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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 생각, 에세이

2. 숨부터 배우는 삶

by Heedong-Kim 2025. 10. 3.


살아움직이는 모든 생물의 시작은 호흡이다. 숨쉬기. 
숨쉬지 않는 생물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호흡을 제대로 할수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

 

숨을 제대로 쉬는 것이 이보다 더 중요한 운동은 없을 것이다. 수영하는 방법은 숨쉬는 방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잘 숨쉬고 나아가는 것이 수영일테니까. 

 

나는 수영장에서 처음 호흡을 배우는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난생처음 수영 강습을 받았다. 단체 수업이어서 어색한 수영복을 입고 조금 부끄러웠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강사는 “숨을 들이마시고, 물속에서 내쉬세요. 그리고 고개를 돌려 다시 들이마시면 됩니다”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말로는 단순했다. 그 유명한 음파음파… 하지만 실제로는 그 단순한 동작이 가장 어려웠다.

 

물속에서 숨을 멈추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마음은 불안에 휩싸였다. “제대로 숨을 못 쉬면 어떻게 하지?”, “물속에서 공기가 부족하면 나는 죽을지도 몰라.” 이런 두려움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가슴은 이미 조여왔고, 어깨는 다시 단단히 올라붙었다. 숨을 들이마셔야 할 순간에도 나는 오히려 숨을 멈추고 있었다.

 

호흡은 가장 기본이자, 가장 어려운 기술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루에 수만 번 호흡한다. 하지만 정작 제대로 숨 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간다. 긴장하면 숨이 가빠지고, 불안하면 호흡은 얕아진다. 사람들은 호흡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식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호흡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

 

수영에서 호흡은 곧 생존이다. 잠깐의 실수만으로도 물을 마시고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초보자는 호흡부터 배워야 한다. 제대로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지 못하면, 팔을 어떻게 젓든 발차기를 어떻게 하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는 그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호흡이 되지 않으니, 더 긴장하게 되고 호흡이 더 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삶에서도 호흡은 그 출발점이다. 숨이 막히는 듯한 회의, 답답한 상사의 지시, 가슴을 죄어오는 성과 압박. 그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리고, 숨을 얕게 쉰다.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더욱 더 긴장하게되어 호흡이 더 되지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호흡이 막히면, 일은 더 힘들어지고 생각은 좁아진다. 유연한 생각과 사고가 필요하고 창의적인 의견이 필요할 때,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긴장된 어깨와 머리에서 그러한 것들이 나올수가 없다. 

 

머리를 들수록 숨은 막힌다

 

처음 배울 때 나는 숨을 쉬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더 들었다. 입과 코가 물 위로 나와야 공기를 마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본능적인 생각과 두려움에 사로잡혀서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고개를 더 들수록 몸이 가라앉았고, 입은 여전히 물속에 잠겨 있었다. 그때마다 물을 삼키고, 당황해서 허우적거렸다. 계속 숨을 쉴 수 없으니, 조금 가다가 숨을 쉬기위해서 일어서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사가 이렇게 말했다.


 “머리를 더 넣으세요. 고개를 들지 말고, 오히려 숙이세요.”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를 숙이면 숨을 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말이 안된다. 숨을 쉬기 위해서 머리를 물 속에 더 깊이 넣으라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이 간단한 것을 이겨내는 데 수 년이 걸렸다. 내 속 좁은 생각과 고집스런 의지가 한 몫했으리라. 그러나 서서히 지시에 따라 머리를 물 속으로 조금 더 넣자, 놀랍게도 입이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올라왔다. 고개를 높이 드는 대신 물속으로 낮추자, 숨이 쉴 수 있게 머리가 올라오고 입이 물밖으로 자연스럽게 나오면서 숨을 쉴 수 있었다. 힘을 주는 대신 내려놓자, 공기가 들어왔다.

그 순간 깨달았다. 호흡은 억지로 신경써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맞추는 것이다. 억지로 머리를 들면 숨은 막히고, 힘을 빼고 물에 몸을 맡기면 숨은 이어진다.

 

일상에서도 호흡이 막히는 순간들

 

수영장에서 배운 이 경험은 일상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나는 늘 더 많은 말을 하려고 했고, 더 많은 결과를 내려고 했으며, 더 빨리 달리려고 했다. 연구 개발, 기술 영업, 마케팅에서도 더 많은 프로젝트와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숨은 막혔다. 더 많은 성과에 대한 압박은 자연스럽게 번아웃(Burnout) 으로 이어졌다. 힘이 빠졌다. 많은 보고서를 쓰면서도 호흡이 점점 얕아졌고, 회의 자리에서는 목이 뻣뻣해졌다. 업무가 몰릴수록 어깨는 올라갔고, 더욱 긴장되어 마음은 더 불안해져만 갔다. 

 

그러나 매일 아침 수영을 배우며 알게 되었다. 삶도 수영과 똑같다는 사실을. 머리를 들수록 숨은 막히고, 힘을 줄수록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더 잘하려고 애쓰고 어깨에 힘주고 머리를 들어올릴수록, 숨을 쉬지 못하게되고 호흡이 가빠져서 시야는 더욱 좁아지고 결국 호흡을 하지 못해 일어서 물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힘을 빼고, 리듬을 찾을 때 우리는 더 잘 살아갈 수 있게된다.

 

숨을 의식하며 내쉬고 들이마시는 것. 그것이 삶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호흡이 바꾸는 몸과 마음

 

호흡은 단순히 공기를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다. 호흡은 신체와 정신을 동시에 조절하는 메커니즘이다. 깊고 안정된 호흡은 심박수를 낮추고, 긴장을 완화시키며, 뇌에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한다. 그래서 집중력이 향상되고 감정은 안정된다.

