을 높여주므로, 오히려 운용 성과에 도움이 됩니다. 즉, 원화 가치를 방어해야 할 필요성과 연금의 운용 수익률을 높여야 하는 의무 사이에 명백한 ‘이해상충’이 존재합니다. 국가의 외환보유고는 일상적인 시장 관리가 아닌, 국가 부도와 같은 진짜 위기 상황을 대비한 ‘최후의 보루’이므로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카드입니다.
"환율은 매크로 경제 끝판왕입니다... 이렇게 어떻게 보면은 매크로 상황의 종합 결정판이다 보니 쉽사리 바꾸기가 쉽지 않다."
결론: 즉효약은 없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
결론적으로, 현재의 고환율은 병의 원인이 아니라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깊은 구조적 불균형을 드러내는 명백한 증상입니다. 소수의 수출 대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내수 기반은 약화되는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환율 문제에 대한 즉효약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화려한 거시 지표 뒤에 가려진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성장률 숫자와 주가 지수라는 거시 지표의 화려함 뒤에서, 우리 경제의 진짜 체력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요? 총량의 성장이 아닌, 건강한 성장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