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오랫동안 재산을 숫자로 배워왔다.
얼마를 버는지,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집은 어디에 있는지, 통장에는 얼마가 있는지, 직함은 무엇인지. 사람을 설명할 때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것들을 먼저 꺼낸다.
“그 사람은 어느 회사에 다녀.” “연봉이 꽤 높대.” “집을 샀대.” “임원이 됐대.”
마치 그것들이 그 사람의 가치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돈은 중요하다. 안정적인 직업도 중요하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산을 마련하는 일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정말 마지막까지 내 것일까. 회사는 내가 아니다. 직함도 내가 아니다. 월급 역시 내가 아니다.
회사를 떠나는 순간 명함은 효력을 잃는다. 직책은 다음 사람에게 넘어간다. 월급은 일을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자산 역시 상황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내 안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결국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에서 말하는 재능은 특별한 천재성만을 뜻하지 않는다.
노래를 잘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능력만이 재능은 아니다. 복잡한 것을 쉽게 설명하는 능력도 재능이다. 사람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는 능력도 재능이다. 흩어진 정보를 연결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도 재능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힘, 누군가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는 눈,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하나의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능력도 모두 재능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재능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어.”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정말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너무 자연스럽게 해내는 일이어서 그것을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나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무척 어려울 수 있다.
나는 쉽게 정리할 수 있는데 누군가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누군가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어렵다. 나는 복잡한 문제를 구조화하는 것이 재미있는데 누군가는 그것만으로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재능은 종종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재능을 찾으려면 “내가 무엇을 잘하는가”라는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조금 다른 질문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부탁하는 일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보다 비교적 쉽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시간이 지나도 계속 관심이 가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할 때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드는가?”
이 질문들을 오래 들여다보면 어렴풋이 하나의 방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재능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교차점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거기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가.’
재능은 혼자 가지고 있을 때보다 누군가에게 건네질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 능력을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데만 사용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술에 머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 복잡한 내용을 쉽게 설명해 누군가의 이해를 돕는다면 그 능력은 재능이 된다.
사람을 잘 관찰하는 능력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단점을 찾아내는 데 사용한다면 비판에 머물 수 있지만, 그 사람 안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하도록 돕는 데 사용한다면 훨씬 큰 가치가 된다.
그래서 재능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이런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다.
‘내가 가진 것을 누구에게 어떻게 나누어 줄 것인가.’
재능은 소유물이 아니라 통로인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과 능력이 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직업에 대한 시선도 조금 달라진다.
우리는 종종 직업을 인생의 목적처럼 생각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승진하고, 더 높은 연봉을 받고, 더 좋은 직책을 얻는 것을 인생의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직업은 목적이라기보다 자신의 재능을 세상과 연결하는 하나의 수단에 더 가깝다.
직업은 바뀔 수 있다.
한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옮길 수도 있고, 직무가 달라질 수도 있다.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깊은 재능은 형태를 바꾸면서 계속 따라간다.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엔지니어가 되어 제품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영업을 하며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마케팅을 하며 시장과 고객을 연결할 수도 있고, 관리자가 되어 사람과 조직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직업은 달라져도 그 사람이 세상에 기여하는 방식에는 어떤 일관된 흐름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커리어를 돌아볼 때도 직함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 왔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 속에 자신의 재능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 중요한 질문이 있다.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드는가. 우리는 이것을 너무 쉽게 취미나 열정의 문제로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던 순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꾸 더 알고 싶었던 일.
힘들기는 하지만 이상하게 다시 하고 싶었던 경험.
그것이 반드시 즐겁기만 한 일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진짜 열정은 때때로 힘들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한 문장을 고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고민한다. 연구자는 실패한 실험을 다시 시작한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은 같은 설명을 여러 번 반복한다.
힘들지만 그 안에 이상한 에너지가 있다.
‘이 일은 계속하고 싶다.’
그 마음이 있다면 그곳에 자신의 중요한 무언가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열정 역시 혼자 간직할 때보다 누군가와 나눌 때 더 오래 간다.
좋은 지식을 알게 되었을 때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싶어진다면, 좋은 책을 읽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어진다면,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이미 재능이 밖으로 향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혼자서 자신의 방향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멘토가 필요하다. 멘토는 반드시 유명한 사람일 필요가 없다.
나보다 조금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일 수도 있고, 내가 흔들릴 때 한마디를 건네는 동료일 수도 있다. 한 권의 책을 쓴 저자가 멘토가 되기도 하고, 오래전에 만난 선생님의 한마디가 수십 년 동안 마음속에 남아 방향을 알려주기도 한다.
좋은 멘토의 역할은 우리의 인생을 대신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질문을 던져 주는 사람에 가깝다.
“정말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니?”
“그 일을 왜 하고 싶은 거니?”
“너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좋은 질문 하나는 때때로 좋은 조언 열 개보다 오래 남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우리 역시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야 한다.
사실 재능을 발견하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의 재능을 발견해 보는 것이다.
사람을 자세히 보면 누구에게나 빛나는 부분이 있다. 말은 많지 않지만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있다. 아이디어는 많지 않지만 실행력이 놀라운 사람이 있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팀 전체를 세심하게 챙기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어려운 순간에도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런 재능을 발견했을 때 말해 주는 것이다.
“당신은 이걸 참 잘하는 것 같아요.”
짧은 한마디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인생에서 예상보다 오래 남을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정확히 보기 어렵다.
그래서 누군가가 발견해 준 가능성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는 것에서 다른 사람의 재능을 발견하는 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가진 것으로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다.
성공의 질문도 달라진다.
얼마를 벌었는가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로.
얼마나 높은 곳에 올라갔는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함께 올라오게 했는가로.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에서
얼마나 좋은 것을 나누었는가로.
이렇게 생각하면 인생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직장을 떠난다.
언젠가는 명함도 필요 없어지고, 직함으로 자신을 설명할 필요도 없어지는 시간이 온다.
그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작은 도움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설명해 주었던 한마디.
힘들 때 건넸던 격려.
함께 고민해 주었던 시간.
알고 있던 것을 나누었던 순간.
누군가의 가능성을 믿어 주었던 기억.
그런 것들이야말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자산인지 모른다. 그래서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무엇을 할 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드는가.
누가 나의 길을 밝혀 주었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 누구의 가능성을 밝혀 주고 있는가.
마지막 질문은 조금 더 중요하다.
‘내가 가진 재능으로 세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거창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너무 거대해서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한 사람을 도울 수는 있다. 한 사람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한 사람에게 알려줄 수 있다. 한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해 줄 수 있다.
그 한 사람이 다시 누군가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기 시작한다면 변화는 생각보다 멀리 퍼져 나갈지도 모른다.
결국 재능은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을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 우리는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나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그 질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조금 더 오래 살아갈수록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나의 경험을.
나의 지식을.
나의 시간과 관심을.
그리고 내가 오랜 시간 살아오며 발견한 나만의 재능을.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평생 모아야 할 가장 중요한 재산일지도 모른다.
통장의 숫자는 언젠가 변한다. 직함은 언젠가 사라진다. 회사도 언젠가는 떠난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건넨 도움과 내가 세상에 남긴 좋은 영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오늘 다시 한번 묻는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누구에게 건넬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어쩌면 우리가 평생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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