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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사 수, ‘엔지니어의 엔지니어’가 바꾼 반도체 세계

by Heedong-Kim 2025. 10. 12.

21세기 반도체 산업은 ‘규모의 전쟁’이었다.
더 미세한 공정, 더 강력한 칩, 더 거대한 자본—
이 셋이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시대에, 리사 수(Lisa Su)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녀는 기술을 믿었지만, 기술만으로는 승부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리사 수는 엔지니어로서의 정밀함과 CEO로서의 통찰을 결합했다.
공장보다 설계, 속도보다 실행, 카리스마보다 신뢰.
그녀가 세운 이 세 가지 원칙은, 한때 몰락 직전이던 AMD를 AI 시대의 주역(Main Player) 으로 되살려냈다.

 

리사 수는 스스로를 ‘엔지니어의 엔지니어’라 불렀다.
그 말은 곧 **“이해하지 못한 것은 결정하지 않는다”**는 철학의 선언이었다.
수많은 CEO가 시장의 유행을 좇을 때, 그녀는 묵묵히 회로와 공정표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으로 남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단지 한 여성 CEO의 성공담이 아니다.
그건 기술과 리더십, 겸손과 실행, 논리와 인간미가 교차한 한 시대의 서사다.
AI 혁신의 중심에서, 리사 수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실행하고 있습니까?”

 

 

 


👧 퀸즈의 소녀가 세상을 뜯어보기 시작하다

리사 수(Lisa Su)는 어릴 때부터 세상을 ‘열어보는’ 아이였다. 형의 리모컨 자동차가 고장 나자, 그녀는 드라이버를 들고 뚜껑을 열었다.
느슨해진 전선을 찾아내고, 스스로 납땜을 배워 장난감을 고쳤다. 그 어린 호기심은 훗날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오가는 실리콘 세계를 지배하는 힘으로 자라났다. 그녀가 “기계 안의 물리”를 이해하려 했던 순간부터, 리사 수의 인생은 ‘탐구와 복원’의 연속이었다.

 

리사 수(Lisa Su)는 1970년 대만 타이난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수학자였고, 어머니는 회계사였다. 숫자와 논리가 일상 언어처럼 오가는 가정이었다. 세 살 무렵, 가족은 더 나은 교육과 기회를 찾아 미국 뉴욕 퀸즈로 이주했다. 언어도, 문화도, 기후도 낯선 땅이었다. 어린 리사는 말보다 관찰로 세상을 이해하는 아이였다. 사람의 말을 흉내 내기보다는, 손에 쥔 장난감이나 가전제품의 구조를 유심히 살폈다.

 

그녀가 다섯 살 때, 형의 리모컨 자동차가 고장 났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울거나 부모에게 달려갔을 장면에서, 리사는 조용히 작은 드라이버를 들었다.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 것이다.


“이건 왜 움직이지 않을까?”
그녀의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이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식이었다. 느슨해진 전선을 찾아내고, 전류의 흐름을 머릿속으로 그려본 뒤, 스스로 납땜질을 배워 자동차를 고쳤다.

 

그때 그녀는 깨달았다.

“기계는 고장나는 게 아니라, 이해되지 않을 뿐이다.”

 

이후로 리사 수에게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기계’였다. 라디오를 분해하고, 시계의 톱니바퀴를 맞춰보며, 세상의 원리를 몸으로 배웠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손끝이 늘 검게 그을려 있는 걸 보고 한숨을 쉬었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묘한 자신감을 느꼈다.


“이 아이는 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퀸즈의 이민자 가정은 넉넉하지 않았다. 부모는 두 직장을 오가며 생계를 꾸렸고, 리사는 그 사이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익혔다. 텔레비전 대신 과학 잡지를 탐독했고, 저녁마다 부엌 식탁 위에 놓인 오래된 계산기와 놀았다.


숫자, 회로, 논리—그녀에게는 그것이 언어였다.

훗날 그녀는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언제나 세상을 ‘열어보는’ 아이였다. 뚜껑을 열어야 안심이 됐고, 안을 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어린 시절의 습관은 훗날 AMD의 위기를 진단하고, 무너진 조직의 구조를 뜯어 고치며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리더십 철학으로 이어졌다. 리사 수에게 기술은 단지 제품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언어였다.

