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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또 다른 워렌 버핏'은 다시 나오지 않을까?

by Heedong-Kim 2025. 5. 9.

2025년 5월 3일,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 CEO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습니다. 전 세계 투자자들 사이에서 그는 신화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떠나는 시점에서, 다시는 그와 같은 인물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투자 실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람, 시대, 구조라는 세 가지 요소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025년 5월 3일,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날 것임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전 세계 투자자와 언론이 이 소식에 귀를 기울였고, 주식 시장은 묘한 침묵 속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단지 한 인물이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가 조용히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워렌 버핏은 단순히 투자 성과가 뛰어났던 사람을 넘어, 투자의 철학과 윤리, 그리고 자본주의의 방향성까지 바꾸어놓은 인물입니다. 그가 이룬 성과는 수치로 설명될 수도 있지만, 진정한 의미는 수치 너머에 존재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며, 과연 왜 ‘또 다른 워렌 버핏’은 다시는 나타날 수 없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한 천재성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성공은 세 가지 절묘한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Person), 시대(Period), 구조(Package)**입니다. 이 세 가지가 만들어낸 결정적 조합은, 지금의 세계에서는 다시는 복제될 수 없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 첫 번째 요소: '사람' 그 자체가 특별했다

워렌 버핏은 단순히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주식에 미쳐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11살 때 첫 주식을 사고 나서, 평생 동안 기업 보고서를 음악 듣듯이 읽어왔습니다. 가족들과 놀이공원에 가도 그는 벤치에 앉아 재무제표를 읽었고, 집 안을 걸어 다니면서도 연례보고서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독서량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70년 이상 동안 그가 읽은 재무제표는 10만 건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에 거의 초능력 수준의 기억력까지 더해졌습니다. 수십 년 전에 읽은 책 내용을 줄줄이 외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또 있을까요?

 

이처럼 정보 흡수력과 기억력을 바탕으로, 그는 인간 형태의 인공지능처럼 행동했고, 수많은 패턴을 분석해내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실제 AI가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만큼, 이런 유형의 인간 천재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그만한 우위를 가지기 어려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워렌 버핏은 단순한 투자 천재가 아닙니다. 그는 주식이라는 세계에 완전히 몰입한, 거의 종교적 경지의 헌신자였습니다. 어떤 이가 스피노자를 '신에 취한 사람(God-intoxicated man)'이라 불렀다면, 버핏은 '주식에 취한 사람(Stock-intoxicated man)'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삶은 어릴 적부터 남달랐습니다. 단 11살의 나이에 첫 주식을 샀고, 그 이후로 수십 년 동안 그는 한결같이 기업 보고서와 재무제표를 음악처럼 즐기며 읽어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뉴스를 보고, 스포츠를 즐기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버핏은 기업 보고서에 코를 박고 숫자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놀이공원에 가서도 그는 벤치에 앉아 회계 보고서를 읽었고, 집 안에서는 연례보고서를 읽으며 가구에 부딪히기 일쑤였습니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정신은 늘 기업의 수익률과 세무 구조, 감가상각 스케줄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겁니다.

 

그의 이러한 몰입은 단순한 근면성실을 넘어서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는 '즐기며 집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은 지루해할 숫자와 문서 속에서 그는 무한한 흥미를 발견했고, 그 즐거움이 그를 지금의 워렌 버핏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주제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여기에 비상한 기억력까지 더해졌습니다. 수십 년 전에 읽은 책 내용을 줄줄이 외우고, 한 번 본 재무제표의 숫자를 거의 사진처럼 기억하는 능력은 일반인이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영역입니다. 실제로 한 기자가 그와 통화 중 언급한 책에 대해 버핏이 구절을 기억하고 이야기했을 때, 기자가 직접 책을 찾아보니 문장을 거의 완벽하게 암기하고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러한 특성은 그를 인간형 인공지능으로 만들었습니다. 수십 년간 축적된 수많은 기업 정보, 패턴, 숫자들을 마치 내부 데이터베이스처럼 저장하고 있었기에, 그는 어떤 산업 변화나 기업 소식이 들어와도 그 맥락과 의미를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보여준 몰입과 인내, 기억력은 단순히 '노력의 결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는 거의 기질과 본능, 그리고 태생적 성향에 가까운 것이었으며, 이런 조합은 단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희소한 유전자와 환경의 산물이었습니다.

