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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 생각, 에세이

중국을 보며, 다시 한국을 생각하다

by Heedong-Kim 2026. 8. 23.

20년 전, 처음 중국 상하이에 출장을 갔다.

 

구미 LG전자에서 서울의 외국계 회사로 자리를 옮긴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당시 내가 맡았던 일은 노키아의 측정 시스템을 조립하고 검증하는 업무였다. 지금처럼 중국이 첨단 기술과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 나라로 느껴지던 시절은 아니었다. 내 눈에 비친 중국은 거대한 제조공장이었다.

 

상하이 거리에는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풍경과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활의 모습이 함께 있었다. 조금은 거칠고, 조금은 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다.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느껴졌다.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회사의 Asia Pacific 지역에는 일본과 한국, 중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인도, 호주 등 여러 나라가 포함되어 있었다. 교육이나 미팅이 열리면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곳은 작은 아시아의 축소판 같았다.

 

일본 직원들은 대체로 나보다 열 살 이상 많아 보였다. 검은색 서류가방을 들고 다녔고, 교육 시간에는 조용히 노트를 꺼내 중요한 내용을 적었다. 질문은 많지 않았지만 태도는 진지했다. 오랜 산업화의 시간에서 비롯된 안정감과 질서가 느껴졌다.

 

중국 직원들은 대부분 자기들끼리 모여 다녔다. 당시 내 눈에는 옷차림이나 생활 방식이 다소 투박해 보였다. 영어로 진행되는 교육에서도 조용한 편이었다. 반면 싱가포르 사람들은 영어가 익숙해서인지 질문도 많고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인도 직원들은 더 적극적이었다. 강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당시에는 그 특유의 영어 억양을 알아듣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 사이에 한국이 있었다.

내가 느낀 당시의 일본은 40대의 큰형 같았다. 경험이 많고 침착했다. 중국은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막내처럼 보였다. 무엇인가 빠르게 배우고 있었지만 세련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국은 그 중간의 30대 형 같았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욕심도 많았다. 하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서두르고, 여기저기 부딪치기도 했다.

 

그때 나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이야기했고, 중국과 한국의 격차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기억을 다시 꺼내 보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현재의 모습을 미래의 모습이라고 믿는 것이다.

 

20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이다. 특히 기술과 산업의 세계에서는 한 나라의 위상 자체가 달라질 수 있는 시간이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었다.

 

초기의 중국 산업은 모방에서 시작했다. 스마트폰도 자동차도 반도체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중국에 공장을 세웠고 생산 기술을 이전했다. 애플을 중심으로 거대한 전자제품 공급망이 만들어졌고,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관리와 품질 관리 방식이 중국 현장에 축적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제조기지였다. 하지만 제조를 오래 하면 기술이 쌓인다. 기술이 쌓이면 설계 능력이 생긴다. 설계를 하다 보면 연구개발이 시작된다. 그리고 연구개발이 축적되면 어느 순간부터 모방이 혁신으로 바뀐다.

 

중국 스마트폰 산업의 발전 과정이 그랬다.

처음에는 아이폰을 닮은 제품을 만들었다. 가격은 훨씬 저렴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한 모방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공급망과 부품 산업, 소프트웨어, 디스플레이, 배터리, 카메라 기술이 함께 성장했다.

 

자동차 산업도 비슷하다.

과거 중국 자동차는 품질이 낮은 저가 제품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독일과 미국, 일본과 한국의 자동차 기업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제조와 품질, 디자인과 생산 기술이 중국에 축적되었다. 여기에 전기차와 배터리라는 산업의 변화가 찾아왔다.

 

기존 자동차의 경쟁력이 엔진과 변속기에서 나왔다면, 전기차 시대에는 배터리와 전력전자,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의 중요성이 커졌다. 기존 자동차 산업의 역사가 짧았던 중국에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였다.

 

이제 중국 기업들은 더 이상 값싼 자동차만 만들지 않는다.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배터리를 설계하고, 차량용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든다. 머지않아 한국 시장에서도 중국 자동차와 중국 기술을 더욱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중국의 이런 변화를 보면서 한 가지 역설을 생각하게 된다.

 

부족함이 오히려 혁신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이유가 적다. 반대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와 부족한 자원이 함께 존재하면 사람은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경쟁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인공지능 분야에서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고 있다. 고성능 GPU와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여러 제한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전략이다. 첨단 기술은 경제력이자 국가안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견제가 항상 상대방의 발전을 멈추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정반대의 결과를 만든다.

 

필요한 기술을 살 수 없게 되면 직접 만들어야 한다. 필요한 장비를 구할 수 없으면 대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해외 인재와 기술에 의존하기 어려워지면 자국의 인재를 키워야 한다.

 

그 과정은 느리고 실패도 많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기술 독립이라는 훨씬 큰 결과를 얻는다.

 

인간의 역사는 늘 그랬다.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았다.

 

다리가 없으면 배를 만들었고, 바다가 막히면 하늘을 날았다. 계산이 너무 오래 걸리면 컴퓨터를 만들었고, 컴퓨터의 한계를 만나자 다시 인공지능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래서 기술을 완전히 봉쇄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오히려 강한 압력은 새로운 돌파구를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미국의 변화도 생각한다.