그녀의 ‘첫 번째 발명품’이 단순한 장난감 복원이 아니라, “논리로 세상을 고치는 능력”의 시작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 MIT에서 배운 건 기술이 아니라 ‘끈기’였다

대만에서 태어나 세 살에 뉴욕 퀸즈로 이주한 리사 수는 수학자 아버지와 회계사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브롱크스 과학고를 거쳐 MIT에서 전기공학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모두 마쳤다. 그녀가 MIT 실험실에서 처음 반도체 칩을 다루며 느낀 건 단순했다.


“이건 완벽히 내 세상이다.”

트랜지스터가 전류를 통제하는 방식, 미세한 전자의 움직임, 회로의 논리 구조—
그녀는 그 복잡한 미시 세계를 음악처럼 느꼈다.


“공학의 아름다움은, 당신이 만든 것이 실제로 세상을 바꾼다는 점이에요.”
그녀가 나중에 인터뷰에서 한 이 말은 리사 수 리더십의 철학이기도 하다.

 

리사 수가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녀는 단지 ‘공부 잘하는 아시아계 학생’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목표는 문제를 푸는 법이 아니라, 문제를 끝까지 붙잡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입학 첫 해, 그녀는 전기공학 수업에서 매일 밤 실험실에 남았다. 교수는 ‘트랜지스터의 전류 흐름을 시각화하라’는 과제를 냈다. 대부분의 학생이 간단한 시뮬레이션으로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리사는 직접 회로를 짜서 실험했다. 실패가 거듭됐다. 칩은 과열로 터졌고, 납땜은 번번이 떨어졌다.


그녀는 새벽 두 시가 넘은 실험실에서 홀로 전선을 다시 이었다. 손끝은 납땜 자국으로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그날, 그녀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결국은 견디는 사람이 이긴다.”

 

그녀가 MIT에서 배운 건 단순한 반도체 지식이 아니었다. ‘끈기(persistence)’라는 공학자의 본능이었다.

당시 MIT의 전자공학 실험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장이었다. 모두가 똑똑했고, 빠르고,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리사 수는 남들과 달랐다.
그녀는 결과보다 과정, 속도보다 완성도를 중시했다. 수업이 끝나도 실험실에 남아 한 회로의 오류를 잡느라 밤을 새웠고, 교수진은 그런 그녀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학생”으로 기억했다.

 

MIT 박사과정 중, 그녀는 당시 혁신적이던 ‘구리 배선(Copper Interconnect)’ 연구에 참여했다.
실리콘 칩의 미세회로에서 알루미늄 대신 구리를 쓰자는 아이디어였다. 당시 업계는 “구리는 불안정해서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리사 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수록, 더 배우고 싶어진다.’
그녀의 논문은 훗날 IBM이 구리 배선을 상용화하는 기술적 기반이 되었고, 그 경험은 AMD CEO가 된 후에도 ‘한계를 뚫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졌다.

 

리사 수는 훗날 MIT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MIT에서 배운 건 공식이 아니라, 인내의 리듬이었어요.
모든 실험은 처음엔 실패하고, 모든 발견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손끝에서 태어납니다.”

 

그녀에게 MIT는 단지 학문의 성전이 아니었다.
실패를 견디는 법, 그리고 그 실패를 데이터로 바꾸는 법을 배운 장소였다.
그때의 훈련이 훗날 AMD가 파산 직전에서 기사회생하는 순간, 그녀를 지탱한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리사 수는 수학자 아버지에게서 논리를, 회계사 어머니에게서 질서를, 그리고 MIT에서 끈기라는 기술을 배웠다.
그녀가 말하듯,

“천재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다. 세상을 붙잡고 놓지 않는 사람이 바꾼다.”

 

 

 


🏢 IBM에서 배운 ‘현실의 속도’, 그리고 AMD로의 귀환

박사 후, IBM에 입사한 리사 수는 구리선을 이용한 반도체 배선 기술 개발에 참여했다.
당시 업계는 “구리는 너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망설였지만, 그녀는 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결국 구리 배선은 반도체 집적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렸고, 이는 산업 전체의 표준이 되었다.

