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코드를 짜주는 시대. 우리는 전례 없는 편리함의 파도 위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클릭 몇 번으로 생성된 그럴듯한 결과물을 마주할 때,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영혼 없는 느낌, 이른바 ‘AI 스멜(AI Smell)’을 느껴본 적 없으신가요? 기술이 빚어낸 완벽함 속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미묘한 위화감을 감지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클릭 몇 번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에 과연 진정한 가치가 있을까?” 이 거대한 질문에, 브랜드 전략가 최장순 대표는 하나의 강력한 해독제를 제시합니다. AI의 압도적인 효율성에 맞서,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만드는 그의 통찰은 의외의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바로 자신의 이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최장순’이라는 이름이 싫었다고 합니다. 친구들은 ‘단순이’라 놀렸고, 어른들은 ‘장수’라며 빈정거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름의 한자 뜻, ‘문장 글 장(章)’에 ‘순박할 순(淳)’을 진지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좋은 문장을 많이 읽고, 화려하게 꾸미지 않으며 질박하게 이해하고 쓰자.’ 스스로 이름의 의미를 정의하는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길이 열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사유를 통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와 맞닿아 있습니다. 최 대표의 강연을 바탕으로, AI 시대를 건너는 우리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4가지 통찰을 깊이 있게 탐색해 보겠습니다.


1. AI는 '냄새'를 풍기고, 인간은 '아우라'를 만든다
최근 한 아파트 단지에 “오성급 호텔 셰프 출신 메뉴 개발자”라는 그럴듯한 전단지가 붙었습니다. 후덕한 인상의 셰프 사진과 사인까지 담겨 있었죠. 하지만 “우리 아파트엔 없는 동인데요?”라는 한 주민의 의심은 곧 전단지 전체가 AI로 만들어진 가짜임이 밝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한 언론사가 보도 사진에 사용한 과학자 이미지의 손가락이 네 개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AI가 만든 결과물에서 느껴지는 어색하고 진정성 없는 느낌을 ‘AI 스멜’이라고 부릅니다. 기술적으로 완벽해 보일지라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안의 공허함을 감지합니다.
이와 정반대의 개념에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Aura)’가 있습니다. 벤야민은 아우라를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현존성”, 즉 복제 불가능한 ‘일회적 존재감’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쉽게 말해, 복제된 파일이 아닌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원본 앞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간과 역사가 빚어낸 단 한 번의 존재감입니다.
AI와 인간 작업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AI의 작업에는 시간과 고통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오류는 즉시 수정되고 결함은 업데이트를 통해 사라집니다. 그러나 인간의 작업에는 고뇌의 시간이 축적되고 실패의 경험이 새겨집니다. 바로 그 고통의 축적이 아우라를 만듭니다.
AI로 만든 작업에는 아우라가 없습니다. 아우라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AI에는 시간이 들지 않죠. 고통도 없습니다. 고통이 축적되지 않고 에러와 결함들은 지워지고 업데이트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고통을 축적하고 그 경험들을 계속 현재화하지요.


