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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 생각, 에세이

책 쓰기와 마케팅, 닮은 두 개의 길

by Heedong-Kim 2025. 10. 6.

책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내 안의 생각과 경험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글을 쓰는 법, 책을 기획하는 법, 출판까지의 여정을 알려주는 몇 권의 책과 강좌를 찾아 읽었다. 거기에는 글쓰기의 태도부터 기술적인 방법까지 다양한 조언이 담겨 있었다.

 

“다독, 다작, 다상량.” 많이 읽고, 많이 쓰고, 깊이 생각하라는 기본 원칙.
 “3T — Title, Timing, Target.” 제목, 시기, 그리고 독자.

 출간기획서 작성법, 글감 찾는 요령, 출판사와의 협업 방법까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의와 책을 들으며 나는 익숙한 단어와 구조들을 계속 떠올렸다. “이건 마케팅이잖아.”

 

나는 오랫동안 마케팅 일을 해왔다. 제품을 알리고, 고객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일. 그 과정을 통해 기업은 신뢰를 얻고, 브랜드는 생명을 갖는다. 그런데 책을 쓰는 일도 그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전에서 마케팅의 정의를 찾아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기업이 고객을 위해 가치를 창출하고, 강력한 고객 관계를 구축하여 고객에게 가치를 얻는 과정.”

이 정의 속 단어 몇 개만 바꾸면 그대로 ‘책 쓰기’가 된다.


 “저자가 독자를 위해 가치를 창출하고, 강력한 독자 관계를 구축하여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는 과정.”

렇다. 책을 쓴다는 건 나의 생각과 이야기를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내가 어떤 경험을 했고, 무엇을 느꼈는지, 그 속에서 어떤 통찰을 얻었는지를 글로 전달함으로써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건네는 행위다.

 

물론, ‘나를 위한 글쓰기’도 있다. 일기처럼, 혹은 자기 성찰의 기록처럼. 하지만 출판이라는 과정을 거쳐 ‘독자’에게 닿기를 바란다면, 그 순간부터 글은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글은 독자의 시간과 마음을 빌려 완성된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독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누가 읽을까.
 그들은 무엇을 고민할까.
 어떤 문장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까.

 

이런 질문들은 마케팅의 핵심이기도 하다. 시장을 분석하고, 고객을 정의하며, 메시지를 설계하는 과정. 결국 책도 하나의 ‘콘텐츠 제품’이고, 독자는 ‘시장’이다. 좋은 책은 좋은 제품처럼, 철저하게 독자를 이해한 결과물이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보다, 독자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가를 먼저 묻는 일. 그 물음이 책의 방향을 결정한다. 작가로서의 첫걸음은 ‘독자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책을 쓰는 일은, 결국 관계를 맺는 일이다.
 단지 글자를 통해, 문장을 통해, 그리고 진심을 통해.

 

그 관계가 단단해지려면 ‘가치’가 있어야 한다. 내 글을 통해 독자가 무언가를 배우거나, 느끼거나, 위로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책의 핵심 가치다. 기업이 고객에게 상품의 효용을 약속하듯, 작가도 독자에게 글의 의미를 약속해야 한다.

 

그래서 출간기획서는 일종의 마케팅 플랜이다.
 ‘이 책은 어떤 독자를 위한 책인가?’
 ‘그들에게 어떤 문제를 해결해줄 것인가?’
 ‘다른 책과 어떤 점에서 다르고, 왜 지금 필요한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곧 책을 빚는 과정이다.

 

책을 쓴다는 건 내면의 이야기를 세상으로 꺼내는 행위이지만, 동시에 세상과 소통하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진심과 전략, 감성과 논리가 공존한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읽히는 책’이 된다.

 

독자를 생각하지 않은 글은 종종 자기 만족에 머문다.
 독자와 연결되지 않은 책은 결국 공허하다.
 반대로, 진심으로 독자를 향한 책은 오랜 시간 읽힌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며 그 길목에 서 있다.


 저자로서의 삶이 정말 가능할까?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솔직히 두렵다. 하지만 두려움의 반대편에는 기대가 있다. 내 글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고, 누군가의 생각을 확장시킬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보상일 것이다.

 

책을 쓰는 과정은 마케팅의 여정과 같다.
 처음에는 아이디어를 탐색하고, 콘셉트를 정의하며, 타깃을 설정한다.
 그 다음에는 메시지를 설계하고, 전달 방식을 고민한다.
 마지막에는 독자의 반응을 통해 피드백을 얻고, 다음 이야기를 준비한다.

 

마케터가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고민하듯, 작가는 독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진정성’을 고민한다. 표현 방식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

 

책 쓰기와 마케팅은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할수록, 메시지는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 선명함은 독자에게 신뢰로 다가간다.

 

지금 나는 책을 통해 또 하나의 마케팅을 배우고 있다.
 그건 제품을 파는 마케팅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시키는 마케팅이다.
 세상에 나의 생각을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나를 발견하는 마케팅이다.

 

책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세상에 ‘런칭’하는 일이다.
 제품의 이름을 정하듯 제목을 짓고, 브랜드 스토리를 구성하듯 프롤로그를 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왜 이 이야기를 써야 하는가’라는 존재의 이유가 담긴다.

 

이제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책을 쓴다는 건 나를 표현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일이다.
 그렇기에 마케팅과 책 쓰기는 다르지 않다. 둘 다 결국 ‘사람’을 향해 있다.

 

독자를 이해하는 작가, 고객을 이해하는 마케터.
 그 둘의 시선은 다르지 않다.

그리고 나는 그 교차점에서, 한 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문장들 속에서, 나는 배운다.


 마케팅이 사람을 향한 기술이라면, 책 쓰기는 마음을 향한 기술이다.
 두 기술이 만나면, 아마도 그때 비로소 나다운 이야기가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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