 

하지만 진짜 시험은 AMD에서 찾아왔다. 2012년, AMD는 파산 직전이었다. 시장 점유율은 10% 아래로 떨어졌고, 인텔과 엔비디아는 이미 멀리 앞서 있었다. 그녀가 CEO로 취임한 2014년, AMD의 시가총액은 고작 30억 달러였다.
그때 리사 수가 택한 전략은 “무리하지 말고, 잘하는 일부터 다시 시작하자.”

 

MIT 박사과정을 마친 리사 수는 1990년대 초, IBM 반도체 연구소에 입사했다.
그녀가 처음 맡은 프로젝트는 ‘구리 배선(Copper Interconnect)’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반도체는 알루미늄 배선을 사용했다.
구리는 전도율이 높지만, 산화와 확산이 빠르다는 이유로 “이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실무에서는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던 소재였다.

리사 수는 그 말에 오히려 끌렸다.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직 아무도 충분히 시도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그녀는 일 년 넘게 매일같이 실험실에 머물며 구리의 특성을 연구했다. 실패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칩은 타버리고, 웨이퍼는 불량률이 높았다.
하지만 리사 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보호막을 도입하고, 공정 온도를 조절하며, 결국 세계 최초로 구리 배선을 상용화할 수 있는 공정 모델을 만들어냈다.
그 혁신은 IBM 반도체의 핵심 경쟁력이 되었고, 오늘날 모든 CPU와 GPU의 미세회로가 구리 배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녀는 이 경험을 “연구가 현실이 되는 순간의 전율”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때 깨달은 것도 있었다.

“기술이 아무리 훌륭해도, 시장이 기다려주지 않는다.”

 

IBM에서 리사 수는 기술뿐 아니라 비즈니스의 속도를 배웠다. 한때 ‘연구 중심 기업’으로 불리던 IBM은, 완벽을 추구하느라 종종 혁신의 타이밍을 놓쳤다. 그녀는 이를 가까이서 보며 깨달았다.


“완벽보다 중요한 건 실행의 타이밍이다.”

그때부터 리사 수의 리더십 철학에는 ‘현실의 속도(reality speed)’라는 개념이 자리 잡았다.
이후 그녀는 IBM의 기술을 실제 제품으로 옮기는 ‘기술-시장 연결’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제품 매니저로도 일했다.

 

공학자의 시선에서 출발해, 시장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기술을 ‘설명’하는 대신 ‘팔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법을 익혔다.
그건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기술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생존법이었다. 2000년대 중반, 리사 수는 IBM에서의 성공을 뒤로하고
프리스케일(Freescale) 반도체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자리를 옮겼다.


자동차용 칩, 모바일용 프로세서 등 상용 반도체 시장에서 “기술이 실제 매출로 바뀌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기 위함이었다.
이 시기 그녀는 기술자이자 경영자로서의 균형 감각을 완성했다.

 

2012년, 리사 수는 AMD의 부사장으로 합류했다. 그 당시 AMD는 인텔과 엔비디아에 밀려 위태로운 상태였다.
데이터센터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했고, PC 칩 부문에서도 점유율은 바닥이었다. 그녀가 회의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팀의 표정에는 피로와 체념이 섞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리사 수는 IBM에서 배운 ‘현실의 속도’를 AMD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꺼번에 다 바꾸려 하지 말자. 하지만 하나는 반드시 끝내자.” 라는 원칙을 세웠다.
즉, 모든 영역을 건드리는 대신 ‘가장 중요한 한 가지—고성능 칩 설계’에 집중한 것이다.

 

그녀의 목표는 단순했다. AMD가 다시 경쟁력을 가지려면, 시장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아야 했다.
완벽한 제품은 없어요. 하지만 충분히 좋은 제품은 지금 당장 내놓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은 IBM에서 얻은 교훈, 즉 기술보다 실행의 속도가 회사를 살린다는 깨달음이었다.

 

이후 AMD는 2014년, 리사 수를 CEO로 공식 임명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회사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장난감이 아니라,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라는 기계를. 그녀는 낡은 회로를 교체하고, 부서 간 연결선을 다시 이어붙였다.
그때부터 AMD의 엔진은 다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IBM에서 배운 건 기술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 속도”**였다.
그 속도가 바로 AMD의 부활을 이끈 추진력이 되었다.

