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물을 두려워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고 폐도 튼튼하지 못했다. 숨이 차오르면 늘 기침을 했고, 조금만 뛰어도 금세 호흡이 가빠왔다. 그런 내게 물속에서 호흡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물은 언제나 차갑고 무겁고, 나를 가라앉히려는 적 같았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수영장에서 웃으며 뛰어들 때, 나는 멀리서 바라만 봤다. 그 순간에도 물속은 나를 환영하지 않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성인이 된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점점 더 무거워졌다. 몸은 늘 피곤했고, 마음은 일과 인간관계에 치여 지쳐갔다. 회사에서의 성과 압박, 동료와의 경쟁, 가정에서의 역할이 한꺼번에 겹치자 숨이 막히는 순간이 많았다. 내 일상은 마치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 같았다. 그저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수영을 배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운동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었고, 마침 회사 근처에서 수영장을 발견한 것이 계기였다. 등록을 하고 강습 첫날을 맞았다. 하지만 첫날부터 좌절했다. 강사는 물 위에서 편안히 ‘음파음파’ 하며 떠 있으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 몸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어깨는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다리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호흡은 턱밑까지 차올라 금방이라도 물을 마실 것 같았다.
강사의 목소리는 내 귀에 거의 명령처럼 들렸다. “힘을 빼세요, 호흡을 고르세요. 괜찮습니다, 물에 빠지지 않아요!” 그러나 내 몸과 마음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물은 여전히 공포였고, 나는 물속에서 더 깊이 침잠하는 기분이었다. 첫날 이후, 나는 다시 수영장에 가지 못했다. 두려움이 몸에 새겨졌고, 물과 나 사이의 거리는 다시 멀어졌다.
몇 년이 흐른 뒤 나는 다시 수영을 시도했다.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수영장을 찾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열심히 해보자 다짐했다. 두 달 가까이 다녔지만 여전히 진전이 없었다. 몸은 계속 가라앉았고, 호흡은 불안정했다. 수영은 나와 맞지 않는 운동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이상하게 수영에 대한 끌림이 남아 있었다.
서울로 다시 돌아와 마케팅 업무를 시작하면서, 나는 다시 수영장을 찾았다. 집 근처 초등학교 부설 수영장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강사가 물속에 직접 들어와 함께 호흡과 동작을 지도해 주었다. 하지만 ‘몸이 물에 뜨지 않는다’는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2년 가까이 꾸준히 다녔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맥주병 같은 몸’이라며 스스로를 비웃었다. 발버둥을 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호흡은 매번 막혔다. 물속에서의 나는 늘 실패자였다.
전환점은 아주 작은 순간에 찾아왔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레인 한쪽에서 발을 뻗고 팔을 젓고 있었다. 숨이 차올라 고개를 더 높이 들었다. 그런데 그럴수록 입은 수면 아래로 잠겨 들었다. “왜 숨이 쉬어지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때 무심코 어깨 힘을 조금 빼고, 고개를 더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놀랍게도 입이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올라왔다. 고개를 더 넣자, 오히려 숨을 쉴 수 있었다.
그건 내게 충격적인 깨달음이었다.
나는 ‘머리를 들면 숨이 쉬어진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반대였다. 고개를 숙이고 힘을 빼야 오히려 숨이 쉬어졌다. 어깨에 힘을 빼자 팔이 부드럽게 돌아갔고, 발차기도 자연스러워졌다. 몸은 앞으로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수영장에서 진짜로 ‘숨을 쉬며’ 나아갈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 깨달음은 단순히 수영 기술을 익힌 것을 넘어, 내 삶의 방식에 대한 은유였다. 나는 늘 더 많은 힘을 주며 살아왔다. 회사에서 더 오래 버티고,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숨은 막히고 몸은 무거워졌다. 수영에서처럼 일에서도 필요한 것은 ‘힘’이 아니라 ‘리듬’이었다. 힘을 빼고, 호흡을 고르고, 작은 리듬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었다.
수영은 내게 균형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물과 나 사이의 오해는 풀렸다. 물은 나를 가라앉히는 적이 아니라, 내가 맡기면 떠받쳐 주는 동반자였다. 일도 마찬가지다. 일은 나를 소진시키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리듬을 찾으면 나를 앞으로 밀어주는 에너지였다.
나는 점점 작은 루틴의 힘을 믿게 되었다. 매일 아침 수영장에 가서 30분이라도 몸을 물에 맡기는 것. 숨을 고르고, 힘을 빼고, 물의 리듬에 몸을 맞추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루의 균형이 달라졌다. 회사에서의 긴장도, 집에서의 역할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실천 노트 — 오늘의 작은 루틴
- 회의 시작 전, 자리에서 30초간 어깨 힘을 풀고 호흡에만 집중한다.
-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오늘 하루 ‘힘을 너무 준 순간’을 하나 떠올려 메모한다.
- 수영을 못하더라도 물컵에 얼굴을 살짝 담그고, 물속에서 천천히 숨을 내쉬는 연습을 해 본다.
나는 이제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전히 잘하지는 못하지만, 물과 나는 서로의 리듬을 찾았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호흡이다. 호흡이 이어지면 삶도 이어진다. 물속에서 배운 이 진리는 내 삶 전반에 스며들었다.
전진은 힘에서 오지 않는다. 전진은 리듬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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