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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MBA, English, 운동

수영, 그 원리와 과정

by Heedong-Kim 2024. 5. 8.

5년 전 코로나 이전

 

인생에는 때로 벅찬 도전과 극복해야 할 두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에게 수영은 바로 그러한 도전이자 공포였습니다.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일상은 자유로웠습니다. 그 무렵 건강 관리 차원에서 새로운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집 근처에 있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평소 운동을 꺼려왔던 터라 수영은 낯설고 두려운 도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물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감과 근력, 지구력 부족으로 인한 몸치라는 한계가 가로막혔습니다. 수영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두려움이 항상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습니다.

결국 첫 1년 내내 물꿈치를 치며 몸부림쳤습니다. 수영장 소독약을 삼키는 일도 부지기수였고, 숨가쁨에 절규하기 일쑤였습니다. 물이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란 너무나 버겁고 고된 과정이었습니다. 강사분의 지도와 도움에도 불구하고 제자리걸음만 반복할 뿐 진전이 없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근육통과 피로감에 지쳐갔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동안 수영장에 가면 물에 잠겨 죽는 꿈을 꾸는 일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각오를 다졌습니다. 아마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결심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물에 대한 공포와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의지 말입니다.

 

물에 대한 공포

 

첫 1년 내내 몸부림을 쳤지만, 여전히 물에 대한 공포는 가시지 않았습니다. 첫 수영 강사님께서는 제가 물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주셨지만, 쉽게 두려움을 떨치기란 힘들었습니다.

강사님께서는 우선 제게 오리발을 신기고 스노쿨을 착용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물에 잠기지 않고도 물 위를 떠다닐 수 있도록 해주셨지요. 또한 킥보드를 이용해 상체를 떠받치고 발로만 물을 가르며 운동할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물론 여러 보조 기구들도 적극 활용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로도 제 공포는 가시지 않았습니다. 보조기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속에 잠기는 일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숨이 멎는 듯한 답답함과 자괴감이 밀려왔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좌절감까지 들었습니다.

강사님께서는 꾸준히 용기를 주시며 격려해주셨습니다. "천천히 하나씩 적응해나가면 된다", "너무 힘주지 말고 편안한 마음을 가져라"와 같은 말씀을 해주셨지요. 그러나 물에 대한 공포는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동안은 물에 잠기는 악몽만 지속되었습니다. 집에서도, 수영장에서도 물에 잠겨 죽을 것만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숨이 막혀 허둥대다 물에 삼켜질 것만 같은 그런 끔찍한 꿈말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 무의식 속에 자리한 공포의 실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싸움을 져야만 하는 운동

 

처음에는 수영이라는 새로운 도전이 나와의 싸움, 내 몸과의 싸움, 그리고 기술 자체와의 싸움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물에 대한 두려움과 몸의 한계를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에 힘겹게만 느껴졌지요.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며 수영의 진정한 본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싸우고 이기려 했던 그동안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물을 적으로 여기고 물리치려 했던 노력이 오히려 나를 가라앉히고 있었습니다. 수영은 결코 이기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 순간이었죠.

강사님께서 꾸준히 강조하셨듯 수영의 핵심은 물결에 나의 몸을 맡기고, 편안히 뜨고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물을 정복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물결을 받아들이고 함께 호흡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이는 한없이 단순해 보이지만, 제겐 가장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평소 운동을 꺼리던 터라 근력과 지구력도 부족했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경직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물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해 계속해서 물을 적으로 여기고 대항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런 자세로는 결코 수영을 배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물에 순응하고 나를 내맡기는 자세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야만 물 위를 자유롭게 둥둥 떠다닐 수 있었습니다.

 

 

물속에서는

 

수영을 하다 보면 물속에 완전히 잠기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온 세상의 소리가 싹 가려지고, 오직 나의 호흡 소리와 물결 소리만이 들립니다. 마치 잠수함 안에 갇힌 것 같은 고요함이 찾아옵니다.

처음에는 이 고립된 침묵이 두려웠습니다. 소리도, 공기도 없는 것만 같아 답답함을 느꼈지요. 하지만 점차 이 고요함에 적응하고 나니, 오히려 평화로움이 밀려왔습니다. 세상의 모든 잡음과 떨어져 홀로 남겨진 이 순간이야말로 진정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바삐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는 잊고 살았던, 나의 내면과 가장 본질적인 호흡이 고스란히 들려왔습니다. 물결 너머로 내 심장이 뛰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동안 외면하고 살았던 나 자신과 대면하게 되는 순간이었지요.