 

 


⚙️ ‘공장’이 아닌 ‘설계’로 돌아간 AMD

그녀는 생산시설에 돈을 쏟는 대신, 고성능 칩 설계에 집중했다.
“우리가 진짜 잘하는 건 무엇인가?”
그 질문이 AMD의 부활을 이끌었다.

 

그 결과물은 라이젠(Ryzen) CPU, 에픽(EPYC) 서버 칩, 그리고 최근의 MI300 AI GPU였다.
AMD는 인텔을 추월했고, 엔비디아의 독주에도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2025년 현재 AMD의 시가총액은 3,480억 달러—무려 100배 넘게 성장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떻게 한계를 넘을까’를 생각합니다.”

 

리사 수가 2014년 AMD의 CEO 자리에 올랐을 때, 회사는 이미 붕괴 직전의 엔진처럼 삐걱거리고 있었다.
전 세계 PC 시장은 정체됐고, 데이터센터 분야에서는 인텔이 9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AMD는 제품 라인업이 산만했고, 자체 팹(공장) 운영 부담으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때 엔비디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그래픽 사업도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리사 수는 CEO로 부임하자마자 회사의 구조를 해부하듯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결론은 명확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걸 하려다, 진짜 잘하던 일을 잃었다.”

 

그녀는 AMD의 본질을 ‘설계 회사(Design Company)’로 다시 규정했다.
즉, 제조나 유통, 마케팅보다는 **‘칩의 두뇌를 설계하는 기술력’**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결정은 당시 AMD에게 모험이자 도박이었다. 회사는 자체 반도체 생산 시설을 매각하고, TSMC 같은 외부 파운드리와 협력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제조를 포기한 반쪽짜리 반도체 회사”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하지만 리사 수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녀는 AMD가 더 이상 인텔과 같은 방식으로 싸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인텔의 그림자가 아니라, 다른 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AMD는 **‘고성능 컴퓨팅(High-Performance Computing)’**이라는 좁지만 깊은 길을 선택했다.

그녀는 엔지니어들에게 단 하나의 목표를 제시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칩을 만들자. 수익은 그다음이다.”

 

그 결과, 2017년 ‘라이젠(Ryzen)’ 프로세서가 출시되면서 AMD의 반격이 시작됐다. 새로운 아키텍처 ‘젠(Zen)’은 경쟁사 대비 전력 효율이 뛰어나고, 멀티코어 성능이 획기적이었다. 게임용 PC, 데이터센터, 슈퍼컴퓨터까지—모든 영역에서 AMD의 이름이 다시 언급되기 시작했다. 리사 수는 단기 실적보다 기술의 방향성을 중시했다.


그녀는 내부 회의에서 자주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단기 매출로 평가받지 않는다. 5년 후의 기술로 평가받는다.”

 

그 한마디는 AMD의 문화 자체를 바꿔놓았다. 개발자들은 성급한 제품 출시보다, 정확한 설계와 구조적 완성도를 추구하게 됐다.
결국 AMD는 2020년대에 들어 **데이터센터 CPU 점유율 40%**를 돌파하며, 한때 ‘인텔의 추격자’로 불리던 회사를 ‘진짜 경쟁자’로 바꿔놓았다. 리사 수의 리더십은 공장을 버리고 설계를 되찾은 용기였다.


그녀는 물리적인 생산라인을 잃는 대신, ‘집중’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얻었다. 그 선택이 AMD를 기술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았다.

 

 

 

 


🤝 피드백을 두려워하지 않는 리더

2024년 말, 테크 리서치 기관 ‘세미애널리시스’가 AMD의 AI칩을 혹평했다.
“하드웨어는 훌륭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엉망이다.”
보통 CEO라면 무시하거나, 홍보팀을 시켜 해명문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리사 수는 직접 전화를 걸었다.
무려 90분 동안, 그 비평가와 기술 세부 사항을 논의했다. 그녀는 문제를 인정했고, 개선 계획을 들었다.

다음 날 그녀는 X(구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피드백은 선물이다. 비판적일지라도.”

 

이 한 문장은 수천 명의 엔지니어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리더는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듣는 사람이라는 것을.