 

결국, 워렌 버핏이라는 인물은 단순히 똑똑한 사람을 넘어, **‘오직 그것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이었고, 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와 같은 인물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 두 번째 요소: '시대'의 축복을 받았다

버핏 본인이 자주 말했듯, 그는 '난소 복권(ovarian lottery)'에 당첨된 사람이었습니다. 1930년 오마하에서 태어난 것은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습니다. 만약 1880년에 태어났다면 주식이 아닌 소나 돼지에 투자했을 테고, 1930년에 시베리아에서 태어났다면 철도 노동자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때마침 벤저민 그레이엄이라는 위대한 투자 이론가를 사사했고, 인덱스 펀드와 기관 투자자들이 시장을 장악하기 전, 틈새 시장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초기 투자 대상은 거의 거래되지 않는 소형주들이었고, 때로는 단일 기업에 30% 이상의 자산을 몰아넣기도 했습니다.

 

1957년부터 1968년까지 버핏은 S&P500이 연평균 10.5% 수익을 올릴 때, 25.3%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운이 아닌, 시장의 틀 밖에서 투자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과입니다.

 

 

워렌 버핏의 성공은 개인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시대'라는 거대한 운명의 파도 위에 올라탈 수 있었던 행운아였습니다. 본인 역시 이를 인정하며 자주 말하곤 했습니다. “나는 *난소 복권(ovarian lottery)*에 당첨된 사람”이라고요. 즉, 자신이 태어난 시기와 장소, 시대적 배경이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 버핏이 오마하가 아닌 시베리아에서 태어났다면?

만약 버핏이 1930년이 아닌 1880년에 태어났다면 어떨까요? 그때는 주식시장이 지금처럼 활발히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돼지와 소를 사고팔며 수익을 내는 ‘축산 투자자’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같은 1930년이라도 미국이 아닌 구소련의 오므스크에서 태어났다면? 그는 증권 분석이 아닌 철도 작업에 종사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투자라는 개념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시대나 지역에서는, 버핏이라는 인물조차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 가치투자의 아버지를 만난 '절묘한 타이밍'

또한 버핏은 **가치투자(value investing)**라는 개념이 막 태동하던 시점에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는 가치투자의 창시자,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의 제자가 됩니다. 지금으로 치면 ChatGPT를 직접 만든 사람에게 인공지능을 배운 셈입니다. 이처럼 지식이 널리 퍼지기 전, 그것을 ‘원천’에서 직접 배운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는 선구자 중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레이엄이 가르친 ‘내재가치보다 낮게 거래되는 기업을 사라’는 원칙은 이후 버핏의 투자 철학이 되었고, 오늘날 가치투자의 정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이 전략이 혁신이었고, 이를 실전에서 구현해낸 인물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는 신생 투자 철학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먼저 움직일 수 있었던 ‘개척자’였습니다.

💸 기관 자금이 없던 시장에서 기회를 낚다

오늘날의 금융 시장은 수천 개의 헤지펀드, 수백 조 원을 굴리는 연기금, 알고리즘 기반의 초단타 매매로 가득 찬 곳입니다. 작은 기업의 숨은 가치는 AI와 퀀트 모델에 의해 실시간으로 추적되고, 이미 많은 투자자가 경쟁적으로 매수에 나섭니다.

