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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 생각, 에세이

헤엄칠 만한 인간

by Heedong-Kim 2025. 11. 29.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기 전, 이미 물속에서 한 번의 삶을 경험한다. 양수라는 부드러운 물의 품 속에서 태아는 자라고, 움직이고, 세상의 첫 리듬을 배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성장한 뒤 물속에 다시 몸을 담그면 우리는 낯설음과 두려움을 먼저 마주한다. 물속에서 숨을 고르며 헤엄치기 위해서는 다시 배우고, 익숙해지고, 무엇보다 마음을 여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은 우리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긴장한 어깨는 자연스럽게 굳어가고, 힘을 잔뜩 준 팔다리는 움직임을 잃어버린다. 그 순간 몸은 가라앉기 시작한다. 물은 억지와 과한 힘을 거부한다. 반대로, 힘을 빼고 스스로를 물에 맡기는 순간, 몸은 가볍게 떠오르고 호흡의 흐름도 부드러워진다. 물은 우리의 긴장을 흡수하고, 내려놓는 법을 알 때에야 비로소 우리를 받아들인다.

 

살면서도 비슷한 순간을 자주 마주한다. 끝까지 버티려는 의지가 오히려 나를 짓누르고, 더 빠르게 달리려는 마음이 나를 제자리로 되돌린다. 물속에서 팔다리를 빠르게 휘저어 큰 물장구를 만들수록 몸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듯, 삶에서도 과한 몸부림은 방향을 잃게 한다. 크게 움직일수록 많은 에너지를 쓰지만 성과는 빈약하다. 노력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고, 정작 원하는 곳에는 도착하지 못한다.

 

헤엄은 우리에게 중요한 진실 하나를 알려준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압도적인 힘이 아니라 일정한 리듬이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작, 무리 없는 호흡, 부드러운 물살의 감각이 모여 몸을 앞으로 밀어낸다. 몸이 물속을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순간, 속도는 힘에서 나오지 않는다. 균형과 흐름,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삶의 많은 장면도 그렇다. 모든 일을 완벽히 통제하려 하거나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방식은 오래 가지 못한다. 때로는 정교하게 계산된 계획보다 작은 일상의 리듬을 지키는 것이 더 큰 원동력이 된다. 힘을 빼고 온전히 흐름에 자신을 맡길 때, 우리는 더 멀리, 더 단단하게 전진한다.

 

헤엄치는 인간은 물속을 정복하는 존재가 아니다. 물과 함께 흐르고, 물의 저항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리듬을 찾아가는 존재다. 결국 잘 헤엄치는 법은 덜 힘쓰는 법, 더 깊이 느끼는 법, 그리고 스스로를 믿고 천천히 꾸준함을 반복하는 법이다.

 

우리는 누구나 헤엄칠 만한 인간이다. 물속에서 떠오르는 순간을 기억한다면,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떠오르고 나아갈 수 있다. 긴장을 내려놓고, 리듬을 찾고, 자연스러운 속도로 꾸준히 움직인다면 어떤 물살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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