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답을 알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는데 갑자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젊었을 때는 그런 순간이 오면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경험이 부족해서 답을 모르는 것이고, 조금 더 공부하고 조금 더 노력하면 언젠가는 모든 것이 분명해질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반대라는 생각이 든다.
경험이 쌓인다고 해서 선택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는 것이 많아지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 얻을 수 있는 것뿐 아니라 잃을 수 있는 것도 보인다. 한 번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조금 더 멀리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결정은 스무 살보다 마흔 살, 쉰 살에 더 어렵다.
젊을 때의 선택에는 가능성이 많지만, 시간이 흐른 뒤의 선택에는 책임과 경험의 무게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여러 번 그런 순간을 지나왔다.
처음에는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연구개발 일을 했다. 회로와 장비를 들여다보고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일이 익숙했다. 그때만 해도 내가 평생 기술자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외국계 회사의 엔지니어가 되었고, 다시 영업을 경험했다. 이후에는 마케팅으로 역할을 옮겼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커리어는 처음부터 계획한 직선이 아니었다.
한 단계씩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움직였다기보다는 그때그때 주어진 기회를 붙잡고, 고민하고, 때로는 불안해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런 질문이 자주 찾아왔다.
‘앞으로도 이렇게 가는 것이 맞을까?’
‘지금 내가 잘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아직 늦지 않았을 때 새로운 일을 해봐야 할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고민이 시작되면 생각은 금세 복잡해진다.
답을 찾기 위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책을 읽는다. 인터넷에서 비슷한 경험을 검색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도 찾아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보를 많이 찾을수록 답이 더 선명해지기보다 오히려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누군가는 안정적으로 지금의 강점을 더 키우라고 한다.
누군가는 과감하게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고 한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결국 다른 사람의 답은 참고자료일 뿐 내 삶의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일본의 호리에 노부히로 코치가 쓴 《스스로 답을 찾는 힘》에서 흥미로운 다섯 가지 질문을 보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해보라는 것이다.
1. 내가 얻고 싶은 결과는 무엇인가?
2. 나는 왜 그것을 얻고 싶은가?
3. 어떻게 하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가?
4. 그것은 내 미래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5. 지금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처음에는 너무 단순해 보였다.
이 정도 질문이라면 굳이 책에서 읽지 않아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하나씩 천천히 생각해보니 이 다섯 질문에는 꽤 중요한 흐름이 담겨 있었다.
원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목적을 확인하고, 전략을 찾은 뒤, 미래의 의미를 생각하고, 결국 오늘의 행동으로 내려오는 과정.
고민을 없애주는 질문이라기보다, 뒤엉킨 고민을 정리해주는 질문이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첫 번째 질문부터 생각보다 어렵다.
“내가 얻고 싶은 결과는 무엇인가?”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적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일이 힘들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상사와 일하는 것일까. 조금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일까.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것일까. 더 큰 권한과 영향력을 갖고 싶은 것일까. 혹은 단순히 지금 너무 지쳐 있어서 쉬고 싶은 것일까.
겉으로는 모두 ‘회사가 힘들다’는 하나의 고민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
나 역시 커리어를 고민할 때 처음에는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꼭 다른 일이 하고 싶은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조금 더 넓게 활용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새로운 기술과 AI 같은 변화 속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다. 오랫동안 일하면서 쌓은 것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축적한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확장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 차이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때로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결국 무엇을 원하는가?”
그런데 나는 왜 그것을 원하는가
두 번째 질문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나는 왜 그것을 얻고 싶은가?”
어쩌면 다섯 질문 가운데 가장 불편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질문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나 자신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승진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정말 더 큰 일을 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보다 뒤처지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새로운 직책을 원한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도전이 필요해서일 수도 있다.
반대로 지금의 나를 인정받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사람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며 살아간다.
좋은 학교, 좋은 회사, 높은 직급, 높은 연봉, 좋은 집.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 ‘남들이 좋다고 말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할 때 생긴다.
젊었을 때는 비교적 단순했다. 앞에 있는 목표를 향해 달리면 됐다. 더 잘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질문이 달라진다.
‘더 올라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무엇을 위해 올라가는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어디에 쓰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나다운지,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더 배우고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왜’를 묻는 질문은 목표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목표 자체를 바꾸어놓는다.
승진이 목표였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더 큰 영향력이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영향력을 만드는 방법은 승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 수도 있고, 사람을 키울 수도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조직에 확산시킬 수도 있다.
목적이 분명해지면 길은 오히려 여러 개가 된다.
답이 하나라고 생각하면 고민은 더 커진다
세 번째 질문은 전략이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가?”
나는 이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고 본다.
