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관념이 되어버린 요리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영화 '더 메뉴(The Menu)'는 외딴섬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펼쳐지는 하룻밤의 디너 코스를 통해, 현대 파인 다이닝이라는 화려한 무대 뒤에 도사린 지적 허영과 실존적 공허를 겨누는 날카로운 메스(scalpel)와 같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우리가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어느덧 요리는 혀끝의 순수한 즐거움을 넘어 지적 유희와 분석, 혹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관념의 도구로 변질되지 않았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은 작품 속 스타 셰프 '슬로윅'이 느끼는 깊은 예술가적 환멸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본 에세이는 영화 '더 메뉴'의 서사를 중심으로, 현대 파인 다이닝을 구성하는 문제적 인물 군상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자 한다. 나아가 프랑스 요리의 역사적 맥락을 통해 미식이 어떻게 관념화되었는지 추적하고, 공동체적 즐거움을 중시하는 한국의 음식 문화와 비교하며 미식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 탐색해 볼 것이다.


1. '더 메뉴'가 그린 공허한 식탁: 위선으로 가득 찬 파인 다이닝의 세계
'더 메뉴'는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 파인 다이닝이라는 무대 위에서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는 주요 행위자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정교한 사회 풍자극이다. 셰프 슬로윅이 준비한 죽음의 만찬에 초대된 손님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요리의 본질을 훼손하고, 예술가로서의 셰프를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영화가 제시하는 세 가지 대표적인 고객 유형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파인 다이닝이 마주한 공허함의 실체를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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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과시형 미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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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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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는 음식을 사랑한다고 자부하지만, 그의 관심은 맛의 즐거움이 아닌 지식의 과시에 있다. 그는 음식을 맛보기보다 분석하고, 요리에 대한 해박함을 동석자에게 끊임없이 설파한다. 이러한 태도는 요리를 순수한 감각적 경험이 아닌, 정답을 맞춰야 하는 시험이나 평가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이는 창작자인 셰프에게 자신의 예술이 제대로 음미되지 못한다는 깊은 좌절감을 안겨주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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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을 소비하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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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안 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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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음식 평론가 릴리안은 셰프가 내놓은 '빵 없는 빵 요리'를 "파격적"이라며 극찬한다. 실체는 없고 관념만 남은 이 요리를 통해, 영화는 의미 있는 담론과 현학적인 수사를 실체적 경험보다 우위에 두는 현대 평론계의 문제를 꼬집는다. 이는 실체 없이 담론만 남은 발렌시아가의 '쓰레기 봉투' 패션처럼, '옷 없는 패션'과 궤를 같이 하는 예술계의 공허함을 반영한다. 평론가의 권위는 "빵이 없는데 무슨 빵 요리냐"는 상식적 질문을 무지한 것으로 치부하며, 대중의 솔직한 감상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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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한 습관적 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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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단골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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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의 오랜 단골인 부유한 노부부는 지난번 방문 때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이 값비싼 식사는 셰프의 예술혼을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들의 경제적 지위를 확인하고 유지하기 위한 습관적 소비에 불과하다. 셰프의 집념이 담긴 요리는 이들에게 아무런 감흥도, 기억도 남기지 못하는 공허한 사치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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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지식을 과시하는 아마추어, 담론에만 집착하는 평론가, 요리에 무관심한 습관적 소비자들로 가득 찬 식탁에서 셰프 슬로윅의 예술가적 영혼은 서서히 잠식당했다. 그의 요리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순수한 기쁨을 주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손님들의 위선과 허영을 만족시켜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되었을 뿐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요리를 통해 스스로를 파괴하고, 자신을 환멸에 빠뜨린 세계를 함께 끝내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파인 다이닝의 비극은 음식이란 본디 공동체의 가치였음을 망각한 데서 비롯된다. 그 변질의 역사적 뿌리는 미식 담론을 주도해 온 프랑스 요리의 변천사에서 찾을 수 있다.



