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기: 책, 생각, 에세이

좋은 아이디어보다 먼저 필요한 것

by Heedong-Kim 2026. 10. 5.

우리는 아이디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한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새로운 문제를 만날 때마다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사업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않을 때도 그렇고, 새로운 고객을 찾아야 할 때도 그렇다. 행사 참석률이 떨어지거나 경쟁사가 새로운 제품을 내놓았을 때도 우리는 아이디어를 찾는다.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다른 회사의 사례를 조사하고, 외부 전문가를 초청한다. 때로는 구성원들에게 좀 더 창의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주문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그런데 『Beyond Entrepreneurship 2.0』에서 한 문장을 만났다.

 

“There is no shortage of good ideas; there is only a lack of receptivity to ideas.”

 

좋은 아이디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짧은 문장이지만 오래 남았다.

 

연구개발 엔지니어로 회사 생활을 시작해 영업을 거쳐 지금은 마케팅 일을 하고 있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이 말이 단순히 혁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일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고,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이며,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는 사람에게 더욱 필요한 태도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가능한가’를 물었다

연구개발 엔지니어로 일할 때 나에게 좋은 아이디어란 무엇보다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였다.

회로를 설계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상상만으로는 아무것도 완성되지 않는다. 실제로 동작해야 하고, 목표 성능을 만족해야 하며, 정해진 일정과 비용 안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제안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질문했다.

 

“정말 구현할 수 있을까?”

“성능이 나올까?”

“기존 방법보다 나은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무엇인가?”

 

모두 필요한 질문이다. 엔지니어에게 검증하지 않는 낙관주의는 위험하다. 그런데 경험이 쌓일수록 한 가지 함정도 생긴다.

무엇이 어려운지 너무 빨리 알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것을 해본 경험이 있고, 무엇이 실패하는지도 알고 있으며, 기술적 한계가 어디인지도 보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가능성을 검증하기도 전에 결론을 내려버린다.

 

“그건 안 될 겁니다.”

 

경험은 실수를 줄여주는 강력한 자산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가장 빠르게 차단하는 장벽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기술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일수록 새로운 생각에 더 개방적일 것 같지만, 때로는 정반대다.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빨리 거절한다.


영업을 하며 ‘가치’의 주인이 바뀌었다

영업 업무를 경험하면서 아이디어를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졌다.

연구개발에서는 내가 좋은 기술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영업에서는 고객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훨씬 중요했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기능이라고 생각해도 고객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큰 의미가 없었다.

반대로 제품을 만든 사람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기능 하나가 고객에게는 구매를 결정하는 핵심 이유가 되기도 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을 배웠다.

가치를 결정하는 사람은 아이디어를 만든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영업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면서 또 하나를 배웠다. 고객은 항상 완성된 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고객은 “이 기능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불편함을 이야기한다.

 

“이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측정 결과를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장에서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처음에는 고객의 요구사항을 듣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말의 뒤를 보게 된다.

왜 저런 요구를 하는 것일까. 무엇이 정말 불편한 것일까. 그 불편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까.

 

이런 질문을 시작하면 영업 현장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장소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장소가 된다.

 

좋은 아이디어는 회의실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고객과 나누는 짧은 대화 속에도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진지하게 듣느냐였다.


마케팅을 하면서 ‘밖에서 오는 아이디어’를 보게 되었다

마케팅으로 업무가 바뀌면서 시야는 더 넓어졌다.

고객뿐 아니라 영업, 엔지니어, 제품팀, 본사 조직, 다른 나라의 마케터, 파트너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특히 여러 국가의 시장을 경험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많이 보았다. 한국에서 잘되는 방식이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일본이나 싱가포르, 미국이나 유럽에서 작게 시작한 아이디어가 한국 시장에서는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어느 나라의 작은 행사가 다른 지역에서 발전해 훨씬 큰 프로그램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 더욱 분명하게 깨달았다.