 

나는 수영장에서 호흡을 배우고 난 이후, 일상에서도 의식적으로 숨을 내쉬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회의 시작 전에 30초간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내쉰다. 발표 전에는 호흡을 고르며 긴장을 풀어낸다. 심지어 집에서 가족과 갈등이 생길 때에도, 먼저 숨을 내쉰 뒤 대화를 시작한다. 단 1~2회의 호흡만으로도 상황은 훨씬 부드럽게 풀려갔다. 긴장하지 않을 때, 우리는 더 편안하게 동작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후 내쉬는 호흡으로 근육을 이완하고 몸의 긴장을 낮출 때, 원하는 동작을 더 쉽게 할 수 있고 더 나아갈 수 있다. 

 

직장의 회의 시간에서도 긴장된 발표자의 호흡이 들리면, 발표자의 내용과 제안보다도 그 떨리는 호흡때문에 집중할 수 없게되는 경험이 많다. 호흡이 딸리고 긴장할 수록 발표자 노트만 읽게되고 그럴수록 원하던 내용과 의도를 전달할 수 없게된다. 긴장을 풀고 천천히 호흡하면 발표하고 제안할 때, 더 잘 전달되고 듣는 사람도 더 집중할 수 있게된다. 

 

명상을 잠깐 배우게되었을 때에도, 호흡을 느끼면서 들숨과 날숨을 천천히 반복하도록 제안한다. 그러면서 숨과 숨 사이를 느끼고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숨이 전달되는 것을 상상한다. 온 몸이 자연스럽게 이완된다. 편안해진 몸을 통해서 정신도 맑아지게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호흡은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그것은 단순한 신체 기능이 아니라, 균형을 회복하는 도구였다.

 

작은 루틴: 호흡 훈련법

나는 호흡을 단순히 ‘수영장에서만 하는 기술’로 두지 않았다. 매일 일상 속 작은 루틴으로 가져왔다.  

 

출근길 호흡
누구나 출근길은 지겹고 긴 시간일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눈을 감고 4초 들이마시고, 6초 내쉰다. 스마트폰 대신 숨을 체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회의 전 호흡
자리에 앉아 어깨를 풀고, 3번만 깊게 내쉰다. 회의 집중력이 달라진다.

잠들기 전 호흡
불을 끄고, 누워서 10번의 복식호흡. 하루의 긴장을 털어내면 수면의 질이 높아진다. 
스마트폰으로 눈과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대신, 잠깐 호흡에만 집중해보자. 더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수영장 루틴
물에 들어가기 전, 벽을 잡고 10초 동안 얼굴을 담근 채 천천히 숨을 내쉰다. 몸이 물에 익숙해진다.
몸이 물에 적응할 수 있도록 천천히 시작해보자. 

우리 일상의 작은 순간에 호흡을 정돈해보자. 잠시 호흡을 잡고 숨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작고 단순한 루틴이지만, 꾸준히 하게되면 몸과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호흡은 삶을 이어주는 리듬

 

사실 호흡은 단절을 이어주는 리듬이다. 숨이 끊기면 생도 끝난다. 하지만 숨이 이어지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삶이 힘들 때, 나는 숨을 멈추고 있는 건 아닐까?”

 

수영은 내게 알려주었다. 숨을 멈추지 말라고. 아무리 힘들어도,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들이마시면 된다고. 중요한 건 완벽하게 해내는 게 아니라, 호흡을 이어가는 것이다. 숨을 쉴 수 없게 힘들게 아파도, 잠시 숨을 쉬게 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럴 수 없을 것처럼 두려움에 휩싸인 마음이 더욱 숨쉬기 힘들게 만든다. 조금만 머리를 물 속으로 더 깊게 집어넣고 상황을 살펴볼 여유를 가지면,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와 호흡할 공간이 생기고 숨을 이어날 수 있게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직장 생활에서의 압박, 가정에서의 책임, 관계에서의 갈등이 우리를 숨 막히게 할 때, 우리는 종종 모든 걸 멈추고 싶어진다. 하지만 숨을 멈추는 대신, 한 번 더 내쉬고 들이마실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연스럽게 호흡하면 된다. 들숨과 날숨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대신, 그 리듬에 편안히 몸을 맡기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리듬 속에서 편안해진 몸과 마음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오늘의 작은 루틴  

 

호흡 관찰하기: 오늘 하루 중 무심코 숨이 가빠진 순간을 적어보자.

 

1분 호흡 연습: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1분 동안 눈을 감고 호흡만 느껴보자. 가볍게 호흡을 생각하면서 집중하다보면 몸이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물컵 연습: 얼굴을 물에 담그고 숨을 내쉬는 연습을 5번 해보자. 수영을 못해도 물과 친해지는 방법이다.

숨은 가장 기본이지만, 가장 자주 잊혀진다. 대부분의 운동에서 그 핵심에 있지만, 정작 깊이있게 호흡에만 가르치기보다 운동의 기술과 방법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삶에서도 늘 더 많은 성과, 더 빠른 속도, 더 많은 힘을 원하게된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먼저 배워야 하는 건 숨 쉬는 법이다. 늘 간과되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방법이다. 

 

수영장에서 숨을 배우고 나서, 나는 삶의 호흡도 바꿀 수 있었다. 머리를 들수록 숨이 막히던 내 인생이, 고개를 숙이고 힘을 빼자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숨부터 배우는 삶. 그것이 균형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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