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는 이 말은 단순한 과장이나 열정의 미사여구가 아니다. 한 인간이 어떤 목표를 향해 기꺼이 자신을 던졌을 때 비로소 닿게 되는 지점, 그 깊은 몰입의 경지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이다.
어떤 일에 집중하고, 빠져들고, 결국 미쳐서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부터 세계는 달라 보인다. 똑같은 환경, 똑같은 사물, 똑같은 사람들인데도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모든 장면이 목표를 향한 길 위에 연결된다.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갈수록,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결들이 보이고, 이전에는 귀에 닿지 않던 소리가 들린다. 인간은 그렇게 몰입할 때 변화한다.
2000년대 초반, LG전자에 입사해 인화원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던 날이 있었다.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늘 그 자리에 있던 LG전자의 전광판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수백 번 지나쳤던 간판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신입사원이 된 나의 시선이 달라지자 간판도 전혀 다른 의미를 띠었다. 사회 초년생의 불안과 설렘, 책임감과 기대가 간판에 그대로 비치고 있었다. 시선이 달라지니 세상이 달라졌다.
이런 변화는 누구나 경험한다.
군 제대 후에는 거리의 군인들만 눈에 띄고, 대화는 온통 군대 이야기뿐이다.
육아로 지치던 시기에는 우울과 고단함을 토로하는 모든 이야기가 곧 내 이야기가 된다.
오랜 연인과 헤어졌을 때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조차 오로지 실연의 슬픔만 말하는 듯하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이 한 방향으로 가닿으면, 세계는 그 마음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집중한다는 것은 단순한 관심의 이동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구조 자체가 변하는 일이다. 그래서 ‘미친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한 목표를 향해 모든 감각이 선명해지고, 모든 에너지가 정렬되는 건강한 집중의 순간이다.
전 구글 코리아 상무였던 조용민 씨의 일화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소개팅으로 만난 그녀와 영화를 보기 위해 앞자리, 옆자리, 뒷자리를 모두 예매했다. 과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의 관심과 열정이 어디에 향하고 있었는지 단번에 드러나는 장면이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집중하고자 했기에 가능한 준비였다. 이렇게 ‘미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섬세함이다.
인생에서 진정한 성취는 우연이 아니다.
몰입은 의식적으로 만들 수 있다.
환경을 조성하고, 자기 자신을 그 안에 밀어 넣고, 목표를 향한 시선을 선명하게 유지하면 누구나 어떤 일에든 ‘미칠 수’ 있다.
그리고 그 ‘미침’은 단순한 감정적 열광이 아니라, 삶을 이끄는 구조적 전환이다.
미칠 수 있다면(Crazy), 미칠 수 있다(Gain).
몰입의 깊이는 성취의 깊이를 결정한다.
결국 불광불급은 운명처럼 정해진 재능을 말하는 문장이 아니다.
스스로의 방향을 선택하고, 그 길에 자신을 기꺼이 내던질 수 있는 용기와 태도를 말한다.
누구나 미칠 수 있고, 그래서 누구나 도달할 수 있다.
삶은 그 ‘미침’의 정도에 따라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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