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늘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직선 그래프처럼 꾸준히 올라가는 길을 상상하지만, 현실의 성장은 그와 거리가 멀다. 수영을 하며 깨달아 온 과정이 그 대표적인 예다. 10년째 아침마다 물속을 가르며 헤엄치지만, 초창기에는 자유형의 호흡 하나조차 버거웠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몸은 물에 가라앉고, 마음은 매번 포기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어느 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왔다. 호흡이 자연스러워지고, 물살 위로 몸이 가볍게 떠올랐다. 팔과 다리는 힘이 아닌 리듬으로 움직였고, 나는 그제야 ‘수영이 되는 순간’을 만났다.
이 변화가 선형적이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오늘 조금 나아졌으니 내일도 조금 더 나아지고, 다음 주에는 더 잘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면 좌절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변화는 계단처럼 온다. 낮은 계단 앞에서 우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제자리걸음을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가 없는 듯 보이고, 헛수고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 시기는 단지 ‘다음 계단으로 오르기 위한 힘을 모으는 시간’일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치 전원이 켜지듯 0에서 1로 도약한다.

이런 비선형적 변화는 자연에서도 동일하다. 환하게 빛나는 가을 하늘이 하루아침에 눈발을 흩뿌리고, 검은 머릿결이 어느 날 거울 앞에서 하얀빛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달리기를 하다 어느 날 갑자기 호흡이 편안해지고, 수영에서 어느 날 물 위를 미끄러지듯 가볍게 나아가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도 같다. 긴 정체 구간 뒤에 도약이 찾아오는 방식은, 성장의 본질이 비선형에 가깝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우리가 흔히 느끼는 답답함과 무기력도 사실은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지금은 멈춘 것처럼 보여도, 보이지 않는 힘이 축적되고 있다. 계단의 첫 칸에서 막다른 길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다음 칸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이 천천히 쌓이고 있다. 그러니 자신을 실패자로 여길 필요도, 조급해할 이유도 없다. 성장은 느리게 보이지만, 그 힘은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인생의 그래프는 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에 가깝다. 제자리처럼 보이지만 한 바퀴, 또 한 바퀴 돌면서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그 작은 축적이 결국 더 높은 단계의 성숙으로 이어진다. 수영에서 얻은 배움처럼, 어떤 분야에서든 버티고 쌓아가는 힘은 반드시 계단의 다음 높이로 우리를 이끈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고, 꾸준함이 만들어내는 비약의 순간이다.
성장은 보이지 않는 시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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