“방법이 하나가 아니라면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
고민에 빠질수록 사람의 시야는 좁아진다. 계속 다닐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지원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도전할 것인가, 안정적으로 남을 것인가. 마치 인생에 두 개의 문밖에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부분 세 번째, 네 번째 길이 존재한다. 완전히 직업을 바꾸지 않아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다.
회사를 옮기지 않고도 다른 역할을 경험할 수 있다. 지금 일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도 있다.
글을 쓰거나 강연을 하거나 작은 개인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볼 수도 있다.
나는 연구개발을 하다가 엔지니어가 되었고, 영업을 했으며, 다시 마케팅을 하게 되었다.
각각의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이전의 경험이 끝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연구개발을 했던 경험은 기술을 이해하는 힘이 되었고, 엔지니어 경험은 고객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영업 경험은 고객이 실제로 무엇에 돈을 쓰는지 이해하게 했고, 마케팅을 하면서는 이 모든 경험을 연결해서 시장과 고객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서로 다른 길처럼 보였는데 지나고 나니 하나가 다른 하나의 재료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새로운 선택을 할 때 이렇게 생각하려 한다.
‘지금까지의 것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까지 쌓은 것을 가지고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
이렇게 질문을 바꾸면 선택지가 훨씬 많아진다.
지금의 선택이 미래의 나에게 무엇을 남길까
네 번째 질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질문이다.
“그것은 내 미래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대부분 현재의 손익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연봉이 얼마나 오르는가. 직급이 올라가는가. 일이 편해지는가. 성과가 인정받는가.
물론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조금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이 선택을 통해 3년 뒤의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을까?”
새로운 기술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더 큰 시장을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실패를 통해 판단력이 생길 수도 있다. 혹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될 수도 있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결과’보다 ‘남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모든 선택이 성공할 수는 없다.
지원한 일이 잘되지 않을 수도 있고, 시작한 프로젝트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사람을 만나고, 생각의 영역을 넓혔다면 그것은 완전한 실패가 아니다.
반대로 당장 좋은 결과를 얻었더라도 몇 년 뒤 나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 선택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결정을 앞두면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볼 만하다.
“이 경험은 미래의 나에게 어떤 자산으로 남을 것인가?”
돈도 자산이고 직급도 자산이다. 하지만 기술, 경험, 사람, 신뢰, 평판, 생각하는 힘 역시 자산이다.
그리고 때로는 후자의 자산이 훨씬 오래간다.
결국 삶을 바꾸는 것은 오늘의 작은 행동이다
마지막 질문은 단순하다.
“지금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없으면 앞의 네 질문은 모두 생각으로 끝난다.
나도 생각이 많은 편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 하면 먼저 조사한다. 가능성을 따져보고 장단점을 비교한다.
그 과정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생각이 길어지면 어느 순간 ‘충분히 생각했다’는 사실 자체가 행동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오늘 30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AI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하는 것보다 실제 도구 하나를 사용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계획보다 한 편을 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커리어가 궁금하다면 몇 달 동안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그 일을 하는 사람 한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편이 낫다.
큰 결정을 한 번에 내릴 필요도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작은 실험이다.
한 걸음 움직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정보가 생긴다. 그 정보를 가지고 다음 판단을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처음 생각했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행동은 단순히 생각의 결과가 아니다.
행동 자체가 다음 생각을 만들어낸다.
답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질문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예전에는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은 정답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경험이 많아지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곧바로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살아갈수록 오히려 정답이 없는 문제가 많아진다.
어떤 직업이 좋은지. 언제 도전하고 언제 멈춰야 하는지. 돈과 시간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안정과 성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이런 문제에는 누구에게나 통하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정답을 외우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만들어가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힘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그것을 원하는가.
어떤 방법들이 가능한가.
이 선택은 미래의 나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그리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은 무엇인가.
여전히 나도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지금까지 쌓은 경험을 어떻게 더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을지, 새로운 기술과 변화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디까지 도전해야 할지 고민한다.
예전 같으면 빨리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려 한다. 완벽한 답을 기다리는 대신 좋은 질문을 하나씩 던져보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해보는 것이다. 어쩌면 삶의 답은 어느 날 갑자기 발견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질문하고,
선택하고,
움직이고,
다시 질문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길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나는 이 다섯 가지 질문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왜 그것을 원하는가.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그것은 미래의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답이 없어서 막막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직 나 자신에게
충분히 좋은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글쓰기: 책, 생각,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 인생의 계획에 없던 길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2) | 2026.09.21 |
|---|---|
| 잘하는 일을 내려놓아야, 나만의 일이 보인다 (1) | 2026.09.21 |
| 중국을 보며, 다시 한국을 생각하다 (2) | 2026.08.23 |
| 확증편향 - 오래된 확신을 의심하는 일 (1) | 2026.08.17 |
| 찰나를 영원으로 남기는 일 (0) | 2026.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