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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 생각, 에세이

책을 쓰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읽다

by Heedong-Kim 2025. 10. 5.

책을 쓴다는 건 단지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었고, 동시에 세상을 새롭게 읽는 일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책을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의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조용하지만 결정적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수영을 통해 얻은 균형의 원리를 정리하고 싶었고, 번아웃의 경험을 이겨낸 나만의 루틴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원고를 쓰기 시작하니, 예상보다 훨씬 더 깊은 내면의 대면이 필요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 이야기를 왜 써야 하는가’, ‘누구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 — 이 질문들 앞에서 쉽게 펜이 움직이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야 하는 일이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자연스레 다른 작가들의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예전엔 단순히 내용만 읽었지만, 이제는 그들의 문장을 ‘어떻게 썼는가’를 살피게 되었다. 목차를 보는 눈이 달라졌고, 서문을 읽는 호흡이 달라졌다. 이제는 그들의 첫 문장에서 어떤 고민과 전략이 숨어 있는지 보였다. 한 문단의 전개나 장의 배열 속에도 저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걸 깨달았다. 책은 결국 저자의 사고 구조를 드러내는 지도와 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시 읽었을 때, 그 변화를 가장 강하게 느꼈다. 반나절 만에 읽었지만, 그 책의 여운은 오래 남았다. 하루키의 문장은 달리기처럼 꾸밈없고, 호흡이 일정했다. 그는 작가로서의 자신을 숨기지 않았고, 달리기를 통해 얻은 삶의 통찰을 담담히 기록했다. 목차는 마치 1년간의 일기처럼 산만하게 흩어져 있었지만, 그 속에는 꾸준히 달려온 사람의 진심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다. ‘수영에 대한 나의 이야기도 이렇게 쓸 수 있지 않을까?’
 달리기와 수영은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리듬과 몰입은 닮아 있었다. 하루키가 마라톤의 기록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정의했다면, 나는 물속에서의 호흡을 통해 삶의 균형을 배우고 있었다. 그는 땀으로, 나는 물로 자신을 닦아내는 중이었다.

 

다만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도 있었다. 그의 글은 마라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깊이 공감될지 모르지만, 달리기에 큰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기록이 너무 세밀했고, 감정의 흐름이 러너의 감각에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세세한 과정을 성실하게 남겨두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그것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이 길을 걸었고, 앞으로도 달릴 것이다’라는 다짐이 묻어 있었다. 작가의 기록은 결국 자기 자신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이후에 읽은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 – 경량문명의 탄생』은 또 다른 시야를 열어주었다.
 그의 책은 에세이라기보다 사회를 분석하는 보고서에 가까웠지만, 그 안에도 ‘쓰는 사람의 구조’가 뚜렷이 보였다. 전체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장에는 다섯 개 내외의 꼭지가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분석하면서도 논리의 밀도를 유지했고, 문체는 간결하면서도 단단했다. 나는 그 구조를 따라가며 생각했다. ‘책은 결국 논리의 건축물이다.’

 

그는 정보의 파편을 모아 하나의 문명론적 서사를 구축했다. 반면 나는 내 일상과 경험의 파편을 엮어 하나의 인간적인 균형론을 세우려 했다. 하지만 방향은 다르더라도, 본질은 같았다. 세상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나의 위치를 찾으려는 시도였다.

 

책을 쓰며 내가 얻은 가장 큰 변화는 ‘시야의 전환’이었다.
 이제 책을 읽을 때, 나는 더 이상 독자로서의 감상에 머물지 않는다. 저자가 어떻게 이야기를 설계했는지, 어떤 리듬으로 문장을 구성했는지를 본다. 문단의 시작과 끝, 연결어의 흐름, 문체의 속도까지 유심히 본다. 한 권의 책은 저자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이 가장 농축된 결과물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책을 쓴다는 건 ‘삶을 다시 살피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왜 수영을 하고, 왜 글을 쓰며, 왜 균형이라는 단어에 이렇게 집착하는가. 이 질문은 단지 문장을 다듬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수영장 물속에서 들이마신 숨과 글을 쓰기 위해 들이마신 호흡은 다르지 않았다. 둘 다 ‘내면의 균형’을 위한 호흡이었다. 수영에서 호흡이 무너지면 몸이 가라앉듯, 글쓰기에서도 진심이 흐트러지면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저자 뒤에 숨은 ‘호흡’을 듣는다.
 그 호흡은 때로는 조용하고, 때로는 거칠다. 하지만 그 모든 리듬이 저자만의 인생을 드러낸다. 무라카미의 꾸준한 호흡, 송길영의 논리적인 호흡, 그리고 내가 찾고 있는 ‘균형의 호흡’. 결국 책이란, 그 호흡의 기록이다.

 

책을 쓰는 일은 세상을 다르게 읽는 일이다.
 이제 나는 한 권의 책을 펼칠 때마다, 문장보다 목차를 먼저 보고, 이야기보다 구조를 먼저 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묻는다. “이 사람은 무엇을 믿었고, 무엇을 전하려 했을까?”
 그 질문은 곧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남기려 하는가?”

 

책을 쓰며 알게 된 것은, 결국 모든 글은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글을 통해 자신을 정리하고, 자신을 이해하며, 자신을 확장한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내 책을 읽으며, 나의 호흡을 느낀다면 — 그때 비로소 이 긴 여정의 의미가 완성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물속에서 호흡을 가다듬듯, 문장 속에서 나를 다듬는다.
 책을 쓰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만큼 깊이 있는 삶의 연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연습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조금 더 맑게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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