 

하지만 버핏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1950~60년대에는 지나치게 비효율적인 시장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대형 우량주에만 집중했고, 작은 지방 기업이나 정보 공개가 느린 종목들은 투자 대상에서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버핏은 그 틈을 파고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샌본 맵(Sanborn Map)**이라는 기업은 지도 제작을 하던 회사였지만, 그 보유 자산이 시가총액보다 훨씬 많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수년간 천천히 지분을 모은 후, 이 기업을 인수해 가치 이상으로 매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전략은 현재와 같은 빠르고 투명한 시장에서는 구현 자체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던 ‘틈새’가 무한히 열려 있던 시대였고, 그 틈을 볼 수 있는 눈과 인내를 갖춘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버핏은 독주할 수 있었습니다.

📈 역사상 가장 긴 경기 확장의 수혜자

또한 버핏의 투자 경력 대부분은 미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룬 시기와 겹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글로벌 경제의 중심에 섰고, 산업화와 기술 혁신, 소비시장 확대가 이어졌습니다. 1980년대에는 금융 시장이 개방되고, 1990년대에는 IT 붐, 이후 글로벌화가 전개되며 시장은 거대한 규모로 팽창해갔습니다.

 

버핏은 이러한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정점에서 경험한 유일한 인물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타이밍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이 흐름을 인식하고 거부하지 않았고, “미국 경제를 믿는다”는 신념을 실천해온 보기 드문 투자자였습니다.

 

 

 


🧰 세 번째 요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투자 구조'

버크셔 해서웨이는 그 어떤 투자 펀드와도 다릅니다. 헤지펀드도, 뮤추얼펀드도, ETF도 아닙니다. 수수료가 없고, 성과급도 없으며, 외부 투자자에게 자금을 모으지도 않습니다. 오직 내부에서 창출되는 현금 흐름으로만 운영됩니다.

 

이 구조 덕분에 버핏은 시장의 사이클에 휘둘리지 않는 안정적인 투자 환경을 확보했습니다. 대부분의 펀드는 수익이 나면 투자금이 몰려오고, 손실이 나면 돈이 빠져나가는데, 이는 오히려 성과를 악화시키는 '친(親)순환성' 문제를 야기합니다. 반면, 버크셔는 외부 자금 유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롯이 기회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버핏에게 ‘시간과 기회의 주권’을 주었고, 이는 대부분의 펀드 매니저들이 감히 누릴 수 없는 특권이었습니다.

 

 

워렌 버핏이 이룬 위대한 투자 성과는 단순히 ‘무엇에 투자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구조로 투자했는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다른 투자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투자 생태계를 스스로 설계했고, 그 구조는 지금도 투자 세계에서 유일무이합니다.

🏛️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그릇'

버핏은 자신이 운영하는 투자회사를 단순한 펀드가 아닌,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라는 상장 지주회사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뮤추얼펀드, 헤지펀드, 사모펀드와는 전혀 다른 투자 플랫폼이었습니다. 버크셔는 텍스타일 회사를 시작으로, 철도, 보험, 에너지, 금융, 소비재, 공공서비스 등 수많은 산업의 기업들을 인수하여 직접 운영하거나, 일부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기업 제국’을 형성해갔습니다.

 

즉, 버핏은 투자 대상 기업의 소유자이자 운영자가 되었고, 단기 수익률이 아닌 장기 가치 창출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완성한 것입니다.

💰 수수료 없는 구조 = 복리의 마법을 훼손하지 않음

버크셔 해서웨이는 전통적인 투자 펀드와 달리 운용 수수료나 성과 수수료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펀드는 고객 자산을 관리하며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떼어가고, 성과가 좋으면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요구합니다. 이는 시간이 지나며 투자 수익률을 갉아먹는 '보이지 않는 누수'로 작용합니다.

 

반면, 버핏은 수익이 100% 투자자에게 귀속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의 복리 수익률(연 19.9%)은 순수한 투자 성과였고, 여기에 불필요한 비용이 붙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장기적 복리의 위력이 극대화된 것입니다.

