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시작’이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그저 첫 발을 내딛는 단순한 행위조차 우리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두려움의 문턱에서, 변화의 싹은 트이기 시작한다.
1. 진화의 기억, 본능의 경계
새로운 일을 앞두고 주저하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생존 본능이다. 수십만 년 전, 낯선 숲과 마을로 이동하는 일은 곧 생사의 문제였다. 신중하게 살피고, 위험을 예측하며,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생존 확률을 높이는 것이 지혜였다.
이 DNA의 흔적이 오늘날 우리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도전, 새로운 관계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위험 신호’를 감지한다. 하지만 그 본능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인류의 진보는 바로 그 본능을 넘어서는 데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을 버리고, “이건 안 될 거야”라는 두려움을 넘어선 순간, 문명이 진화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거대한 기업들의 출발점은 화려한 빌딩이 아니라, 집 한켠의 작은 차고(Garage)였다. HP, 애플, 구글, 아마존 모두 ‘일단 시작해본’ 사람들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 완벽한 계획보다 ‘지금 해보자’는 용기였다. 완벽함을 기다리는 사이, 기회는 조용히 지나간다.
2. “해봤어?” — 정주영의 철학
“해봤어?”
이 짧은 질문 하나는 한국 현대사의 상징이 되었다. 정주영 회장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앞두고 늘 이 말을 던졌다. 모래사장에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비웃었다.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두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저 시작했다.
그의 철학은 단순했다. “시도하지 않으면 가능성은 영원히 0이다.”
우리는 종종 결과를 예측하며 계산한다. 실패의 확률을 따지고, 손실을 두려워하며 멈춰 선다. 하지만 시도하지 않은 실패는, 시도한 실패보다 훨씬 더 아프다.
정주영의 “해봤어?”는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재정의하는 말이었다.
3. ROI를 넘어 VOI로 — 가치의 눈으로 보기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늘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ROI(Return on Investment)는 얼마입니까?”
“이 캠페인으로 매출이 얼마나 늘었나요?”
당연히 합리적인 질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의 프레임 속에는 보이지 않는 맹점이 있다. 모든 시도가 즉각적인 수익으로 환산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장,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고객 관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과 신뢰 위에 쌓인다. 그 가치는 ‘투자 대비 수익’이 아니라, *‘투자 대비 가치(Value over Investment, VOI)’*로 보아야 한다.
마케팅의 본질은 ‘효율’이 아니라 ‘의미’에 있다. ROI만을 좇는 문화에서는 장기적인 혁신이 자라나기 어렵다.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이, 현대의 기업가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단 하나다.
“수익은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다.”
나 또한 마케팅을 하며 이 딜레마를 자주 마주한다. 내년의 성과를 예측할 수 없지만, 지금의 시도 없이는 내년의 성과도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은 시도를 택한다.
4. 수영장에서 배운 변화의 기술
10년 전, 나는 두려움을 품고 수영장을 찾았다.
물은 나에게 늘 불안의 상징이었다. 깊은 곳에 들어가면 심장이 빨리 뛰었고, 머리가 물속에 잠기면 본능적으로 숨을 참고 몸을 굳혔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마주하기 위해 수영복을 입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때의 나는 결심보다 본능이 앞섰고, 두려움보다 간절함이 컸다.
처음 몇 년은 정말 힘들었다. 물속에서 방향을 잃기도 하고, 호흡이 막혀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몸은 조금씩 물에 적응했고, 마음은 점점 평온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물은 나를 삼키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받쳐주는 존재가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변화는 두려움의 반대편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 자란다는 것을.
수영을 통해 몸이 건강해졌고, 마음이 단단해졌다. 그리고 그 경험은 일의 방식에도 스며들었다. 수영은 호흡, 리듬, 전진의 과학이었다. 마케팅도, 글쓰기도, 인생도 그렇다. 숨을 고르고, 리듬을 찾고, 멈추지 않고 전진해야 한다.
5. 마케팅에서 글쓰기로 — 또 다른 도전의 물결
기술 영업을 하다 마케팅으로 전환했을 때, 나는 또 한 번 물속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며,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 속에서 다시 ‘초보자’가 되었다. 고객은 익숙했지만, 시장의 언어는 달랐다.
그때의 나는 ‘익숙한 실패보다 낯선 배움’을 택했다.
그 선택은 내 커리어의 전환점이 되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 나는 또 다른 도전 앞에 서 있다.
20년 넘게 공학과 기술의 언어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인문학과 글쓰기의 언어로 나를 표현하고자 한다.
책을 쓰고, 나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는 일.
수영장에서 처음 물속으로 들어갔던 그때처럼, 여전히 두렵지만 설렌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지금 해보는 용기’가 내 삶의 방향을 바꿔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다.
6. 결론 — 변화는 시작의 또 다른 이름
두려움은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용기는 그 본능을 넘어서는 선택이다.
“준비가 충분하면 시작하겠다”는 말은 사실상 “영원히 시작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우리는 늘 완벽을 기다리지만, 완벽한 시점은 결코 오지 않는다.
모래사장에서 조선소를 짓던 정주영 회장도, 차고에서 컴퓨터를 조립하던 젊은 창업자들도, 모두 불완전한 시작을 택했다.
그리고 그 작은 시작이 세상을 바꿨다.
나에게 수영은 그 작은 시작이었다.
마케팅으로의 전환, 글쓰기로의 도전 역시 또 하나의 시작이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하지 않기에 가능성이 있다.
결국, 변화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용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용기는 언제나 이렇게 속삭인다.
“지금, 그냥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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