 

리사 수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한 장면이 있다. 2024년 겨울, 유명 반도체 리서치 기관인 **‘세미애널리시스(SemiAnalysis)’**가
AMD의 신형 AI칩 MI300 시리즈를 혹평하는 리포트를 냈다.

“하드웨어는 훌륭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엉망이다. ROCm은 버그 투성이이며, 대규모 AI 학습에 쓸 수 없다.”

 

이 보고서가 공개되자, 많은 기업 CEO들은 그냥 무시하거나 홍보팀을 통해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리사 수는 다르게 행동했다. 그녀는 보고서를 쓴 **딜런 파텔(Dylan Patel)**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무려 90분간 통화하며 기술적 세부사항을 하나하나 검토했다. 그녀는 “틀렸다”고 반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확한 지적입니다”**라며 문제를 인정했다. 그리고 엔지니어링 팀에게 해당 이슈를 우선순위로 올려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그녀는 통화 후,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짧은 글을 남겼다.

“피드백은 선물이다. 비판적이라도, 그것은 우리가 더 나아질 기회다.”

 

이 문장은 단 한 줄이었지만, AMD 내부의 문화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전까지 엔지니어들은 외부 비판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문제 제기는 공격이 아니라 개선의 시작”**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리사 수는 CEO가 된 후에도 기술 리뷰 회의에 직접 참석한다. 그녀는 회의 중 “왜?”라는 질문을 수십 번 던진다.

“왜 이 부분의 전력 효율이 낮을까?”
“이 버그는 어떻게 재현되나요?”
“이 결함을 고치려면 어떤 자원이 필요한가요?”

 

그녀는 문제를 비난하지 않고, **문제의 맥락(context)**을 찾는다. 이 방식은 단순한 기술 검토를 넘어, 조직 전체가 배우는 시간이 된다.

AMD의 한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리사와의 회의는 보고가 아니라 대화입니다. 그녀는 당신의 생각을 시험하고, 동시에 당신을 성장시킵니다.”

 

결국 리사 수가 만들어낸 건 두려움 없는 엔지니어 문화였다.
잘못을 숨기지 않고, 부족함을 인정하고, 피드백을 함께 나누는 조직. 그건 단지 제품 품질을 높이는 방법이 아니라, 회사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방식이었다. 리사 수에게 리더십은 권위가 아니라 학습의 촉진자 역할이었다.


그녀는 기술적인 완벽함보다, 끊임없이 배우는 조직의 속도를 더 중시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이렇게 부른다.

“CEO가 아니라, AMD의 최고 엔지니어.”

 

리사 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비판을 피하지 않았다. 그게 바로 AMD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진짜 이유였다.

 

 

 


⚡ 엔비디아와의 대결, 그리고 새로운 전선

2025년, 리사 수는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녀는 OpenAI와 6GW 규모의 GPU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엔비디아의 아성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이 딜은 단순한 판매 계약이 아니다.
OpenAI가 목표를 달성하면 AMD 지분 최대 10%를 인센티브로 받는 구조다.


리사 수는 “공급”이 아니라 “파트너십”으로 시장에 진입한 것이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10%를 준다니 놀랍다. 하지만 영리하긴 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리사 수는 이미 계산을 끝내고 있었다.


“단기 주식 가치보다 중요한 건, 장기 생태계입니다.”

 

2025년 초, 전 세계 반도체 업계는 또 한 번 놀랐다.
AMD의 리사 수가 오픈AI(OpenAI) 와 체결한 6GW 규모의 GPU 공급 계약— 이건 단순한 반도체 납품이 아니었다.
AI 인프라의 ‘심장’을 공급하는 새로운 전선(new front line) 의 개막이었다.

 

이 계약은 오픈AI가 AMD의 MI450 시리즈 GPU를 2026년 하반기부터 도입하는 내용으로, 거래 규모만 수십억 달러, 그리고 **성과 달성에 따라 AMD 지분 최대 10%**를 오픈AI가 보유하게 되는 조건이 포함됐다. 즉, 기술 + 자본 + 생태계를 하나로 묶은 ‘메가 딜(megadeal)’이었다.

