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늘 어렵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고통스럽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흘러가는데, 막상 글로 옮기려 하면 그 생각들은 사라지고 만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적을 때마다 내 속의 무언가가 드러난다. 그래서 글쓰기는 단순히 표현의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것이 에세이든 소설이든, 글 속에는 언제나 ‘나’의 흔적이 남는다. 부정하려 해도 피할 수 없다. 문체와 어투, 말의 온도 속에는 내가 살아온 시간과 마음의 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버스 안에서 스치는 사람들의 짧은 대화 속에서도 그 사람의 여정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듯이, 글에는 언제나 그 사람의 진심이 반영된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의 민낯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래서 힘들다.
특히 우리 세대, 이른바 X세대에게는 더욱 낯선 일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 위를 걸어왔다. 부모가 말한 ‘안정적인 삶’, 사회가 요구한 ‘성공의 기준’ 속에서 살아왔다. 대학 입시, 취업, 결혼, 자녀 양육까지 — 그 모든 과정이 마치 정해진 각본처럼 이어졌다. 그래서 스스로를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온 세월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점점 희미해졌다.
그러나 이제, 오십을 넘어서는 시점에서야 비로소 생각한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살 필요는 없다고. 남이 정한 잣대에 나를 끼워 맞추는 일은 이제 그만두자고.
30대 초반, 디지털카메라가 막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유년 시절엔 가난해서 사진 한 장 남기기 어려웠다. 그래서 첫 월급을 털어 카메라를 샀다. 그건 내게 큰 결심이자 약간의 사치였다. ‘이제 내 시간을 기록할 수 있겠다.’ 그렇게 시작된 취미는 곧 일상의 관찰이 되었다.
서울로 상경한 첫해, 영등포 어느 언덕길에서 찍은 사진이 아직도 기억난다. 찌그러진 맥주캔 하나가 오르막길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풍경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사진은 삐딱하게 기울어 있었고 색감도 어딘가 불안정했다. 그런데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내 모습 같았다. 그때 나는 막막했고, 설레었고, 조금은 외로웠다. 사진 속 맥주캔처럼.
시간이 흘러, 10년 전 나는 수영을 시작했다.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물이 두려웠다. 몸이 가라앉을까 봐, 숨이 막힐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물은 나를 감싸 안았다.
수영장에서는 오직 나만 있다. 내 호흡 소리만 들린다. 물속에서 세상의 소음은 사라지고, 오로지 내 몸과 내 마음만이 존재한다. 떠오르고, 가라앉고, 다시 떠오르는 그 단순한 움직임 속에서 나는 ‘균형’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삶도 다르지 않았다. 너무 급하게 헤엄치면 숨이 차오르고, 너무 느슨하면 가라앉는다. 결국 중요한 건 리듬이었다. 물속에서 찾은 리듬이 내 삶의 균형을 잡아주기 시작했다.
이제 글쓰기도 그와 같다.
글을 쓸 때면 내 안의 공기와 감정이 교차한다. 잘 써야 한다는 압박보다, 솔직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 크다. 문장을 다듬을수록 나 자신이 드러난다. 그래서 부끄럽다. 때로는 한 문장을 쓰고도 숨을 고르게 된다. 글이란 결국 내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진을 보면 작가의 감정이 느껴지고, 어떤 그림을 보면 그 순간의 숨결이 전해진다. 어떤 노래는 눈앞에 풍경을 그려주고, 어떤 글은 한 편의 노래처럼 마음에 남는다. 표현의 도구가 다를 뿐, 그 근원은 같다 — 모두 ‘진심’을 담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감동하고, 그들의 생각을 배우며 공감했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누군가에게 이해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일이다.
물론, 두렵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할까 봐 겁이 난다. 그러나 이내 깨닫는다. 그 두려움조차 글의 일부라는 것을.
잘 쓰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진심이다. 글을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 그 자체가 이미 의미 있는 치유다.
우리는 하루 종일 자극 속에서 산다. 스마트폰 알림, 뉴스, 영상, 광고, 소셜미디어까지. 쉼 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자극 속에서 우리 뇌는 끊임없이 도파민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런 자극은 결코 우리를 채워주지 못한다. 오히려 공허하게 만든다.
글쓰기는 그 공허함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잠시 세상과 거리를 두고,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문장을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정돈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글쓰기는 그렇게 나를 회복시킨다.
거창한 철학이나 심오한 통찰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하루 동안 느낀 것, 생각한 것을 조용히 적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 일기처럼, 편지처럼, 나에게 보내는 글이면 된다.
글을 쓰다 보면 잊고 있던 감정이 떠오르고, 지나간 시간들이 하나씩 제 자리를 찾는다. 그것이 바로 글의 힘이다.
이제 나는 글을 통해 나를 찾아가고 있다.
사진 속에서 보았던 찌그러진 맥주캔처럼, 물속에서 균형을 배웠던 순간처럼, 글쓰기를 통해 나는 내 안의 불안과 두려움을 마주한다.
그리고 서서히 깨닫는다. 글쓰기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나 자신을 다시 세우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글쓰기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 안에는 내가 숨기고 싶었던 얼굴도, 잊고 있었던 진심도 모두 담겨 있다.
때로는 그 모습이 낯설고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성장의 씨앗이 자란다.
오늘도 나는 펜을 든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리고 그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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