2. AI를 이기고 싶다면, 오프라인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라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아날로그적 역량’과 ‘인간학적 훈련’이 중요해진다는 역설은 AI 시대의 핵심 생존 전략입니다. AI는 반복 가능한 것을 인간보다 훨씬 더 잘 처리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가치는 반복 불가능한 영역, 즉 실제 현장에서의 깊이 있는 관찰과 해석에서 나옵니다.
한 프랜차이즈 카페의 리브랜딩 컨설팅 사례는 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마케터는 “어떻게 하면 경쟁사처럼 젊고 힙한 카페가 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최 대표는 ‘힙함’을 모방하는 대신, 2주 동안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카페에 상주하며 사람들을 관찰했습니다.
데이터로는 잡히지 않는 인간의 행동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손님들은 입구에 서서 테이블이 빽빽하게 찬 모습을 보고는 그냥 나가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매출을 높이기 위해 테이블을 더 놓아야 한다는 일반적인 생각과 정반대의 현상이었습니다. 이 관찰을 통해 그는 ‘오히려 테이블을 빼자’는 과감한 가설을 세웠고, 타인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스트레스가 높아진다는 ‘공간 근접학(Proxemics)’ 이론으로 가설을 뒷받침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알고리즘의 데이터 분석이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인간 고유의 통찰이 발휘되는 영역입니다. 알고리즘은 기존 데이터를 분석할 뿐, 현장의 미묘한 분위기와 인간의 직관적인 불편함을 읽어내지 못합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통찰이야말로 AI가 흉내 낼 수 없는 브랜드의 ‘아우라’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3. '연결'만 하지 말고 '책임'을 져라: 당신의 '업의 본질'을 재정의하기
현장에서의 깊이 있는 관찰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준다면,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그 모든 행동에 방향성과 무게를 더합니다. 바로 ‘업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국민 앱 ‘숨고(Soomgo)’의 리브랜딩 스토리는 업의 본질을 재정의하는 것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초창기 숨고는 스스로를 ‘전문가 연결 플랫폼’으로 정의했습니다. 이 정의 안에서 그들의 역할은 전문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데서 끝났습니다. 소비자가 연결된 전문가에게서 불친절한 서비스를 받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연결만 할 뿐”이라는 태도는 결국 불만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던져진 질문이 바로 “사람들의 삶을 어디까지 책임질 겁니까?”였습니다. 이 질문은 숨고가 업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순 중개업을 넘어, 고객의 더 나은 삶을 돕는 존재로 스스로를 재정의했습니다. 그 결과 ‘종합 라이프서비스 플랫폼’이자, 주인의 모든 삶을 케어하던 ‘21세기형 발레 드 샹브르(valet de chambre)’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비즈니스 모델을 ‘중개업(brokerage)’에서 ‘역량 산업(competency industry)’으로 바꾸었습니다. 숨고는 더 이상 연결만 하는 회사가 아니라, 고수의 역량과 서비스 품질을 보증하는 회사가 된 것입니다. AI는 효율적인 연결을 수행할 수 있지만, 이처럼 ‘돌봄의 범위를 설계’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은 인간 고유의 역할입니다.




4. 위대함은 효율이 아닌, '고통의 서사'에서 나온다
AI가 프롬프트 몇 줄로 만들어내는 자극적이고 유행에 민감한 결과물을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9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흑당 버블티처럼, 에피소드는 더 자극적인 다음 에피소드가 나타나면 쉽게 잊힙니다.
반면, 오랜 시간과 고통, 인과관계가 얽혀 완성된 인간의 결과물에는 ‘서사(Narrative)’가 담겨 있습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명화 <오필리아>가 대표적입니다. 이 대체 불가능한 고통의 서사가 바로 1장에서 언급한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를 만드는 핵심 재료입니다.
AI는 프롬프트 입력만으로 이와 유사한 이미지를 순식간에 그려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그림에는 화가와 모델이 겪었던 혹독한 고통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모델 엘리자베스 시달은 6개월에 걸친 작업 기간 동안 차가운 물이 담긴 욕조에서 포즈를 취하다 심각한 저체온증과 폐렴을 앓아야 했습니다. 화가 밀레이는 얼어붙은 강가에 천막을 치고 태풍과 사투를 벌이며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그 살을 에는 추위와 집념의 시간이 그림에 영혼을 불어넣은 것입니다.
다이소에서 파는 5,000원짜리 매끈한 달항아리와 장인이 수많은 실패 끝에 빚어낸 울퉁불퉁한 진짜 달항아리의 가치가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진정한 가치는 완벽한 결과물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적인 고뇌와 시간, 그리고 불완전함에서 비롯됩니다.
AI로는 만약 이런 그림에 대한 프롬프트를 정교하게 설계한다면 훨씬 더 리얼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AI는 존 에버렛 밀레이와 엘리자베스 시달이 갖고 있는 이런 고통의 서사가 존재하지 않죠.



결국 AI 시대에 우리를 차별화하는 것은 기술이 아닌 가장 인간적인 태도입니다. 데이터 너머를 꿰뚫는 깊이 있는 관찰을 통해 고유한 아우라를 만들고, 단순한 연결을 넘어선 책임감으로 업의 본질을 세우며,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라도 기꺼이 고통의 서사를 쌓아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구매를 결정했다고 믿지만, 실은 알고리즘이 걸러준 타인의 리뷰에 ‘동의’했을 뿐입니다. AI 시대는 이러한 ‘지능의 아웃소싱’을 극대화합니다. AI가 제안하면, 우리는 그저 동의하는 주체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이제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당신은 AI의 지능과 판단에 의존하는 ‘동의하는 주체’로 남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스스로 결정하고 사유하며 자신만의 아우라를 만드는 ‘고유한 주체’로 나아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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