과거 미국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나라처럼 보였다. 서부 개척 시대의 청바지처럼 실용적이었다. 세계 곳곳의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생각이 충돌했고, 그 충돌 속에서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졌다.

 

반도체도, 컴퓨터도, 인터넷도 그런 환경에서 성장했다.

미국의 가장 큰 힘은 거대한 경제 규모만이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인재를 끌어들이는 힘이었다. 자유롭게 도전하게 하고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였다. 기존 질서보다 새로운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였다.

 

하지만 강한 나라일수록 자신도 모르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 우위를 지키는 데 집중할 수 있다. 경쟁자보다 더 빨리 뛰는 것보다 경쟁자의 속도를 늦추는 전략에 의존할 수도 있다.

 

물론 국가 간 경쟁에서 견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가장 강한 전략은 상대방의 발을 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빨리 달리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중국과 미국의 이야기로만 끝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한국 때문이다.

한국 역시 한때 철저한 후발주자였다.

 

우리는 선진국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정말 열심히 뛰었다. 기업의 연구원들은 해외 기업과 대학에서 보고 들은 기술을 국내로 가져왔다. 밤늦게까지 연구했고 주말에도 공장과 연구소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지나치게 많은 희생을 요구했던 시대였다.

그 모든 방식을 미화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그 시대에는 따라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자동차도 반도체도 조선도 전자산업도 처음부터 우리가 잘했던 것은 아니었다. 수없이 실패했고 기술을 다시 설계했다. 해외 제품을 분해하고 연구했다. 더 좋은 품질을 만들기 위해 공정을 개선했다.

 

그 축적이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의 관심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어려운 길보다 안정적인 길을 선호한다. 오랫동안 기술을 축적하는 것보다 빠른 성공을 꿈꾼다. 기업을 만들고 제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부를 얻고 싶어 한다.

 

투자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워라밸 역시 잘못된 가치가 아니다.

인간다운 삶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위험을 피하고 안정만 선택한다면 새로운 산업은 태어나기 어렵다.

기술의 성장은 대부분 오랜 시간의 실패를 요구한다.

 

반도체 하나를 개발하는 데 몇 년이 걸린다. 신약은 십 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인공지능 기업도 몇 번의 알고리즘 개선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천 번의 실패가 쌓여 어느 순간 하나의 성공이 된다.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TSMC의 반도체 제조 기술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제조와 공정 기술에 집중한 결과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오늘날 인공지능 산업의 중요한 공급자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십 년 전 누군가가 반도체의 가능성을 믿었다. 당시에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거대한 투자를 결정했고 오랜 시간을 버텼다.

 

그 선택의 결과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 성공이 앞으로도 자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의 반도체 경쟁력에 너무 익숙하다. 세계 최고의 메모리 기업을 두 개나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기술 산업에서 영원한 1등은 없다.

20년 전 중국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당시 누가 중국이 전기차와 배터리, 드론과 인공지능 분야에서 세계의 주요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겠는가.

다음 20년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강하다고 해서 20년 뒤에도 강하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는 새로운 창업 1세대가 필요하다.

 

반도체 산업의 선배 세대가 수십 년 전 미래에 투자했듯이, 지금의 기업가와 연구자들은 인공지능과 로봇, 우주산업, 양자기술, 바이오와 차세대 에너지 같은 분야에서 다음 산업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기업이 성공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대부분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실패 가운데 몇 개의 성공이 한국의 다음 20년을 만든다.

중국이 두려운 이유는 인구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을 만들고 연구소를 세우고 인재를 키운다. 실패한 기술을 다시 개발하고 국가와 기업이 장기적인 목표에 투자한다.

 

그 모든 방식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중국 사회에도 많은 문제가 있고, 기술 발전만으로 국가의 모든 가치를 평가할 수도 없다.

 

그러나 경쟁자의 노력에서 배울 점까지 외면할 이유는 없다.

20년 전 나는 중국을 바라보며 우리가 앞서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 판단은 당시에는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우리가 앞서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중국은 계속 달렸다.

지금 우리가 중국을 바라보며 해야 할 일은 두려워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달리는 것이다.

 

한국에는 여전히 세계적인 제조업이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와 디스플레이가 있다. 뛰어난 엔지니어와 연구자도 많다. 작은 나라지만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 온 경험도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오히려 이런 산업 기반이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소프트웨어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반도체가 필요하고 통신이 필요하다. 센서가 필요하고 로봇이 필요하다. 자동차와 공장, 국방과 우주산업에도 연결된다.

한국은 이런 산업을 이미 가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다시 절박하게 움직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기술은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지 않는다.

산업도 과거의 성공을 보상하지 않는다.

 

오늘 투자하고 오늘 연구하고 오늘 도전하는 나라가 다음 세대를 만든다.

 

20년 전 상하이에서 보았던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었다.

지금의 중국은 세계의 기술국가가 되기 위해 달리고 있다.

그리고 20년 뒤의 중국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20년 뒤의 한국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오늘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안정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도전을 선택할 것인가.

 

남이 만들어놓은 기술을 소비하는 나라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세계에 내놓는 나라로 남을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성공에 대한 자부심보다 미래에 대한 긴장감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변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도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지금, 다음 20년을 위해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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