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육 현장은 마치 ‘AI 군비 경쟁’을 보는 듯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새로운 AI 도구 소식에 학부모 설명회는 불안감으로 가득 차고, 서점가에는 ‘AI 시대 우리 아이의 미래’를 약속하는 책들이 넘쳐납니다. 이 거대한 기술의 파도 앞에서 많은 부모와 교육자들이 “대체 무엇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길을 잃고 있습니다.
모두가 변화의 속도에 발을 맞추려 허둥댈 때,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김상욱 교수는 오히려 잠시 멈춰 서서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는 이 혼돈의 해답이 최신 트렌드를 쫓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것, 즉 ‘변하지 않는 가치’를 이해하는 데 있다고 역설합니다. 물리학자의 눈으로 본 교육의 본질은,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질문에 가장 차가운 해답을 제시합니다.


1. 물리학자의 접근법: 혼돈 속에서 '보존 법칙'을 찾아라
김상욱 교수는 현재의 AI 시대를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이는 ‘이중 진자(Double Pendulum)’에 비유합니다. 진자 하나는 사인과 코사인 함수로 쉽게 예측되지만, 거기에 진자 하나를 더 연결하는 순간, 그 움직임은 수학적으로 풀 수 없는(안 풀리거든요) ‘카오스 운동’으로 변모합니다. 다음 순간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혼돈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이토록 복잡한 움직임 속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절대 법칙이 존재합니다. 바로 시스템 전체의 에너지 총합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에너지 보존 법칙’입니다.
이 비유는 교육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AI처럼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변화의 흐름을 쫓아가려고 애쓰기보다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핵심 주장입니다.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변하지 않는 기준점을 세워야 한다는 물리학자의 접근법입니다.
이 통찰은 세계적인 경영인의 전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략은 변하지 않는 것에 토대를 두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5년 후나 10년 후에 무엇이 변할 것인지 묻지만, 무엇이 변하지 않을 것인지는 묻지 않습니다."


2. 오늘의 필수 기술이 내일의 불필요한 기능이 될 수 있다
물리학자의 접근법은 단순한 이론적 유희가 아닙니다. 그 지혜는 우리가 한때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 가장 안전한 투자처라 믿었던 분야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격변을 통해 명백히 증명되고 있습니다. 바로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입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코딩은 미래 필수 역량이었고 컴퓨터 공학과는 최고의 인기 학과였습니다. 김 교수는 이 지점을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공지능이 뜨고 코딩이 뜰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게 망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프로그래밍 능력은 이미 신입 프로그래머의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올해 졸업한 컴퓨터 공학 전공자들이 취업난을 겪고 있으며 국내 IT 기업들조차 신입 채용을 줄이고 있습니다.
이 사례는 새로운 기술의 미래를 섣불리 예측하고 변화를 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기술의 장기적 영향을 예측하는 데 번번이 실패해왔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입니다. 사회심리학자 조나선 하이트의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이 보급된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서구 10대들의 우울증과 자살률이 3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어른들은 SNS를 ‘소통’의 도구라 믿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자신을 끊임없이 전시하고 비교하며 ‘좋아요’ 개수에 스트레스받는 강박적인 ‘노동’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우리는 스마트폰이 아이들에게 미친 파괴적인 영향을 깨닫고 규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공지능의 예측 불가능성은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입니다.


3.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것들'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10년, 20년이 지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여전히 중요할, 변하지 않는 교육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김상욱 교수는 다음과 같은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조언합니다.
• 역사와 철학: “인간의 본성은 5만 년 이래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술은 변해도 사랑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복수하는 인간의 행동 패턴은 소크라테스 시대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변하지 않는 인간을 배우고 미래를 통찰할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예술: AI가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는 시대에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불확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즐기는 것으로서의 예술”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10년 후에도 우리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아름다운 디자인에 감동할 것입니다.
• 읽고, 쓰고, 듣고, 말하기: 이것이 바로 지식인이 하는 일의 본질입니다. 논문을 읽고, 강연을 듣고, 생각을 정리해 글로 쓰고, 말로 발표하는 것. 이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AI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AI에게 끌려다니게 될 것입니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제대로 활용하는 주체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 수학, 물리, 화학, 생물 (기초 과학): 이 학문들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김 교수는 변하지 않는 정도에 따라 명확한 위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수학이 가장 안 변할 겁니다. 그다음 물리가 안 변할 겁니다. 그다음 화학이고 그다음 생물이에요.” 특히 수학과 물리학은 증기기관의 1차 산업혁명부터 전기(2차), 컴퓨터(3차), 그리고 AI(4차)에 이르기까지 지난 네 차례의 혁명을 모두 이끈 핵심 동력이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대기업은 다 물리하게 하는 겁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다 물리하게 하는 겁니다.”라는 도발적인 말로 기초 과학이 학문적 이상이 아닌 경제적 현실임을 강조합니다.
반도체 설계의 전설 짐 켈러 역시 한국 방문 시 같은 맥락의 말을 남겼습니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예술을 하고 연극을 하고 악기를 배우고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역사를 배워야 한다. 기본이 항상 최고다."



4. 교육의 진짜 목표: '행복'이라는 환상과 '독립'이라는 현실
이 모든 교육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부모가 생각하는 행복(좋은 대학, 안정적 직장)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김 교수는 자연의 세계에서 더 명확한 답을 찾습니다. 동물들이 새끼를 가르치는 유일한 목표는 바로 ‘독립’입니다. 교육의 목표는 아이가 “부모의 도움 없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하여 혼자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실질적인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재의 AI 교육 논의는 치명적인 모순에 빠집니다. 김 교수는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아이가 독립하는 것이 목표인데, (모든 답을) 인공지능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거잖아요.” 독립을 가르친다면서 의존을 훈련시키는 역설입니다.
여기에 아인슈타인은 한 차원 높은 목표를 더했습니다. 교육의 목표란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생각하지만, 공동체를 위해서 일하는 것을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업적으로 여기는 개인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이 문장의 깊이는 단순히 ‘남을 도우라’는 말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내가 직접 돕지 못할 때라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타인을 보았을 때 그것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 알아보고 지지할 줄 아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스스로 설 수 있는 ‘독립적인 개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을 길러내는 것. 이 두 가지가 AI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을 교육의 기준점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AI에게 길을 묻지 말고, 우리 안의 나침반을 보라
AI라는 강력하고 낯선 도구의 등장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AI를 어떻게 쓸까?’라는 기술적 질문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교육의 근본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아이가 독립적인 개인으로, 그리고 더 나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돕는다는 목표를 세운다면, AI는 더 이상 불안의 대상이 아니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변화의 파도 앞에서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해답은 다음 기술 트렌드가 아닌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에 있습니다. 이제 외부의 소음을 줄이고, 우리 안의 교육 나침반을 들여다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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