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뜻이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과 어른답다는 평가는 전혀 다른 기준 위에 놓여 있다. 우리는 종종 그 차이를 ‘꼰대’라는 단어를 통해 확인한다. 나이는 많지만 생각은 오래전에 멈춰 있고, 과거의 자기 기준과 성취를 반복해서 증명하려 드는 모습. 그것은 지혜라기보다 아직 성장하지 못한 마음에 가깝다.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라는 고백은 많은 것을 설명한다. 누구나 인생은 처음이고, 각자 다른 궤적 위를 걷는다. 경험의 순서도, 속도도, 깊이도 다르다. 누군가는 빠르게 통과한 구간에서 머물러 있고, 누군가는 늦게 시작했지만 더 치열하게 버티고 있다. 모두가 자신만의 바둑판 위에서, 자신만의 수를 두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의 판 위에 말을 올리려 한다. 섣부른 충고와 간섭은 대부분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경우가 많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은 사실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신호에 가깝다. 정말 상대를 걱정한다면 말은 줄어들고, 행동은 많아진다. 조언보다 지지, 충고보다 응원이 먼저 나온다. 그것이 더 어른스러운 태도다.
대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를 떠올려 보면, 이제 막 학교에 들어온 1학년을 보며 쉽게 어리다고 판단했던 기억이 있다. 불과 두세 살 차이였음에도, 마치 큰 간극이 있는 것처럼 내 고민과 기준을 앞세운 조언을 늘어놓았다. 지금 돌아보면 모두 같은 젊음의 한복판에 있었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흔들리며 성장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나이에 필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허용해주는 여유였을 것이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비슷한 장면은 반복된다. “내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이야기들. 과거에 무엇을 했고,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말하며 그 성취를 현재에서도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것은 능력의 증명이라기보다 불안의 표현에 가깝다. 정말로 잘해왔고, 많은 것을 쌓아왔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현재의 태도와 선택에서 드러난다.
진짜 실력과 성숙함은 지금 이 순간에서 증명된다. 환경은 변했고, 조건은 훨씬 어려워졌다. 과거 산업의 태동기에는 평균적인 선택만으로도 안정적인 삶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세대는 전혀 다른 게임판 위에 서 있다. 그들의 불안과 부담은 개인의 부족함이 아니라 시대의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전의 영광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기보다,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선배의 역할이다. 최소한 버텨내는 태도, 실패를 다루는 방식 정도는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사진을 찍다 보면 이 차이는 더 분명해진다. 아무 생각 없이 눌러진 사진도 있고, 오랜 고민 끝에 하나의 프레임을 포착한 사진도 있다. 후자는 보는 순간 느껴진다. 그 안에 담긴 질문과 선택, 기다림의 시간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림도, 음악도 마찬가지다. 얄팍한 고민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금방 드러나고 오래 남지 않는다. 반면 충분한 숙고를 거친 작업은 보는 사람의 마음과 공명하며 오래 기억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에 빠져드는 능력이 아니라, 그 대상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깊이를 갖추는 과정이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왜 이것을 선택했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묻는 일이다.
또한 생각의 방향은 점점 확장되어야 한다. 나의 기준에서 벗어나 상대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연습, 더 나아가 사회와 공동체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선택을 넘어, 공공의 선을 함께 고민할 수 있을 때 사고의 깊이는 한 단계 올라간다.
결국 진정한 어른스러움은 나이나 머리 색깔에 있지 않다.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눈,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유연함, 그리고 개인을 넘어 사회까지 품으려는 사고의 깊이에 있다. 말이 줄어들고 태도가 남는 순간, 그때 비로소 우리는 어른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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