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인공지능 '알파고'가 던진 돌은 단순한 승부를 넘어 인류의 지적 자부심에 거대한 균열을 냈다. 2,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인간이 쌓아 올린 바둑의 성채는 불과 10년 만에 인공지능이라는 연산 장치에 의해 완전히 재편되었다. 이를 두고 바둑계에서는 '천지개벽'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이제 바둑판은 고뇌하는 인간의 '대화의 장'이 아닌, 최적의 정답을 찾아내는 '연산의 전장'으로 변모했다. 오늘날 세계 정점에 선 신진서 9단은 그 변화의 한복판에서 기계의 논리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1. '기풍(Style)'의 실종: 정답지가 공개된 시대의 비극
과거의 바둑은 한 사람의 인생관과 철학이 투영된 예술이었다. 조훈현 국수의 화려한 전신(戰神)적 감각이나 이창호 9단의 정교한 계산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풍'이었으며, 팬들은 그 개성에 열광했다. 그러나 모든 수에 대해 인공지능이 승률 기반의 '블루스팟(최선의 수)'을 실시간으로 제시하게 되면서, 바둑판 위에서 기풍이라는 단어는 희미해졌다.
이제 '나만의 창의적인 수'는 인공지능의 정답지에서 벗어나는 순간 즉시 '오답'이자 '실수'로 규정된다. 정답이 명확히 존재하는 사회에서 개성은 불필요한 노이즈일 뿐이다. 모든 기사가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최적의 경로만을 쫓게 되면서, 바둑은 '나를 표현하는 예술'에서 '정답을 찾아내는 고행'으로 변질되었다.
"AI가 나온 뒤로는 기풍이란 게 없어요. 너나 나나 똑같아. AI가 추천하니까 그렇게 둘 수밖에 없고, 매수는 건 나쁘다는데 누가 두겠어요. 예전에는 조훈현류, 이창호류 하는 유행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졌습니다." — 조훈현 국수


2. '신공지능' 신진서: 기계의 논리를 직관으로 번역하는 인간
이러한 정답 사회에서 가장 압도적인 성취를 거두고 있는 인물이 바로 세계 랭킹 1위 신진서 9단이다. 대중은 그를 '신공지능'이라 부른다. 데이터가 증명하듯 그의 수는 인공지능과의 착수 유사도가 무려 37.6%에 달하며, 이는 95.7%라는 경이로운 승률로 이어진다.
하지만 신진서의 진정한 경지는 단순한 '암기'에 있지 않다. 그는 인공지능이 왜 그곳을 블루스팟으로 지목했는지, 그 차가운 기계의 논리를 인간의 감각과 직관으로 '치환'하는 독보적인 능력을 갖췄다. 기계의 언어를 인간의 직관으로 번역해내는 유일한 기사, 그것이 신진서가 인공지능 시대에 도달한 새로운 인간의 형상이다.



3. 지식의 비대칭성: AI는 왜 격차를 더 벌리는가?
인공지능이 모두에게 공평한 정답지를 제공하므로 실력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오히려 상위 랭커와 하위 랭커의 격차는 과거보다 더 심화되는 '지식의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인공지능이라는 정교한 '답안지'를 보고도 그것이 왜 정답인지 해독할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는 AI가 강력한 무기가 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해독 불가능한 암호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상위 랭커들이 AI를 통해 자신의 논리를 더욱 견고하게 다듬는 동안, 하위 기사들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기술이 지식의 민주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은, '이해력의 차이'라는 벽 앞에서 좌절된 셈이다.



4. 도제식 교육의 종말과 알고리즘의 권위
전통적인 바둑 교육은 스승이 제자의 바둑을 복기해주며 지혜를 전수하는 도제식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스승의 권위'는 '알고리즘의 권위'로 대체되었다. 최정 9단은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 남녀 기사 간의 정보 접근성이 평등해지며 실력 격차가 줄어들었음을 언급하지만, 그 이면에는 전통적 공동체의 붕괴라는 쓸쓸함이 자리한다.
오늘날 2000년대생 젊은 기사들에게 사범님의 복기는 참고사항일 뿐이다. 사범님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은 스마트폰을 켜고 AI의 그래프를 확인한다. 데이터 기반의 개인주의적 학습이 가져온 효율성은 극대화되었으나, 스승과 제자가 교감하며 바둑의 '도(道)'를 논하던 낭만은 데이터의 홍수 속으로 사라졌다.



5. 사라지는 낭만과 기술의 어두운 단면
바둑이 데이터와 스포츠의 영역으로 완전히 편입되면서, 학문적·예술적 가치는 위협받고 있다. 세계 유일의 대학 전공이었던 '바둑학과'의 폐과 결정은 바둑이 더 이상 대학에서 연구할 '학문'으로서의 매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기술의 발달은 공정성의 문제도 야기했다. 입단 대회에서 AI를 몰래 활용하다 적발되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은 기술이 인간의 도덕성을 어떻게 시험하는지를 보여준다. 분석 결과, 해당 기사가 AI와 일치하는 수를 둘 확률은 '100만분의 1'에 불과했다. 기술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구가 되었을 때, 인간은 너무나 쉽게 그 유혹에 굴복할 수 있다는 서늘한 경고다.


결론: 정답의 시대, 왜 여전히 바둑인가?
신진서 9단은 AI를 "감정 없는 스승이자, 바둑의 길을 같이 걸어가는 동행자"라고 말한다. 정복자가 아닌 동반자로 AI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공지능이 0.1%의 오차도 없이 모든 정답을 알고 있다면, 인간은 왜 여전히 바둑판 앞에 앉아 고통스러운 복기를 반복하는가?
그 답은 아마도 '결과'가 아닌 '과정의 고통'과 '해석의 즐거움'에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답을 줄 뿐, 그 답에 이르는 인간의 고뇌와 환희까지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AI가 모든 정답을 알려주는 시대, 우리가 찾아야 할 인간만의 가치는 역설적이게도 '틀릴 수 있는 자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수로 응전하는 인간의 의지'에 있다. 당신의 분야에서 AI는 스승인가, 아니면 당신의 낭만을 앗아가는 정복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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