 

좋은 아이디어는 반드시 조직 안에서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

 

책에서도 Macintosh의 중요한 아이디어가 애플 내부에서 처음부터 모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이야기한다. 이미 다른 연구기관과 Xerox 같은 곳에서 발전해 온 아이디어가 있었고, 중요한 것은 그것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가져오는 능력이었다.

 

맥도날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레이 크록이 햄버거 가게라는 개념을 처음 발명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존재하던 시스템에서 확장 가능성을 발견했다.

 

혁신은 언제나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발명은 아니다. 때로는 다른 산업의 방식을 우리 산업에 가져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효과를 본 방법을 우리 시장에 맞게 바꾸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 두 개를 새롭게 연결하는 것이다.

고객이 계속 말해왔지만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혁신의 또 다른 이름은 어쩌면 연결과 발견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좋은 아이디어를 알아보는 데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역사를 보면 이것은 더욱 명확해진다.

전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이 중요한 통신수단이 되기 어렵다고 평가한 사람들이 있었다.

 

프레드 스미스가 익일 배송이라는 개념을 제안했을 때도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훗날 FedEx를 만들었다.

빌 바우어먼이 새로운 운동화 아이디어를 들고 기존 신발업체를 찾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나이키의 공동 창업자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의 개인용 컴퓨터도 기존 기업들의 관심을 얻지 못했다. 비틀스조차 음반사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적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보며 쉽게 말한다.

“어떻게 저걸 몰라봤을까?”

 

하지만 미래를 모르는 그 당시로 돌아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개인용 컴퓨터는 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익일 배송은 지나치게 비싸고 비효율적인 서비스로 보였을 것이다. 새로운 운동화는 기존 방식과 다른 낯선 실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혁신에는 중요한 특성이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혁신은 성공한 뒤에는 당연해 보이지만, 시작할 때는 대체로 이상해 보인다.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대단한 아이디어”라고 말한다면 어쩌면 이미 충분히 익숙한 생각일 가능성이 크다.


조직에는 아이디어보다 ‘Wet Blanket’이 더 많다

책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을 ‘Wet Blanket’이라는 표현으로 소개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회의에서도 비슷한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예산이 없습니다.”

“전에 해봤는데 안 됐습니다.”

“고객이 관심 없어 할 겁니다.”

“우리 업계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실행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 역시 이런 말을 수없이 해왔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모든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도 없고, 실행해서도 안 된다. 조직에는 자원과 시간이 제한되어 있고, 무모한 시도는 비용을 발생시킨다.

 

그래서 ‘수용성’은 모든 아이디어에 동의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받아들이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다르다.

 

좋은 조직은 모든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조직이 아니다.

좋은 조직은 아이디어를 실행할지 판단하기 전에 충분히 이해해 보는 조직이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상당히 크다.

“그건 안 됩니다.”

라고 말하기 전에,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가능할까요?”

라고 물어볼 수 있다.

“고객이 원하지 않을 겁니다.”

 

대신,

“작은 고객 그룹에게 먼저 확인해 보면 어떨까요?”

라고 말할 수 있다.

“전에 실패했습니다.”

라는 말 대신,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라고 물을 수도 있다.

 

아이디어를 바꾸는 것은 때로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질문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경험일 수도 있다

요즘 나는 경험이 쌓일수록 의도적으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확신이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일하면 패턴이 보인다. 어떤 고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어떤 프로젝트가 실패할지도 대략 예상된다. 누구와 일하면 일이 빨리 진행되는지도 알고, 어떤 방법이 효율적인지도 안다.

 

이것은 경험이 주는 큰 힘이다.

하지만 그 힘이 지나치면 이렇게 변한다.

 

“고객은 원래 그래.”

“그 시장에서는 안 돼.”

“우리 회사에서는 불가능해.”

“나는 이미 해봤어.”

 

세상은 계속 변하는데 우리의 경험은 대부분 과거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10년 전에 실패했던 아이디어가 지금은 성공할 수도 있다.

