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색의 계절이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나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옷을 갈아입는다. 버스를 타고 시민대학으로 향하는 길, 창밖에 펼쳐진 풍경은 매일 달라졌다. 어제는 푸른 잎이었는데, 오늘은 붉고 노랗게 물들어 있다. 가지 끝에는 햇살이 스치고, 바람 한 줄기에 잎사귀가 부드럽게 흩날린다. 같은 나무라도 빛깔이 다르고, 같은 거리라도 색의 깊이가 다르다. 그러나 이 모든 차이들이 모여 하나의 조화로운 풍경을 완성한다.
자연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언제나 변화하고, 끝없이 다채롭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이 유지되는 방식이다. 생명의 기원 이후, 진화의 모든 과정은 ‘다양성’이라는 이름의 실험이었다. 그러므로 가을의 풍경은 단순한 계절의 변주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본질이 다양함을 통해 완성된다는 자연의 선언이자, 삶의 원리를 닮은 교훈이다.
삶의 시기로 본다면, 가을은 아마도 장년 이후의 세대를 닮았을 것이다. 청춘의 푸르름을 지나온 사람들, 이제는 삶의 무게를 이해하고 내면의 색이 짙어진 사람들이다. 세월이 쌓이면서 조금은 여위었고, 가지 끝의 잎처럼 무엇인가를 내려놓을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대신 더 깊고 안정된 색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젊음이 속도의 미학이라면, 중년 이후의 삶은 균형과 깊이의 미학이다.
젊은 시절,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나 때는 말이야…”
그 말 속에는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가 섞여 있다. 누군가는 그 시절이 인생의 절정이었고, 지금은 그 빛이 바랜 듯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의 진정한 빛은 단 한 시점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빛은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지며, 더 멀리 퍼져나간다. 그 빛은 타인을 비추고, 또 나 자신을 위로한다. 그것이 원숙함이 주는 품격이다.
가을의 나무를 보라. 가지는 여위었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다. 오히려 그 속에는 강인함이 배어 있다. 비바람에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고, 겨울을 견딜 준비를 한다. 떨어지는 잎은 끝이 아니라 순환의 시작이다. 봄이 다시 올 것을 알기에, 자연은 담담히 자신을 비운다.
삶도 그러해야 한다. 지나간 시간에 집착하지 않고, 다가올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는 마음, 그것이 성숙의 시작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노(老) 교수는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오히려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젊은 시절에는 불안과 혼란, 경쟁과 증명이 전부였다면, 노년에는 관계의 온기와 존재의 평온함이 전부가 된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담담했다. 오히려 자신이 배운 지혜를 나누며, 인생의 완성을 보여주었다. 그의 삶은 늦가을의 햇살처럼 따뜻하고, 조용히 빛났다.
가을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여름의 성장을 지나, 이제는 수확과 결실의 계절이다. 무언가를 이루고, 또 비워내며,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잎이 떨어지는 것은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이 다음 계절을 위한 공간을 비워내는 과정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더 큰 성장을 위해 때로는 내려놓아야 한다.
나는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가로수마다 다른 색을 띠고, 서로 다른 리듬으로 흔들리지만, 그 모두가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을 만든다.
인생도 그러하다. 각자의 속도와 빛깔로 살아가지만, 결국 서로의 다름이 모여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든다.
가을은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조급해하지 말라.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흐른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서두르고, 앞서가려 애쓴다. 그러나 자연은 언제나 제 속도로 간다. 단풍은 때가 되어야 붉고, 잎은 바람이 불어야 떨어진다. 그 질서 속에는 조화가 있고, 그 조화 속에는 평온이 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계절을 인정할 때, 진정한 안식이 찾아온다.
가을의 본질은 ‘성장 이후의 평온’이다.
젊음이 ‘불완전한 가능성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완성된 다양성의 계절’이다. 그 다양성 속에서 삶은 깊어지고, 사람은 성숙한다.
언젠가 내 인생의 가을이 완연히 찾아왔을 때, 나는 초조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자연의 순리처럼, 내 삶의 색이 조금씩 바래가더라도, 그 속에 담긴 온기와 깊이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싶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간다.
나무가 잎을 떨구고, 겨울을 맞이하듯이, 나 또한 내 인생의 계절을 차분히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봄이 찾아오듯, 새로운 시작이 또 있을 것이다.
가을은 그렇게 말없이 가르친다.
“변화는 끝이 아니라 순환이다.”
그 한마디가, 내 마음에 오래 남는다.

'글쓰기: 책, 생각,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조언하지 않는다 (20) | 2025.11.09 |
|---|---|
| 🗑️ 나는 당신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14) | 2025.11.07 |
| 영포티, 젊음의 그림자와 성숙의 길목에서 (21) | 2025.11.06 |
| 글쓰기는 늘 어렵다. (19) | 2025.11.02 |
| “We’re All Alone” — 고독이 아닌, 둘만의 세계 (33) | 2025.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