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길게 조망하면 누구에게나 상승과 하강이 교차한다. 흔히 말하는 새옹지마의 원리는 특정한 시대나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년기에는 부모와 친구를 힘들게 하며 거칠게 살아가던 이가 성인이 되어 놀라울 만큼 온화한 인격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인간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과학에서도 완전한 ‘점’이나 ‘선’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이다. 계산과 가정을 위해 설정한 이상적 기준일 뿐, 실제의 세계는 언제나 조금씩 불완전하고 흐릿한 경계를 지닌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단 한 시기의 모습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변화와 진폭을 품은 존재다.
평온한 삶을 오래 유지하던 이가 말년에 크고 깊은 실수를 저지르는 사례도 있다. 반대로 오랜 시간 고난과 시련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이가 어느 순간 삶의 전환점을 만나 새로운 길을 걷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늦게 배운 일에 밤새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변화의 속도와 방향은 예측하기 어렵고, 그 기원 또한 복잡하다.
이 지점에서 흔히 언급되는 개념이 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고 불리던 통념이다. 다만 이 표현은 지나치게 자극적이기에, 보다 적절한 용어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일탈 에너지 총량의 원리’, ‘삶의 진폭 보정 법칙’, **‘행동 변동성의 균형 원리’**와 같은 표현이 보다 품위 있게 같은 의미를 전달한다. 핵심은 누구에게나 내적 불안, 충동, 실수의 가능성이 특정한 용량처럼 존재하며, 그것이 때로는 어린 시절에, 때로는 성인기에, 혹은 노년기에 다른 모습으로 표출된다는 관찰에 있다.
이 원리는 삶을 더 유연하게 바라보도록 돕는다. 지금까지 평탄하고 행운이 가득했던 사람은 그 자체가 영원한 보증수표라고 믿을 필요가 없다. 반대로, 오늘까지 삶이 벽처럼 가혹했다고 해서 그 어두움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도 없다. 시간은 흐르고, 국면은 교차한다. 새로운 운, 다른 기회, 예상치 못한 전환점은 언제든 다가올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예측이 아니라 준비다. 변곡점은 통제할 수 없지만, 변곡점을 견디는 힘은 스스로 기를 수 있다. 삶의 다음 국면이 언제 어떻게 열릴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태도와 심리적 근력을 다져야 한다. 다시 말해, 돌발적인 실패도, 뜻밖의 행운도 평정하게 받아낼 수 있는 내적 안정이 삶의 지혜다.
우리는 각자의 총량을 다르게 분배하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일찍 소모하고, 어떤 이는 늦게 사용하며, 또 다른 이는 평생에 걸쳐 조용히 흘려보낸다. 그러나 그 분배의 방식이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흔들림을 견디며, 다음 장면을 향해 걸어갈 힘을 마련하는 일이다.
삶은 언제나 새로운 국면을 준비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문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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