당시에는 없던 기술이 생겼고, 고객이 달라졌으며, 비용 구조가 변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AI와 소프트웨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는 과거의 ‘불가능’이 몇 년 만에 ‘당연한 것’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경험이 많아질수록 필요한 능력은 더 강한 확신이 아니라,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작은 여백을 남겨두는 능력인지 모른다.

나는 그것을 수용성이라고 생각한다.


리더가 아이디어를 죽이는 데는 몇 초면 충분하다

직급이 올라가고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자리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판단하는 자리에 더 자주 서게 된다.

이때 한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리더가 새로운 제안을 듣고 몇 초 만에 말한다.

“그건 안 될 것 같은데.”

리더에게는 단순한 의견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구성원에게는 다른 메시지로 전달될 수 있다.

“다음에는 굳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말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반복되면 조직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학습한다.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어떤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한지 파악한다.

회의는 조용해진다.

갈등도 줄어든다.

결정은 빨라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새로운 아이디어도 사라진다.

그때 리더는 말할 수 있다.

“우리 조직은 왜 이렇게 창의성이 없지?”

 

그러나 실제로는 아이디어가 없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아이디어를 말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 것일 수 있다.

조직의 창의성은 구성원의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의 숫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아이디어를 꺼내놓을 수 있는 심리적 공간과,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답하는 사람’보다 ‘묻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연구개발을 할 때는 정답을 찾는 능력이 중요했다.

영업에서는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했다.

마케팅을 하면서는 서로 다른 사람과 시장과 기술을 연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은 한 가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질문을 하는 능력이다.

 

누군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때 나는 가능하면 조금 더 듣고 싶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무엇을 보고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인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래서 요즘 내가 좋아하는 문장은 이것이다.

“조금 더 이야기해 봅시다.”

 

아주 단순한 말이지만, 혁신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장일 수 있다. 동의한다는 뜻도 아니고, 실행하겠다는 약속도 아니다.

다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이디어에게 조금 더 살아 있을 시간을 주는 것이다.


혁신의 시작은 창의성이 아니라 수용성이다

우리는 흔히 혁신적인 조직을 아이디어가 많은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혁신적인 조직은 아이디어가 이동할 수 있는 조직이다.

 

고객에게서 영업으로,

영업에서 연구개발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아시아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외부의 기술이 회사 안으로,

신입사원의 질문이 리더의 책상까지.

 

좋은 아이디어가 직급과 조직과 국가의 경계를 넘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조직의 사람들에게 세 가지 여백이 필요하다.

판단을 늦출 여백,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여백, 다른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여백.

 

아이디어를 만드는 능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알아보는 능력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실험할 수 있게 작은 공간을 만들어주는 능력은 더욱 중요하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할수록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만들어내는 하나의 아이디어보다, 고객이 던진 작은 불편을 놓치지 않는 것,

젊은 동료의 엉뚱한 질문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것, 다른 나라의 성공 사례를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

전혀 다른 산업에서 나온 방법을 우리 일과 연결해 보는 것이 더 큰 혁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세상은 이미 충분히 많은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다.

문제는 그것을 발견할 눈과 받아들일 마음이다.

그래서 앞으로 누군가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을 때 곧바로 “안 된다”고 말하기보다 한 번쯤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은 여기에서 어떤 가능성을 본 것인가요?”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나는 지금 이 아이디어를 평가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경험을 지키고 있는가?”

 

좋은 아이디어는 부족하지 않다 어쩌면 좋은 아이디어는 지금도 우리 주변을 수없이 지나가고 있다.

회의 중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던진 한마디로,

고객의 불평으로,

젊은 직원의 순진한 질문으로,

다른 나라에서 시도된 작은 실험으로,

우리가 한 번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외부의 기술로.

 

결국 혁신의 출발점은 더 많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는 아이디어를 알아볼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이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태도이며, 좋은 리더와 좋은 조직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아닐까.

 

세상을 바꾸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받아들일 열린 사람이 필요하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