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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 생각, 에세이

조언하지 않는다

by Heedong-Kim 2025. 11. 9.

 

스무 살이 넘은 어른에게 나는 더 이상 조언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게임이 있고, 자신만의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수를 두든,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건 그의 몫이다.

그 선택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을 감당하며 배우는 과정 속에 인생의 진짜 의미가 깃든다.

그런데 내가 뭐가 된다고 그 알량한 조언을 하겠는가.

 

예전엔 그랬다. 누군가의 선택이 너무 위험해 보이면 말려야 했다.

수년 전, 한 동료가 가진 전 재산을 바이오주식에 쏟아부었을 때도 그랬다.

나는 그에게 분산 투자와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시간이 흘러 원금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지금은 더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가 투자한 알트코인 역시 그 당시엔 나에겐 허황된 도박처럼 보였다.

실체도 불분명하고, 시장의 신뢰도 불안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코인은 되살아났고, 그는 다시 웃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아는 세상과 그가 사는 세상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의 ‘판단’은 타인의 ‘실패’가 아니라, 그만의 ‘경험’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생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공부하고, 고민하고, 이론을 쌓아도 결국엔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처럼, 삶은 결코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 속한다.

수많은 변수들이 교차하고, 어느 하나의 결정도 독립적이지 않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전략을 세워도 결국 한순간의 우연과 타이밍이 모든 걸 바꾼다.

그렇기에 인생은 ‘계산의 영역’이 아니라 ‘감각의 세계’에 더 가깝다.

 

나는 매일 아침 삼프로TV를 보며 주식시장의 흐름을 살핀다.

증권사들의 리포트를 읽고, 경제 강연을 들으며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 모든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내일의 등락은 알 수 없다.

숫자는 논리적이지만, 인간의 심리는 비논리적이다.

시장은 결국 인간의 감정이 만든 파도 위를 부유한다.

이성으로 계산한 공식이 감정의 물결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

나는 또다시 깨닫는다.

세상은 논리가 아니라, 확률 위에서 춤추고 있다는 사실을.

 

삶도 그렇다.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각자의 고유한 리듬과 패턴을 지닌다.

나에게는 끝없는 오르막처럼 느껴지던 시기가, 누군가에게는 성장의 평지일 수도 있다.

또 내가 너무 늦었다고 느끼는 시간도, 다른 이에게는 이제 막 시작인 순간일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른 게임판 위에서, 각자의 바둑을 두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그건 잘못된 수야”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내가 몇 년, 혹은 몇 십 년 먼저 살아봤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의 패를 더 잘 읽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건 오만일지도 모른다.

조언은 종종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간섭’이 되기도 한다.

좋은 의도였을지라도, 그 말이 누군가의 방향을 흐리게 만들 수도 있다.

인생은 결국 각자가 스스로 책임지는 바둑판이다.

누군가 대신 돌을 놓아줄 수 없고, 대신 패배를 감당해줄 수도 없다.

 

나는 이제 조언 대신 ‘침묵’을 택한다.

그 침묵 속에는 존중이 담겨 있다.

그 사람의 결정과 시행착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

그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지켜보는 신뢰가 담겨 있다.

그는 자신만의 길을 가는 중이고,

그 길의 모양과 속도를 내가 평가할 수는 없다.

 

살다 보면, 내 인생도 타인의 눈엔 이상하게 보일 때가 있다.

지나치게 안전해 보이기도, 때론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남이 보기엔 실패처럼 보인 선택도, 나에겐 꼭 필요한 ‘실패의 수업’이었다.

그리고 그 실패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조언은 결국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내가 너라면”으로 시작하는 말 속에는 이미 오만이 깃들어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과거도, 상처도, 욕망도, 두려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의 길을 대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제는, 굳이 말하지 않는다.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고, 부탁하지 않으면 개입하지 않는다.

대신 묵묵히 듣고, 이해하고, 그가 넘어지더라도 그 자리에 함께 있을 뿐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한 판의 바둑이다.

어떤 이는 초반에 대담한 수를 두고, 어떤 이는 조심스레 후반을 준비한다.

중간에 실수로 패를 내주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역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니라, ‘끝까지 두느냐’이다.

그는 그의 바둑을 두고, 나는 나의 바둑을 둔다.

그 두 바둑은 절대 같은 판 위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이제 나는 조언 대신 존중을, 충고 대신 기다림을 배웠다.

누군가의 인생에 말을 더하는 대신, 그 삶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 과정이 어설퍼도, 느려도, 때로는 낯설어도 괜찮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중얼거린다.

조언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만의 바둑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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