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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 생각, 에세이37

높은 자리에 선 사람도 같은 인간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이다.” 연세대학교 김학철 교수의 이 말은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우리는 자신이 충분히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믿는다. 여러 정보를 비교하고 논리적으로 결론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론을 먼저 내린 뒤, 그것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는 경우가 많다. 믿고 싶은 것을 먼저 믿는다. 선택하고 싶은 것을 먼저 선택한다. 그런 다음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 그 선택이 옳았다고 설명한다. 지식이 많을수록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가능성도 커진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의 판단을 더 정교하게 합리화할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높은 학력과 뛰어난 지성이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보장하지 않는 이유다. 사람들은 종종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어떻게 교.. 2026. 8. 9.
물과 싸우지 않는 법 “내 마음 좀 알아줘. 나도 좀 봐줘.” 젊은 시절에는 이 말을 마음속으로 자주 되뇌게 된다. 누구에게 직접 꺼내지는 못한다. 말하는 순간 초라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대신 더 열심히 일한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고 늦게까지 남는다. 힘든 내색을 삼키며 맡은 일을 끝낸다. 언젠가는 누군가 먼저 알아봐 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를 자세히 보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애쓰는지, 무엇을 포기했는지, 몇 번이나 좌절을 삼켰는지 알지 못한다. 가까운 사람조차 내가 견디는 무게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면 마음 한편에 서운함이 쌓인다. ‘나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까.’ 서운함은 곧 억울함이 된다. 나보다 덜 노력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먼저 인정받으면 마음은 더 흔.. 2026. 8. 9.
솔직함은 아래에서 시작되고, 포용력은 위에서 시작된다 회사에서 정직하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될 것 같지만, 조직 안에서 말은 언제나 관계와 직급, 평가와 이해관계 속에서 전달된다. 옳은 말을 했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문제를 지적했다가 협조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상급자의 의견에 반대했다가 조직의 질서를 모르는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침묵을 선택한다. 회의에서 이상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다. 계획에 허점이 보여도 일단 지시대로 따른다. 현장의 반응이 좋지 않아도 보고서에는 긍정적인 표현을 더한다. 고객이 실제로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알고 있어도, 이미 결정된 전략을 바꾸기 어렵다고 판단해 입을 다문다. 이러한 침묵은 개인에게는 안전한 선택이다. .. 2026. 8. 4.
성공은 박수의 방향을 잊지 않는 일이다 어제 KBS 한가위 특별방송 녹화 현장에 초대받아 세 시간 동안 공연을 관람했다.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이승철의 무대였다. 한 가수가 한 분야에서 40년을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뒤 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화려한 조명도, 웅장한 오케스트라도, 익숙한 명곡도 아니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관객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이던 그의 인사였다. 그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여러 차례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의례적인 인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랜 시간 자신을 지켜봐 준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해 감사를 전하는 모습이었다. 데뷔 40주년을 맞은 가수라면 이제는 관객의 박수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했고, 누구나 인정하는 실력과 명성을 갖고 있다... 2026. 8. 2.
질문에도 눈치가 필요하다 “세상에 바보 같은 질문은 없다.” 우리는 이 말을 자주 듣는다. 질문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격려이자,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에게 이보다 따뜻한 말도 드물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며 수많은 회의와 강연을 경험하다 보니, 이 문장을 그대로 믿기에는 조금 망설여진다. 바보 같은 질문은 정말 없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바보 같은 질문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질문 자체가 바보 같다기보다, 생각 없이 던지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질문은 배움의 출발이지만, 때로는 타인의 시간과 생각을 빼앗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질문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질문하느냐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 2026. 7. 24.
삶은 각자의 선택으로 완성된다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진로를 바꾸어야 할지, 지금의 일을 계속해야 할지,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야 할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할지 묻는다. 때로는 내가 살아온 과정 속에 특별한 비법이라도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떤 선택을 해야 후회하지 않는지, 어떻게 해야 실패를 피할 수 있는지, 인생의 정답을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나 역시 그 시절에는 답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이 보이지 않아 방황했고, 어느 길이 옳은지 몰라 오랫동안 망설였다. 충분히 고민했다고 생각한 결정이 잘못된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고, 별다른 확신 없이 내디딘 한 걸음이 뜻밖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거의 없었다. 다만.. 2026. 7. 12.
AI 의 그럴듯한 답, 그리고 무책임해지는 인간 AI를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멈칫하게 된다. 사소하고 별것 아닌 질문에도 AI는 거침없이 답을 쏟아낸다. 유창하고, 정돈되어 있으며, 그럴듯하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의문이 밀려온다. 이 답이 정말 맞는 걸까? 사실일까? 믿어도 되는 걸까? 처음에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AI가 틀린 정보를 마치 사실인 양 자신 있게 말한다는 것, 그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는 당연히 주의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다짐은 흐릿해졌다. 어느새 나는 AI의 답변을 크게 의심하지 않고, 거의 자동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의지하게 되는 이 역설이, 사실 AI보다 인간에 대한 더 솔직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이 만드는 세계, 알.. 2026. 4. 18.
알고리즘의 편안함과 생각의 책임 사이에서 우리는 이제 “TV를 보지 않는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내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지만, 이제는 각자의 화면 속으로 흩어진다. 특히 Steve Jobs가 강조했던 것처럼, 개인의 선택과 경험이 중요해진 시대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일방적인 미디어 소비를 원하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보고 싶어 한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유튜브다. TV는 오랫동안 ‘바보 상자’라는 별명을 안고 있었다.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매체라는 인식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콘텐츠를 틀어주고, 시청자는 그것을 따라가는 구조였다. 이 구조는 효율적이었지만, 동시에 사고를 제한하는 틀로도 작용했다. 그래서 어떤 부모들은 TV를 없애고 책을 들여놓는.. 2026. 4. 5.
Great Mind와 Small Mind 사이, 제국의 선택 세상에는 스스로를 확장하는 힘과 스스로를 수축시키는 힘이 공존한다. 확장은 나눔에서 시작되고, 수축은 집착에서 비롯된다. 이 단순한 원리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국가의 운명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최근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정치적 흐름을 바라보면, 이 두 힘의 충돌이 얼마나 선명하게 드러나는지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라는 인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다. 그는 스스로를 협상의 귀재라 말하며, 기존 질서를 부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마치 모든 것을 해체한 뒤 새롭게 재구성하겠다는 ‘Demolition man’의 모습이다. 그러나 문제는 파괴 이후의 질서에 대한 깊은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파괴는 쉽지만, 지속 가능한 질서를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역량을 요구한다. 그의 정치적 행보는 일관.. 2026.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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