 

이 계약의 배경에는 명확한 계산이 있었다. AI 반도체 시장의 75% 이상을 장악한 엔비디아(Nvidia) 는 자사 독점 소프트웨어 플랫폼 CUDA 를 기반으로 사실상 ‘AI 개발의 표준’을 장악하고 있었다. 반면 AMD는 ROCm 생태계를 아직 완벽히 정비하지 못한 상태였다.

리사 수는 이 격차를 제품 스펙이 아니라, 파트너십 구조로 메웠다.

“우리는 칩만 파는 게 아니라, 함께 성장할 생태계를 만든다.”

 

이 말은 단순한 마케팅 문구가 아니었다. AMD는 이번 딜을 통해 단순 공급업체가 아니라, 오픈AI의 전략적 동맹자(Strategic Partner) 로 자리매김했다. 오픈AI는 안정적인 칩 공급을 확보했고, AMD는 소프트웨어 피드백과 최적화 기회를 실시간으로 얻는 구조였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CN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0%의 지분을 준다니 놀랍군요. 하지만 영리하긴 합니다(Clever).”

 

그의 말 속에는 놀라움과 경계심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리사 수는 ‘하드웨어’의 싸움을 ‘전략 게임’으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AMD는 이제 더 이상 엔비디아의 후발주자가 아니다. “AI 인프라의 대체축(alternative axis)” 으로 자리 잡았다.


리사 수는 엔비디아가 쌓아올린 생태계의 성벽을 ‘협력’이라는 사다리로 넘으려 하고 있다.

그녀는 경쟁을 ‘전쟁’이 아니라, **‘진화의 무대’**로 본다.

“우리는 엔비디아를 이기려는 게 아닙니다. AI가 발전할 공간을 넓히려는 겁니다.”

 

AMD의 반격은 결국 기술력보다 관점의 차이에서 출발했다. 리사 수가 만들어낸 이 ‘새로운 전선’은 AI 시장의 독점 구조를 깨뜨리고,
업계 전반에 두 번째 선택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미 절반의 승리를 거둔 셈이었다.

 

 

 


🧩 리더십의 본질 – 겸손한 확신

리사 수의 리더십은 ‘조용한 자신감(Quiet Confidence)’으로 요약된다. 그녀는 언변이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기술과 사람을 동시에 이해하는 드문 CEO다. 회의에서는 엔지니어들과 직접 회로도를 보며 질문한다.


“왜 이 부분의 전력 효율이 떨어지죠?”
그녀가 ‘엔지니어의 엔지니어’라 불리는 이유다. 그녀의 첫 번째 인사 원칙은 단 하나다.

“당신이 맡은 일의 의미를 이해하라. 그래야 책임질 수 있다.”

 

리사 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그녀는 조용하다.
회의실에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하지만 단 한 번 발언하면, 공간의 온도가 바뀐다.

 

그녀의 리더십은 화려한 카리스마가 아니라, 겸손 속의 확신(Humble Confidence) 으로 움직인다.

리사 수는 스스로를 ‘엔지니어의 엔지니어(Engineer’s Engineer)’라고 부른다.


이는 단지 기술에 밝다는 뜻이 아니다. 엔지니어들이 믿을 수 있는 리더라는 의미다. 그녀는 모든 보고서를 숫자보다 ‘원리’로 읽고,
결정을 내릴 때는 항상 “왜(Why)”로 시작한다. AMD 내부에서 회의는 늘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 “이 설계가 이렇게 복잡해야 하는 이유는?”
  • “전력 효율을 2%라도 높일 방법은 없을까?”
  • “이 버그가 나타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그녀의 질문은 단순한 지시가 아니라, 사유를 요구하는 도전이다. 그래서 엔지니어들은 “리사와의 회의는 시험이자 배움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리더십은 단호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안에는 깊은 존중이 깔려 있다.
그녀는 회의 후 꼭 팀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오늘 당신이 한 일 중,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이 질문은 단순히 성과를 묻는 게 아니라, 일에 대한 ‘의미’를 되돌려주는 질문이다.
리사 수에게 리더십은 통제의 도구가 아니라, 의미의 순환이다. 그녀는 또한 실패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독특하다.
프로젝트가 연기되거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그녀는 화를 내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이 실패를 어떻게 기록할까?”
“다음 팀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 ‘기록의 문화’는 AMD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으로 바꿔놓았다. 그 결과 AMD는 도전적인 기술에도 과감히 투자할 수 있었고,
그러한 누적된 시도가 결국 라이젠과 MI300, 그리고 OpenAI 딜로 이어졌다.