이렇게 물속에서는 오직 나만이 존재합니다. 온 세상의 잡음과 방해 요소들이 싸그리 가려져 내 안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마치 자신과의 영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생활 속에서 이런 고요한 순간을 만끽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물속에서의 이 고립무원한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순간만이 진정 나 자신과 하나 되어, 본연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수영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힘을 뺄수록

 

수영을 하면서 점차 깨달은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바로 '힘을 뺄수록 더 잘 뜬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운동 종목의 원리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야구를 예로 들어볼까요? 투수가 전력 구위를 뿌리려고 어깨에 너무 많은 힘을 주면 오히려 구속이 떨어집니다. 관성의 법칙상 과도한 힘은 흐트러진 폼과 궤적을 낳게 되는 것이죠. 반대로 여유 있고 자연스러운 투구 폼을 가질 때 가장 이상적인 구속과 컨트롤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타자 역시 과도한 힘을 주면 대부분 땅볼 아웃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홈런은 절대 힘으로만 치는 것이 아닙니다. 적절한 스윙과 잘 맞춰진 timpact가 홈런을 만듭니다. 오히려 몸을 터치하고 억지로 휘두르면 각진 스윙과 몸쪽 아웃되는 볼을 얻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대부분의 운동에서 '힘'은 필요하되,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물에서 헤엄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근력과 지구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과도한 힘을 주게 되면 오히려 물에 가라앉게 됩니다.

제가 물에서 허우적거리던 초반에는 바로 이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물에 대한 공포심으로 인해 과도하게 힘을 주고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헤엄치려 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물에 푹 가라앉을 뿐이었습니다.

 

 

수영은 내가 직접 볼 수 없는 운동

 

수영은 특별한 운동입니다. 내가 직접 제 모습을 바라볼 수 없다는 점에서 다른 운동들과 사뭇 다릅니다. 육상이나 필드 운동 등은 제 몸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지만, 수영은 그렇지 못합니다.

물속에 잠긴 채 팔다리를 휘젓는 모습은 오직 물결 너머로만 가늠될 뿐입니다. 거울 삼아 내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다 보니, 자세와 영법을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혼자서는 잘못된 동작을 바로잡기가 너무나 힘든 것이죠.

이럴 때 코치나 수영 강사의 지도가 필수적입니다. 전문가의 꼼꼼한 피드백이 없다면 계속해서 잘못된 자세를 반복하기 마련입니다. 내 것으로만 수영을 하려면 도저히 한계가 있는 운동인 셈이죠.

초반에 저 또한 이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혼자 힘으로 수영 기술을 익히려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유튜브 동영상이나 수영 시범을 보고 따라 해봐도 제 몸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결국 강사님의 구체적인 지도와 피드백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강사님께서는 제가 물에 잠긴 채 영법을 펼칠 때마다 주의 깊게 지켜보셨습니다. 그리고 작은 부분까지 하나하나 짚어주시며 잘못된 점을 알려주셨죠. "팔꿈치를 더 몸쪽으로 당기세요", "머리를 돌리는 타이밍이 느립니다" 등등의 구체적인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계속 배우는 중

 

수영을 배우는 일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처음 물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내려놓을수록, 수영은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는 나를 수면 위에 맡기는 일종의 인생 수업과도 같았습니다.

초반의 허둥지둥한 발버둥은 이제 서서히 가라앉고, 대신 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팔다리를 부드럽게 움직일 때마다 마치 공중을 부유하는 듯한 묘한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밀려왔습니다.

물속에서는 세상의 모든 잡음과 분주함이 잦아듭니다. 오직 나의 호흡소리와 물결 소리만이 들릴 뿐입니다.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와 하나가 되는 고요한 시간인 것 같았죠. 그렇게 느슨해진 마음 속에서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스스로를 잊고 살았던 제게, 수영은 나를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물 위에 부유하며 나의 본래 모습과 직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물결을 따라갈 때면 주변의 모든 잡음이 걷히고 오롯한 나만이 남았습니다.

마치 새로 태어나는 듯한 그런 해방감이었습니다. 물결 위를 가볍게 떠다니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유로운 순간들 사이사이로 진정한 나와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수영을 완벽히 배웠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배움의 과정 자체가 행복합니다. 수영을 통해 매 순간 내 안의 본모습을 발견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 위에서 한없이 자유로워지는 그 순간들이 바로 진정한 나를 마주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