2. 잃어버린 영혼: '콩비비알리테'에서 관념 예술로 변해버린 미식
현대 파인 다이닝이 보여주는 지적이고 관념적인 특성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 해답의 실마리는 프랑스 요리의 역사적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는 '요리의 나라'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미식의 본질은 중대한 변화를 겪었다.
프랑스 요리 지질학자 장-로베르 피트의 저서 『가스트로노미 프랑세즈』에 따르면, 프랑스 음식 문화의 전통적인 핵심 철학은 **'콩비비알리테(convivialité, 함께 살아감)'**와 **'콩망수알리테(commensalité, 식탁을 나눔)'**라는 개념에 있었다. 17~18세기 프랑스에서 요리와 와인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대화를 활성화하며, 함께 정을 나누게 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매개체였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요리는 점차 생존을 위한 행위를 넘어 '지적으로 분석하고 예술로 즐기는' 대상으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진정한 혁신은 뛰어난 요리를 만든 것에 그치지 않고, 요리에 대해 논하고 평가하는 **'언어와 담론의 체계'**를 창조한 데 있다. 브리아사바랑과 같은 전문 평론가를 배출하고, '줄리앙(julienne)'이나 '포와레(poêlé)' 같은 조리법 용어를 체계화함으로써, 프랑스는 전 세계 요리의 언어를 장악했다. 다른 나라의 셰프들조차 자신의 요리 기술을 설명하기 위해 프랑스어를 빌려 써야만 했다.
이러한 지적 접근은 요리를 하나의 학문이자 예술로 격상시켰지만, 동시에 요리를 대중의 일상과 멀어지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미식은 함께 나누는 즐거움에서 소수의 전문가와 애호가만이 향유하는 난해한 영역으로 변모했다. '더 메뉴'에 등장하는 **'빵 없는 빵 요리'**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흐름이 낳은 극단적인 결과물이다. 담론이 실체보다 중요해지고, 파격적인 관념이 맛의 경험을 압도하는 미식의 세계는 '콩비비알리테'의 정신을 완전히 상실한 채, 영화 속 풍자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실체보다 담론이 앞서는 서구 미식의 관념화에 맞서, 한국의 음식 문화는 그 강력한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3. 한국적 대안: 관계와 즐거움의 미학
서구 파인 다이닝의 관념화에 대한 강력한 대안으로, 공동체적 즐거움과 감각적 체험을 중시하는 한국 음식 문화의 독자적 가치가 부상하고 있다. 한국의 식문화는 분석과 평가 이전에, 함께하는 즐거움 그 자체에 핵심을 둔다.
과거 한국에서는 **"밥 먹으면서 평하면 혼났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을 분석하기보다 맛있고 복스럽게 먹는 행위 자체를 미덕으로 여겼다. 이러한 문화는 관념화된 요리에 대한 본능적인 반감을 내재하고 있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오늘날 한국 요리가 가진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이러한 특성은 뉴욕의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성공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미쉐린 스타를 받은 **'꽃(Kochi)'**과 '코트(Cote)' 같은 레스토랑들은 단순히 완성된 요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손님들이 테이블에서 직접 고기를 굽고, 손으로 쌈을 싸 먹는 등의 상호작용적 경험을 제공한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지글거리는 소리를 듣고, 함께 웃고 떠들며 술잔을 기울이는 분위기는 전 세계인들에게 지적 분석을 앞세운 관념적 미식과 대비되는, 오감을 통해 공동체적으로 체화하는 본질적 미식 경험으로 인식되었다.
결국 K-팝이 너무 난해해진 팝 음악을 다시 대중의 영역으로 끌어왔듯, 한국의 음식 문화 역시 '뜬구름 잡는 소리'로 흘러가기 쉬운 미식의 세계를 다시 '땅으로 끌어당겨' 누구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요리의 진정한 저력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서로 다른 미식 문화 속에서, 개인은 낯선 고급 문화를 어떻게 경험하고 자신만의 미식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을까?




결론: 치즈버거의 교훈과 '관광객'으로서의 미식가
'더 메뉴'의 비극적 서사와 다양한 음식 문화에 대한 고찰은 우리에게 미식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한다. 그 해답의 실마리는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의외의 음식, '치즈버거'에 있다.
주인공 '말고'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주문한 **'치즈버거'**는 셰프 슬로윅을 구원하는 상징적인 매개체다. 그녀는 셰프의 방에서 그가 젊은 시절 동네 식당에서 행복하게 햄버거를 굽던 사진을 보았다. 그녀의 주문은 복잡한 담론이나 허례허식이 아닌, "배고프니 맛있는 것을 달라"는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욕망의 표현이었다. 이 주문을 받은 셰프는 눈물을 흘리며 요리사로서의 초심과 순수한 창작의 기쁨을 되찾는다. 치즈버거는 허영으로 가득 찬 파인 다이닝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진정한 행복과 교감의 가치를 일깨우는 구원의 음식이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경직됨은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튀스(Habitus)'**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이 특정 사회 환경 속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체화한 문화적 취향과 행동 양식을 의미한다. 그 공간과 문화가 어린 시절부터 체화된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느끼는 현상인 것이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포크와 나이프 사용법 하나에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낯섦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는 대신, 스스로를 **'관광객(Tourist)'**으로 규정하는 자세를 제안한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해외에 가면 현지인처럼 행동하려 애쓰기보다, 관광객으로서 그곳의 문화를 배우고 관찰하며 즐긴다. 마찬가지로, 내 아비튀스가 아닌 파인 다이닝 공간에 갈 때 '단골' 대접을 받으려 하기보다, '관광객'으로서 새로운 문화를 탐험하는 여행의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어떨까? 그때의 경험은 더 이상 스트레스가 아닌, 지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탐구 과정으로 변화할 수 있다.
결국 '더 메뉴'의 교훈은 명확하다. 프랑스 미식의 역사가 증명하듯 담론과 관념으로만 치우친 요리는 '빵 없는 빵 요리'처럼 공허해지기 마련이며, 한국의 식문화가 보여주듯 본질적인 즐거움은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셰프 슬로윅을 구원한 치즈버거는, 이 양극단 사이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균형점이란 결국 기술과 예술을 넘어선 인간적 교감과 순수한 만족감에 있음을 웅변하는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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