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의 실적이 역대급으로 좋은 상황에서 전 직원의 40%를 감원한다는 결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트위터의 공동 창업자 잭 도시(Jack Dorsey)가 이끄는 핀테크 기업 ‘블록(Block)’은 최근 4,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해고를 단행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위한 경영적 판단이 아닙니다. 잭 도시는 지금 AI를 조직의 중심에 두고 인간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이른바 ‘알고리즘 거버넌스(Algorithmic Governance)’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실험은 단순히 기술을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조직 설계의 패러다임을 '인간 중심의 조정'에서 '지능 중심의 운영'으로 전환하는 혁신적인 도전입니다.



1. 실적이 좋은데도 감행한 4,000명의 해고, 그 이면의 숫자
이번 감원은 경영난에 의한 궁여지책이 아닙니다. 블록의 2025년 총 이익은 전년 대비 1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특히 캐시앱(Cash App)의 수익성은 33%나 급증했습니다. 잭 도시는 이번 결정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우리 사업은 아주 잘되고 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해서 내린 결정이 아니다."
그의 전략적 목표는 명확합니다. 현재 직원 1인당 약 50만 달러 수준인 총 이익을 200만 달러 이상으로, 즉 4배 가까이 끌어올리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노동력을 AI 에이전트로 대체했을 때 발생하는 폭발적인 생산성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배치입니다.



2. '계층'의 종말, 6,000명이 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시대
잭 도시와 로프 보타는 논문 <계층에서 지능으로(From Hierarchy to Intelligence)>를 통해 기존 조직 구조의 근본적인 모순을 지적합니다. 지난 2,000년간 로마 군단부터 현대 기업에 이르기까지 계층 구조가 유지된 이유는 ‘정보 전달의 병목 현상’과 ‘인지적 과부하’ 때문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관리할 수 있는 적정 인원이 8명 내외라는 한계 때문에 중간 관리자가 필수적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지능(AI)은 이 병목 현상을 제거합니다. 잭 도시는 이제 **“6,000명의 직원이 모두 나에게 직접 보고한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AI가 수만 개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요약, 정리, 조율함으로써 CEO가 중간 단계 없이 조직 전체를 직접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중간 관리자가 수행하던 ‘진행 상황 보고’와 ‘지시 하달’ 기능은 이제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화되었습니다.



3. '월드 모델(World Model)' : 레고 블록과 실시간 지도로 움직이는 조직
블록은 조직을 역량(Capabilities) - 월드 모델 - 지능 - 인터페이스라는 4단계 계층으로 재편했습니다.
- 기초 역량(Capabilities): 결제, 대출, 카드 발급 등 금융 서비스의 본질적인 기능들입니다. 잭 도시는 이를 조직의 **'레고 블록(Lego pieces)'**에 비유합니다.
- 월드 모델(World Model): 조직의 뇌에 해당하며, 두 가지 축으로 작동합니다.
- 회사 월드 모델: 원격 근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텍스트 데이터를 AI가 학습하여 조직의 현재 상태를 실시간 지도로 시각화합니다.
- 고객 월드 모델: 수백만 건의 거래 데이터를 분석해 특정 판매자의 매출이 언제 꺾일지, 고객의 자금이 언제 부족해질지까지 예측합니다.
- 지능 및 인터페이스: 월드 모델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스스로 최적의 금융 서비스를 제안하고, 이를 고객 접점에 전달합니다.
기존 조직이 정보가 왜곡되는 '말 전하기 게임'이었다면, 블록은 모든 구성원이 AI가 그려낸 단 하나의 '실시간 입체 지도'를 보며 움직이는 구조입니다.


4. 권한의 이동 : 지시를 기다리지 않는 '개별 기여자' 시스템
AI 중심 조직에서는 인간의 역할이 세 가지 전략적 축으로 재정의됩니다.
- 개별 기여자 (Individual Contributor): 더 이상 관리자의 맥락 설명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월드 모델'을 통해 회사의 우선순위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을 내립니다.
- 임시 담당자 (Ephemeral Lead): 특정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되는 이들은 기존 TF장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타 부서장과 리소스 협상을 할 필요 없이 즉각 자원을 끌어다 쓸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가집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이 역할은 즉시 소멸됩니다.
- 플레이어 코치 (Player Coach): 회의와 보고로 시간을 보내는 관리자는 사라집니다. 이들은 반드시 코드 작성이나 모델 설계 같은 '실무'를 병행해야 하며, 동시에 구성원의 성장에만 집중합니다. 업무 조율은 AI의 몫입니다.


5. "AI가 중심, 사람은 가장자리" - 역할의 본질적 변화
잭 도시가 던지는 가장 충격적인 메시지는 인간의 위치 변화입니다.
"판단은 AI와 시스템이 하고, 사람은 가장자리에서 일한다."
사람은 더 이상 정보를 유통하는 허브가 아닙니다. 조직의 '중심'인 정보 처리와 운영은 AI가 담당합니다. 사람은 그 시스템이 닿지 못하는 '가장자리(Edge)', 즉 직관적 통찰, 윤리적 판단, 그리고 고객 및 동료와의 신뢰 관계라는 고부가가치 영역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는 인간이 단순 반복적인 조정 업무에서 해방되어 가장 인간다운 창의성에 몰입할 수 있는 구조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결론 및 시사점
과거 '홀라크라시(Holacracy)'와 같은 관리자 없는 조직 실험이 실패했던 근본 원인은 구성원 간의 '정보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 때문이었습니다. 잭 도시의 실험이 과거와 다른 점은 AI가 이 비대칭성을 기술적으로 완벽히 메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실험에는 리스크도 존재합니다. 콜센터 에이전트 한 명을 AI로 대체하는 데 연간 15,000~20,000달러의 운영비가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고액 연봉의 엔지니어를 대체하는 비용이 인건비보다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비용의 성격이 '인건비'에서 '인프라 운영비'로 옮겨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잭 도시의 시도는 미래 조직의 새로운 표준(Standard)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정보 전달자가 아닌 가치 판단자로서, 당신과 당신의 조직은 AI가 구축한 월드 모델의 ‘가장자리’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AI가 대체 중인 계층의 중심부에 머물러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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