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우리는 종종 시선을 피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죽음은 외면하고 싶은, 멀고 어두운 주제일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며 죽음을 애써 외면하곤 합니다.
하지만 여기, 매일 죽음과 마주하며 삶의 지혜를 건져 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20년 넘게 수많은 주검을 마주한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는, 죽음이야말로 삶을 가장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무심코 진실이라 믿었던 죽음에 대한 통념들을 깨고, 역설적으로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놀라운 통찰 4가지를 소개합니다.


1. 부검하면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 15%는 '사인 불명'입니다
우리는 흔히 부검을 하면 사망의 모든 원인과 진실이 100% 밝혀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언론에서 "시신이 국과수로 이송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제 곧 모든 의문이 풀릴 것이라 안심하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유성호 교수는 과학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부터 법의학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부검을 하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거라 기대하시지만, 솔직히 10~15%는 명확한 사인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하는 대신 ‘과학적으로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선언하는 것. 이는 근거 없는 추측과 음모론이 고인의 존엄을 훼손하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것을 막는 강력한 제어장치입니다. 이처럼 ‘알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확인되지 않은 ‘괴담’이 퍼지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가 되는 것입니다.


2. "독살당하면 시신이 까맣게 변한다"는 건 영화가 만든 거짓말
영화나 드라마에서 독살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은수저가 까맣게 변하고, 시신의 피부가 검게 변하며 칠공에서 피를 흘리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됩니다. 조선 시대 소현세자의 죽음을 다룬 영화에서도 이런 묘사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사실이 아닙니다. 유 교수에 따르면, 과거에 실제로 사용되었던 비소와 같은 독극물로는 시신에 눈에 띄는 외형적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피부가 검게 변하는 것은 독살의 증거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부패 소견’일 뿐입니다.
"영화 <올빼미>를 보면 소현세자의 피부가 까맣게 변하고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죠. 하지만 그건 부패 소견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은수저가 검게 변하는 현상 역시 독이 아니라 황(黃) 성분과 만나 황화은(黃化銀)으로 변하는 화학 반응일 뿐, 실제 독극물과는 무관하다고 그는 덧붙입니다. 우리는 미디어가 만든 극적인 이미지를 얼마나 쉽게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을까요? 유 교수는 말합니다. 현실의 죽음은 영화의 각본처럼 명쾌하지 않고, 훨씬 더 조용하고 복잡한 진실을 품고 있다고.



3. 법의학은 경찰을 믿지 않기에 존재합니다
"법의학과 경찰은 왜 따로 존재할까요?" 유 교수는 이 질문을 통해 법의학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그는 경찰의 수사 역량이 99%의 경우 매우 뛰어나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법의학은 바로 그 1%의 가능성, 즉 초기 판단이 진실을 가릴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을 위해 존재합니다.
"법의학과 경찰이 왜 따로 있을까요? 경찰의 판단만 그대로 믿는 것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한 무용학원 화장실에서 여학생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단순 변사로 처리하려 했지만, 부검이 진행되었습니다. 부검 결과는 ‘사인 미상’. 이 불확실한 결론이 역설적으로 사건을 미제로 남겨두었고, 덕분에 몇 년 뒤 진실이 담긴 투서가 도착했을 때 재수사의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투서의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피해 학생이 물고문으로 사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부검 없이 경찰의 초기 판단만으로 사건이 종결되었다면, 억울한 죽음은 영원히 묻혔을 것입니다. 법의학의 ‘사인 미상’이라는 판단이 섣부른 결론을 막고 진실의 문을 열어둔 셈입니다. 이처럼 제3자의 객관적인 시선, 즉 ‘세컨드 오피니언’은 사회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합니다.


4. 죽음을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 '미래를 위한 유서'
'유서'라는 단어는 무겁고 불길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유 교수가 매년 쓰는 유서는 죽음을 준비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는 이를 ‘나를 돌아보는 의미’이자 ‘미래를 위한 계획서’라고 부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대부분의 사람은 혼수 상태에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때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었다"고 느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유 교수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글을 써보라고 조언합니다.
"인생이 괜찮았다고 느끼려면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냥 생각만 해서는 잘 떠오르지 않아요. 직접 글로 써보는 겁니다."
글쓰기라는 행위는 모호했던 삶의 감각들을 구체적인 우선순위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나는 진정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빼더라도 좋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이야기 나눠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훨씬 더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법의학자의 시선으로 죽음을 들여다보는 여정은 결국 ‘어떻게 잘 살 것인가’라는 삶의 질문으로 되돌아옵니다. 죽음의 오해를 바로잡고 그 본질을 마주하는 것은, 현재의 삶을 더 단단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죽음이라는 거울에 비춰봐야만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삶을 ‘미래를 위한 계획서’에 담는다면, 그 첫 문장은 무엇이 될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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