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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 4개나 빠졌다? 한국 자율주행이 테슬라에 밀리는 진짜 이유

by Heedong-Kim 2026. 2. 15.

1. 서론: 우리 곁에 오지 않는 '완전 자율주행'에 대한 갈증

테슬라의 FSD(Full Self-Driving) 버전 12가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며, 자율주행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은 정점에 달해 있습니다. 이제는 차가 스스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시대가 열린 듯하지만, 우리 도로 위 현실은 사뭇 다릅니다. 혁신적인 진보의 소식은 대부분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들려올 뿐, 왜 국내 도로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운 것일까요? 단순히 기술력이 뒤처진 것인지, 아니면 구조적인 진입장벽이 존재하는 것인지, IT 전략가의 시각에서 그 이면을 날카롭게 분석해 봅니다.
 
 
 

2. 충격적인 숫자: 5.32M vs 81, 데이터 '문제집'의 체급 차이

 
자율주행 AI의 성능은 결국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과 '질'에 의해 결정됩니다. 여기서 한국과 테슬라 사이에는 메우기 힘든 거대한 수치의 격차가 존재합니다. 테슬라는 FSD 학습을 위해 이미 **532만 대(5.32M)**가 넘는 차량을 전 세계에 판매했고, 실시간으로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충격적입니다. 국내에 자율주행 임시운행 허가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허가를 받은 차량은 고작 494대에 불과합니다. 특히 국내 1위 기업인 오토노머스A2Z가 운행하는 차량조차 81대에 그칩니다. 532만 대와 81대, 이는 단순히 차량 대수의 차이를 넘어 AI가 풀어야 할 '문제집'의 양 자체가 비교조차 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10년 동안 우리나라에 허가 받은 차가 494대밖에... 뒤에 공이 네 개가 빠진 게 아니고요. (해외 IR에서) 저희가 81대를 운행한다고 하면, 혹시 공이 하나 빠진 810대가 아니냐고 묻습니다." — 유민상 오토노머스A2Z 상무
 
 

3. 죽음의 계곡에 갇힌 레벨 3: 제조사가 운전대를 잡지 않는 이유

 
한때 '완성차의 미래'로 꼽히던 레벨 3 자율주행이 승용차 시장에서 '계륵'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벤츠가 세계 최초로 레벨 3 인증을 받았지만, 약 700만 원에 달하는 옵션 가격 대비 효용은 처참합니다. UN 법규(WP29)의 엄격한 제한으로 인해 시속 60~130km 사이의 특정 구간, 맑은 날씨 등 까다로운 **운행 설계 영역(ODD, Operational Design Domain)**을 만족해야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법적 리스크'입니다. 레벨 3부터는 사고 시 책임의 주체가 운전자에서 '제조사'로 넘어갑니다. 민사적 책임은 물론 대표이사의 형사 처벌 가능성까지 열려 있는 상황에서, 제조사들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레벨 3에 올인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업계는 레벨 3를 건너뛰고 운전자가 책임을 지되 자유도는 높인 DCAS(Level 2.999) 혹은 ADAS 고도화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 자율차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혼다의 '레전드'가 이름처럼 사라져버린 것은 이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대변합니다.
 
 
 
 

4. 자율주행은 이제 '에너지와 자본'의 싸움: GPU 35,000장의 벽

 
자율주행의 패러다임이 '엔드투엔드(End-to-End, E2E)' AI 학습으로 전환되면서, 이제 싸움의 장은 소프트웨어 코딩에서 거대 인프라 전쟁으로 바뀌었습니다. E2E 방식은 판단부터 제어까지 AI가 한 번에 수행하기에 성능은 압도적이지만, 이를 위해선 천문학적인 컴퓨팅 자원이 필요합니다.
 
 컴퓨팅 인프라 격차: 테슬라는 AI 학습을 위해 NVIDIA H100 GPU를 약 35,000장 보유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전체의 보유량은 2,000장 미만에 불과합니다. 약 17.5배 이상의 하드웨어 격차입니다.
 
 블랙박스 리스크와 자본: E2E AI는 중간 논리 과정을 알 수 없는 '블랙박스' 특성을 가집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수정하기가 매우 까다로워 무한한 반복 학습이 필수적이며, 이는 곧 막대한 전력 소모와 데이터 센터 구축 비용으로 이어집니다. 이제 자율주행은 국가적 에너지와 자본의 결합체인 '소버린 인프라' 싸움이 된 것입니다.
 
 
 

5. 전략적 피벗: 왜 레벨 4는 '대중교통과 물류'로 향하는가?

 
B2C 시장인 승용차 영역에서 레벨 3가 좌초하는 사이, 기술의 방향타는 셔틀, 버스, 물류 등 특수 목적 차량(PBV) 중심의 레벨 4로 급격히 쏠리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 소비자와 달리 '사업자'는 국가가 통제하고 보험 제도를 정립하기에 훨씬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자율주행 기술은 UN의 글로벌 표준이 부재한 상태에서 각국의 '로컬 표준' 선점 경쟁이 치열합니다. 독일(2022)과 일본(2023)에 이어 한국이 세계 3번째로 레벨 4 법규를 마련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통제 가능한 환경에서 먼저 기술을 검증하고 산업군 전체를 키우겠다는 전략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오토노머스A2Z가 가이드하우스 글로벌 랭킹 7위에 진입하며 과거 현대차가 세운 기록(10위)을 넘어선 것은 한국 자율주행이 나아갈 새로운 돌파구를 보여주는 고무적인 지표입니다.
 
 
 

6. 결론: 99%의 안심과 1%의 불안 사이에서

 
자율주행 기술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기에 99%의 안정성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단 1%의 **엣지 케이스(Edge Case)**가 비극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은 이미 문턱까지 와 있지만, 이를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과거 마차가 자동차로 대체될 때 '자동차 보험'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등장하며 비약적인 성장이 가능했듯, 자율주행 역시 사고 리스크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분담할지에 대한 거대한 합의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과연 AI가 운전대를 잡는 시대의 리스크를 감당할 준비가 되었을까요?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우리 사회의 수용력이 자율주행의 진정한 속도를 결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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