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된 과정이다.
한 문장을 적기 위해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고,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때로는 감추어두었던 민낯을 마주해야 한다. 그런데도 책을 써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누구나 자연스럽게 경직되고, 익숙한 방법에 안주하게 되며, 결국 스스로도 모르게 과거의 경험만을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려는 상태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즉, 책 쓰기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어선’이 된다.
꼰대란 변화를 두려워하고, 익숙한 세계 안에서 자신이 쌓아온 경험만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내세우는 사람을 뜻한다. 그는 말하고 가르치는 일에 익숙하며, 자신의 견해만이 정답이라고 확신한다. 타인의 이야기는 듣는 척할 뿐, 마음속에는 이미 자신의 말로 되돌리기 위한 답변이 가득 차 있다. 과거의 화려함을 반복해서 언급하고, 현재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어제의 기준으로 오늘을 판단하려 한다. 문제는, 이러한 모습이 특별한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레 빠져들 수 있는 함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써야 한다.
책 쓰기는 외부에서 주입되는 변화가 아니라, 내면에서 시작되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나를 마주하게 한다. 그동안 외면하고 싶었던 실수, 부족함, 불완전함을 정면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는 단 한 문장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만의 껍질이 벗겨지고, 학습과 성찰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는 믿음은 흔들리고, ‘나는 더 배워야 한다’는 깨달음이 자리한다.
책을 쓰는 일은 불편하다.
글을 수정하고 삭제하고 다시 채우는 과정은 끝이 없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꼰대를 멀리하게 만드는 힘이다. 불편함은 변화의 징후이고, 성찰의 증거이며, 새로운 관점으로 확장되는 출발점이 된다. 작은 호기심을 기록하다 보면 더 많은 호기심이 생기고, 새롭게 배우는 일에 익숙해지면 멈춰 있던 사고의 세계에 숨이 돌아온다. 배우려는 마음은 본질적으로 겸손과 연결되어 있어, 타인의 이야기를 더 열린 마음으로 듣게 만든다. 결국 글쓰기는 나를 유연하게 하고, 더 넓은 세계로 이끄는 내부의 나침반이 된다.
과거의 성공에 머무르면 누구나 쉽게 정체된다. 안정은 달콤한 감옥이다. 익숙한 경험에만 기대면 새로운 세대와 단절될 수밖에 없다. 다시 연결되고,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나의 길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이런 열린 마음은 단순한 마음가짐이 아니라 꾸준한 훈련에서 비롯된다. 그 훈련이 바로 글쓰기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되고 싶은 나 사이에 다리가 놓인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지금의 나’를 정확하게 마주하게 된다.
책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안쪽 깊숙이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강해 보이려 했던 껍데기 아래에 있는 두려움, 실수, 미성숙함이 글 속에서 드러난다. 때로는 어린 아이처럼 불완전한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책 쓰기는 그 모습마저 받아들이게 한다. 숨기고 싶었던 장면을 언어로 기록하는 순간, 그 경험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나를 이루는 한 조각으로 바뀐다. 글을 쓰는 과정은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당당하게 세우는 과정이다.
결국, 책을 쓰는 일은 자신을 갱신하는 일이다.
나이와 경력은 자연스럽게 쌓여가지만, 성장과 성찰은 노력 없이 주어지지 않는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배우는 마음, 듣는 자세, 그리고 스스로를 의심해보는 용기다. 글쓰기는 그 모든 것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책을 쓰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도 유연함을 잃지 않고, 세대와 소통하고, 끊임없이 배움을 이어갈 수 있다. 책을 쓰는 사람으로 남는다는 것은 결국 더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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