 

리사 수는 MIT 시절부터 “완벽한 칩은 없지만, 더 나은 칩은 언제나 있다”고 말해왔다.
그녀에게 리더십이란 완벽함이 아니라, ‘조금 더 나아지려는 방향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짜 자신감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옵니다.”

 

겸손은 약함이 아니라, 배움의 문을 여는 힘이다. 그 힘이 있었기에, 리사 수는 무너진 회사를 다시 일으켰고,
수십 년간 ‘2등 브랜드’로 불리던 AMD를 AI 시대의 주역(Main Player) 으로 재정의할 수 있었다.

리사 수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그리고 항상 배우는 자세로 세상을 바꾼다.”

 

그녀는 스포트라이트보다 회의실의 화이트보드를 더 사랑하는 CEO, 성과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리더,
그리고 겸손 속에서 혁신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 리사 수가 남긴 메시지: ‘실행은 곧 신뢰다’

AMD의 부활은 한 번의 천재적 발상이나 행운이 아니었다.
그녀의 철저한 실행력, 기술에 대한 존중, 그리고 배움에 대한 겸손이 만든 결과였다.

 

AI 시대의 기업은 빠르게 변하지만, 리사 수는 속도를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정확한 방향꾸준한 진전을 선택한다.

그녀가 MIT를 떠나며 남긴 말은 지금도 회자된다.

“완벽한 칩은 없다. 다만 더 나은 칩을 만드는 사람은 있다.”

 

그 말처럼, 리사 수는 ‘완벽’ 대신 ‘개선’을 택했고, 그 개선의 반복이 AMD를 세기의 라이벌로 키워냈다.

 

리사 수(Lisa Su)는 화려한 말보다 결과로 신뢰를 쌓는 사람이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종종 “Execution is everything. (실행이 전부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히 성과주의적 구호가 아니다. 그녀가 지난 10년간 AMD를 부활시킨 핵심 원리였다.

 

2014년, AMD는 파산 직전이었다. 시가총액 30억 달러, 시장 점유율 한 자릿수, 인재 유출은 심각했다.
하지만 리사 수는 ‘비전’을 말하기 전에 ‘할 수 있는 일’부터 정리했다. 그녀는 엔지니어, 마케팅, 생산, 영업 모든 부서를 직접 만나 물었다.

“지금 당장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녀는 그 대답을 바탕으로 단기 실행 리스트(Execution List) 를 만들었다.
기술 로드맵을 단순화하고, 불필요한 제품 라인을 정리했다. 중요하지 않은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남은 팀의 모든 역량을 ‘Zen 아키텍처’ 개발에 집중시켰다. 그 결과, 2017년 라이젠(Ryzen) CPU가 세상에 나왔다.


이 제품은 단순한 기술적 성공을 넘어, 조직의 복귀 선언문이었다.
그녀는 AMD의 사무실 복도에 이렇게 적힌 문구를 걸었다.

“Don’t predict the future. Build it.”
(미래를 예측하지 말라. 만들어라.)

 

이 철학은 AMD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직원들은 이제 “아이디어보다 실행”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품 계획서에도 “When”이라는 항목이 “How”보다 중요하게 다뤄졌다. 리사 수는 한 번도 대중 앞에서 과장된 비전을 내세우지 않았다.
AI, 반도체, 클라우드—그녀의 인터뷰를 보면 항상 같은 문장이 반복된다.

“우리가 약속한 일을 해내는 게 가장 큰 혁신입니다.”

 

그녀가 만든 ‘실행 문화’(Execution Culture) 는 AMD 내부뿐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업계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기업들이 앞다퉈 “혁신”을 외칠 때, 리사 수는 “실행 가능한 혁신(Executable Innovation)”을 강조했다.


