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기: 책, 생각, 에세이

물과 싸우지 않는 법

by Heedong-Kim 2026. 8. 9.

“내 마음 좀 알아줘. 나도 좀 봐줘.”

 

젊은 시절에는 이 말을 마음속으로 자주 되뇌게 된다. 누구에게 직접 꺼내지는 못한다. 말하는 순간 초라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대신 더 열심히 일한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고 늦게까지 남는다. 힘든 내색을 삼키며 맡은 일을 끝낸다. 언젠가는 누군가 먼저 알아봐 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를 자세히 보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애쓰는지, 무엇을 포기했는지, 몇 번이나 좌절을 삼켰는지 알지 못한다. 가까운 사람조차 내가 견디는 무게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면 마음 한편에 서운함이 쌓인다.

 

‘나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까.’

 

서운함은 곧 억울함이 된다. 나보다 덜 노력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먼저 인정받으면 마음은 더 흔들린다. 나의 성실함은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고, 작은 실수는 유난히 크게 보이는 것만 같다.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노력하면 인정받을 것이라는 믿음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노력하는 순간과 인정받는 순간 사이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장거리 마라톤에서 첫 10킬로미터를 빠르게 달렸다고 해서 완주자로 인정받지는 않는다. 초반에는 누구나 힘이 있다. 의욕도 넘친다. 주변 사람들의 응원도 들린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풍경이 단조로워지고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앞서가던 사람은 멀어지고 뒤에서 달려오는 사람의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결승선은 보이지 않는다.

 

이때 필요한 것은 순간적인 열정이 아니다. 지루함을 견디는 힘이다. 오늘도 같은 발을 앞으로 내딛는 꾸준함이다. 누구도 지켜보지 않는 구간에서 자신의 호흡과 속도를 지키는 태도다.

 

삶도 이와 비슷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은 충분히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긴 경기에서 보면 아직 초반 10킬로미터를 달리는 중일 수 있다. 지금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 노력의 가치가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노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숙련은 드러난다.

 

처음에는 한 가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온 힘을 써야 한다. 작은 문제에도 긴장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 앞에서 쉽게 당황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느라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러나 같은 일을 반복하면 조금씩 달라진다. 복잡한 상황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보이기 시작한다. 실수가 생겨도 해결하는 순서를 알게 된다. 사람들은 그제야 그를 믿기 시작한다.

 

인정은 노력의 양만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오랜 노력이 만들어 낸 안정감과 판단력, 그리고 숙련된 태도에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정은 늘 늦다. 씨앗을 심은 순간이 아니라 나무가 그늘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알아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꾸준한 노력이 언제나 멋진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달렸지만 원하는 결승선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방향을 잘못 잡을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세상에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바꿀 수 없는 조건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충분히 노력한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얻은 체력과 습관, 판단력과 책임감은 다른 길에서도 힘이 된다. 하나의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다른 목표를 향해 다시 출발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노력의 진짜 보상은 특정한 성공만이 아니다. 어디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태도와 실력을 얻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물을 무서워했는지도 모른다.

수영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물이 완전히 편하지는 않다. 처음 2~3년은 호흡 때문에 유난히 힘들었다. 팔을 아래로 힘껏 당기면 얼굴이 물 밖으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굴은 여전히 물속에 있었다. 숨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를 더 높이 들었다. 어깨와 목에는 힘이 들어갔다. 몸은 더욱 가라앉았다.

 

숨이 막히면 마음이 급해졌다. 마음이 급해지면 동작은 더 커졌다. 살아남으려는 듯 물을 세게 밀어냈다. 하지만 물과 싸울수록 나는 더 깊이 가라앉았다. 숨을 쉬기 위해 발버둥 칠수록 숨을 쉬기 어려운 자세가 되었다.

 

악순환이었다.

 

그렇다고 물을 탓할 수는 없었다. 물은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특별히 더 부드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물의 성질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내가 물을 이겨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데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물속의 고요함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당장 숨을 쉬려고 머리를 들어 올리기보다 몸이 물에 뜰 때까지 기다려 보았다. 어깨의 힘을 빼고 머리를 물속에 맡겼다. 물을 밀어내기보다 물의 흐름을 느끼려고 했다. 머리가 자연스럽게 가라앉자 몸은 오히려 수평에 가까워졌다. 그 상태에서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입이 물 밖으로 나왔다.

 

숨을 쉬기 위해 머리를 높이 들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머리를 물에 맡겨야 숨을 쉴 수 있었다.