🔁 외부 자금 유입/유출이 없는 '폐쇄적 순환 구조'

대부분의 펀드들은 시장의 흐름에 따라 돈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수익이 좋을 때는 투자금이 몰려들고, 수익이 나쁘면 대거 환매가 발생합니다. 이런 친(親)순환성(procyclicality) 구조는 펀드의 장기 성과에 악영향을 줍니다. 상승장에서는 비싸게 매수하고, 하락장에서는 싸게 팔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버크셔는 다릅니다. 신규 투자자에게 돈을 받지도, 기존 투자자가 자금을 뺄 수도 없습니다. 투자자는 단지 시장에 상장된 버크셔 주식을 사고팔 뿐입니다. 이로 인해 버크셔의 투자 전략은 외부의 감정적 자금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철저히 내부 현금 흐름에 기반해 장기 전략을 집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투자 대상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

버크셔는 기존 펀드들이 적용받는 여러 제한—예를 들어 산업 섹터 비중 제한, 유동성 요건, 파생상품 비율 규제 등—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습니다. 그 결과, 공개 시장의 상장 주식, 비상장 기업의 인수, 채권, 현금, 심지어 은(銀)까지도 그의 포트폴리오 안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즉, 버핏은 시장 상황에 따라 ‘전략적 무기’를 바꿔가며 대응할 수 있었고, 이는 대부분의 펀드매니저들이 누리지 못하는 절대적 전략적 유연성이었습니다.

🧱 누구도 재현할 수 없는 구조적 '모형'

현재 대부분의 전문 투자자들은 고객의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구조를 따릅니다. 이는 수수료 수익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성과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아도 충분히 높은 보수를 보장합니다.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장기적으로 성과를 내기보다는, 단기 실적 방어와 포트폴리오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버핏은 애초에 자신과 소수의 파트너 자금으로 시작했고, 그것을 증식시키는 과정에서 절대적인 통제권과 독립성을 유지해왔습니다. 이 구조는 ‘자유롭지만 책임지는 투자자’를 만들었고, 수십 년간 한결같은 전략을 고수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 결론: 버핏은 단지 천재가 아니었다. 유일한 존재였다

워렌 버핏은 뛰어난 투자자였지만, 그보다 더 드문 것은 그가 '거의 한 세기 동안' 그 실력을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성공은 단순한 기술이나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시대-구조라는 세 가지 희귀한 조건이 한 사람에게 극적으로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제는 AI가 데이터 해석을 도우며, 시장은 수조 원 규모의 펀드들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펀드 매니저는 과감한 시도를 하기보다는,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 속에서 안주하길 선택합니다.

 

결국, 진정으로 워렌 버핏을 닮은 사람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돼지가 날아다니는 일보다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전설적인 인물이 남긴 족적을 깊이 새기고, 그 정신을 이어가는 데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워렌 버핏의 투자 인생을 돌아보면, 이는 하나의 기적이자 정교한 구조물이었습니다. 단순히 ‘좋은 기업을 싸게 사서 오래 보유했다’는 교과서적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인격과 철학, 시대적 배경, 그리고 제도적 설계가 정교하게 맞물린 복합체였습니다.

 

그는 주식에 ‘몰입하는 능력’과 이를 수십 년간 유지할 수 있는 ‘정신적 체력’을 지녔고, 전후 자본주의의 급성장기라는 드문 시대에 태어났으며,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세상에 하나뿐인 투자 구조를 설계해냈습니다. 이러한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빠졌다면,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워렌 버핏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의 투자 환경에서는 이러한 조건들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AI가 정보를 실시간 분석하고, 수많은 펀드가 비슷한 전략을 쓰며, 투자자들은 수익률에 따라 민감하게 자금을 이동시키는 구조 속에서, 버핏이 구현했던 장기적, 독립적, 비인기 전략은 재현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단지 또 다른 ‘버핏’을 기다리기보다는, 그가 남긴 철학을 이해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장기적 사고, 독립적 판단, 그리고 윤리적 자본 배분자로서의 책임을 이어가야 합니다. 워렌 버핏은 사라지지만, 그가 만든 정신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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