그녀에게 진정한 리더십은 비전을 말하는 것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 철학은 위기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2023년, AI 붐이 폭발하면서 엔비디아의 주가는 치솟고,
시장에서는 “AMD는 늦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리사 수는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도착했다. 아직 보여주지 않았을 뿐이다.”

 

그녀는 MI300 GPU 프로젝트를 앞당기고, OpenAI와의 협상을 직접 지휘했다. 결국 2025년, 6GW 규모의 공급 계약이 체결됐다.
그녀가 준비한 ‘실행’이 시장의 평가를 바꿔놓은 것이다. 리사 수의 경영 철학은 놀랍도록 단순하다.

  1. 약속한 일을 지키고,
  2. 문제를 숨기지 않고,
  3. 실패를 학습으로 전환한다.

그 단순함이 오히려 리더십의 일관성을 만들었다. AMD의 엔지니어들은 CEO가 변명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스스로도 변명하지 않는다. 그녀의 “실행”은 단순한 업무 지침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신뢰 구조였다.

리사 수는 이렇게 말한다.

“회사가 고객에게 신뢰받는 유일한 방법은, 내부에서 서로를 신뢰하는 것이다.”

 

결국 그녀가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신뢰는 약속이 아니라, 실행의 누적이다.”

AMD의 부활은 천재적 기술력의 결과가 아니라, 한 사람의 꾸준한 실행이 쌓인 시간의 증명이었다.


리사 수는 세상을 바꾼 엔지니어였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건 세상을 믿게 만든 리더였다.

그녀의 여정은 이렇게 요약된다.

“생각은 빠를 수 있지만, 신뢰는 느리게 쌓인다. 그리고 그 느림을 견디는 사람이 결국 미래를 만든다.”

 

 

 


💡 결론: 기술보다 사람을 믿는 엔지니어

리사 수는 세상을 바꾼 엔지니어이자, 조직을 다시 세운 리더다.
그녀는 기술의 중심에서 인간적인 리더십을 보여줬다. 겸손하지만 단호한 리더,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CEO,
그리고 실행으로 말하는 엔지니어—그게 바로 리사 수다. 오늘 AMD의 부활은 결국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세상을 이해하려는 한 소녀가, 이제 세상을 다시 설계하고 있다.”

 

리사 수의 경영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혁신은 말이 아니라, 실행으로 완성된다.”

그녀는 화려한 프레젠테이션보다 한 장의 설계도를 믿었다. 트렌드보다 데이터, 자본보다 신뢰, 속도보다 정확성을 우선했다.
그 결과, AMD는 무너진 회로를 다시 연결한 기업, 그리고 끊어진 신뢰를 다시 납땜한 조직이 되었다.

 

그녀는 늘 기술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
“내가 맡은 일의 의미를 이해하라. 그래야 책임질 수 있다.”
그녀의 말은 AMD 내부의 철학이자, 지금의 AI 산업이 잊지 말아야 할 윤리이기도 하다.

엔비디아와의 대결, 인텔과의 격차, 끊임없이 몰아치는 AI 경쟁 속에서도 리사 수가 지켜온 단 하나의 원칙은 ‘겸손한 확신(Humble Confidence)’이었다.

 

그녀는 “나는 항상 배우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그 신념은 수많은 실패를 견디게 한 힘, 그리고 수천 명의 엔지니어를 다시 일으킨 언어였다.

리사 수의 이야기는 단지 AMD의 부활기가 아니라, 실행이 곧 신뢰가 되고, 신뢰가 곧 혁신이 되는 과정의 기록이다.
그녀는 거대한 무대를 장악한 CEO가 아니라, 책상 위의 납땜 자국에서 시작해 세계를 바꾼 기술자였다.

이제 세계는 AI의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리사 수는 여전히 같은 문장을 반복한다.

“완벽한 칩은 없습니다. 다만, 오늘보다 나은 칩을 만드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그 말 속에는 단순한 기술 철학이 아니라, 인간이 성장하고, 조직이 진화하며, 세상이 한 단계씩 나아가는 과정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

결국 리사 수의 리더십이 가르쳐준 건 이 한 가지다.

“세상을 바꾸는 건 천재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실행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조용한 혁명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컴퓨터의 회로 안에서, 데이터센터의 불빛 속에서,
그리고 전 세계 엔지니어들의 마음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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