 

그 단순한 사실을 몸으로 이해하기까지 거의 2년이 걸렸다. 누군가 말로 설명해 주었지만, 듣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고 물을 마시고 숨이 막히는 경험을 거친 뒤에야 몸이 조금씩 받아들였다.

 

삶에도 이와 같은 순간이 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우리는 세상과 싸우려 한다. 더 크게 말하고, 더 많은 성과를 보여 주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한다. 인정받지 못할수록 몸과 마음에 힘이 들어간다. 작은 평가에도 예민해지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깊이 가라앉는다.

 

젊은 시절에는 단순한 일을 반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려운 계단을 하나씩 밟는 우직함도 필요하다. 당장 특별한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 움직여 보는 결단이 중요하다. 그 반복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실력이 될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는 불합리한 환경을 무조건 참고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바꾸어야 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노력에 비해 성장할 가능성이 없는 곳이라면 떠나는 선택도 필요하다. 물에 적응한다는 것은 물에 빠져 죽을 때까지 견딘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의 성질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내가 살아 움직일 방법을 찾는다는 뜻이다.

 

살다 보면 나보다 편한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좋은 환경과 배경을 갖고 태어나 더 낮은 계단을 오르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그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낀다. 때로는 자신의 출발점이 억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물이 있다. 겉으로 잔잔해 보일 뿐, 그 안에서 숨 쉬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풍족함이 선택의 두려움을 없애 주는 것도 아니다. 좋은 배경이 삶의 방향까지 정해 주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물은 멀리서 바라볼 때만 더 맑고 평온해 보인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물에서 헤엄치고 있는지 아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수영을 바라보는 동안 내 호흡은 흐트러진다. 그 사람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면 내 몸이 가라앉는다. 비교는 방향을 참고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나의 속도를 잃게 만들면 독이 된다. 결국 내가 건너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의 물이 아니라 내 앞에 놓인 물이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왜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이 질문은 충분히 자연스럽다.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게 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자신을 나약하다고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질문 안에 너무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나의 서운함을 세상이 해결해 줄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인생이 짧다.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른다. 인정은 힘이 되지만, 인정만을 연료로 삼으면 아무도 보지 않는 구간을 통과할 수 없다. 긴 인생에는 응원이 들리지 않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때로 노력은 우리를 배신한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마음을 다해 노력한 사람은 실패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남긴다.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사람을 이해하는 깊이도 생긴다. 쉽게 얻은 성공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것들이다.

 

짧은 성공과 갑작스러운 숙련은 대개 환상에 가깝다. 우연과 행운으로 빠르게 자란 나무는 뿌리가 얕을 수 있다. 겉으로는 높고 화려하지만 작은 외풍에도 쉽게 쓰러진다. 반면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천천히 뿌리를 내린 나무는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불어도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젊은 시절의 노력도 그렇다.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뿌리가 자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에도 뿌리는 더 깊어질 수 있다. 반복과 실패, 기다림과 실망이 한 사람의 중심을 단단하게 만든다.

 

인생은 25미터 수영도 아니고 100미터 달리기도 아니다. 한 번 숨을 잘 쉬었다고 끝나는 경기가 아니다. 한 구간에서 앞섰다고 승리가 확정되는 경기도 아니다. 긴 호흡으로 물을 건너야 하는 장거리 수영이며, 보이지 않는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마라톤에 가깝다.

 

그러므로 지금 숨이 가쁘다면 먼저 힘을 조금 빼야 한다. 물을 탓하기 전에 물의 흐름을 살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속도를 바라보기 전에 내 호흡이 무너지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 할 수 있는 동작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

 

처음에는 잘되지 않을 것이다. 편안하지 않아도 편안한 척해 볼 수 있다. 서툴러도 한 번 더 호흡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물이 조금씩 익숙해진다. 낯설었던 환경과 친해지고, 두려웠던 일이 일상이 된다. 어느 순간 숨이 쉬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물 위를 유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때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원래 잘했던 사람 같아요.”
“참 여유롭게 해내네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네요.”

 

그들은 내가 물속에서 얼마나 많은 숨을 삼켰는지 모를 것이다. 힘을 빼는 법을 배우기까지 얼마나 오래 물과 싸웠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때의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정받지 못했던 시간도 지금의 나를 만든 소중한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분명 따뜻한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일이다. 지금까지 충분히 애써 왔다고, 아직 결승선이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오늘의 한 걸음과 한 번의 호흡도 헛되지 않다고 스스로 말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과 싸우지 않으면서도 물을 건너는 사람으로.

박수를 기다리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달리는 사람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조용히 자신의 뿌리를 내리는 사람으로.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