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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 생각, 에세이

찰나를 영원으로 남기는 일

by Heedong-Kim 2026. 8. 16.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사진이 많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여섯 아들과 두 딸을 키우느라 평생 고단하셨다. 아버지 역시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왔지만,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먹고사는 일만으로도 벅찼던 시절이었다. 카메라를 장만하거나 가족이 단정히 모여 사진을 찍는 일은 사치에 가까웠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는 사진 속에서보다 희미한 기억 속에 더 많이 남아 있다.

 

그나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때는 형편이 조금 나았던 이모 집에 갔을 때였다. 이모 가족과 앞산으로 놀러 가서 찍은 몇 장의 사진이 어린 시절의 드문 기록이다. 우리 가족만 함께 찍은 사진은 어느 휴게소에서 촬영한 한 장이 거의 전부였다. 어디로 가던 길이었는지, 누가 사진을 찍어주었는지는 이제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진 속에는 한때 같은 시간과 장소에 함께 있었던 가족의 모습이 남아 있다.

 

 

사진이 귀했던 어린 시절은 내게 작은 결핍을 남겼다. 그 결핍은 나이가 들수록 사진을 향한 마음으로 변했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다가오는 시간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2000년, 취업 후 첫 월급을 받았다.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내복을 사드리는 것이 흔한 풍경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는 대구 동성로의 카메라 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일본 캐논 필름카메라와 렌즈 세트를 구입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법 비싼 값을 치렀다. 말하자면 바가지를 쓴 셈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억울하지 않았다. 그 카메라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얼굴을 바라보고, 어떤 장면을 선택하고, 그것을 오래 남길 수 있게 해주는 도구였다. 사진이 많지 않았던 사람이 이제는 스스로 사진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에게 카메라를 산다는 것은 따뜻한 기록의 시작이었다.

 

명절이면 카메라를 들고 시골 큰집으로 갔다. 어른들이 모여 앉은 모습과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몇 장씩 찍었다. 큰어머니는 사진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사진을 찍으면 혼이 빠져나간다며 손을 내저으셨다. 카메라를 향해 자연스럽게 웃어주시는 분도 아니었다. 그래도 어느 명절에는 어렵게 온 가족이 함께한 사진 한 장을 남길 수 있었다.

 

그 사진은 기술적으로 훌륭하지 않다. 구도도 반듯하지 않고 표정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눈을 감았고, 누군가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모이기 어려운 사람들이 한 화면 안에 서 있다. 그래서 그 사진은 잘 찍은 사진보다 더 소중하다. 사진의 가치는 완성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 장의 사진은 충분히 귀하다.

 

나는 점차 사진 찍는 일에 빠져들었다. 필름을 맡기고, 현상과 인화를 기다리고, 봉투 속 사진을 한 장씩 꺼내 보았다. 셔터를 누른 순간과 결과를 확인하는 순간 사이에는 긴 기다림이 있었다. 잘 나왔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흔들렸거나 눈을 감았거나 초점이 빗나간 사진도 많았다. 그러나 그 기다림에는 특별한 설렘이 있었다. 결과를 즉시 확인할 수 없는 불편함이 오히려 한 장의 사진을 더 귀하게 만들었다.

 

이후 니콘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하면서 사진의 양은 크게 늘었다. 필름값을 걱정하지 않고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셀카도 찍어보았다. 방송사의 문화 강좌를 찾아가 사진을 배웠고, 좋은 기회로 흑백사진 강좌에도 참여했다. 카메라를 바꾸고 렌즈를 하나씩 늘렸다. 사진집도 몇 권 구입했다. 다른 사람의 사진이 궁금해 사진 커뮤니티인 SLR클럽을 자주 들여다보았다.

 

사진을 잘 찍고 싶었다. 초점과 노출을 익히고, 셔터속도와 조리개의 관계를 공부했다. 구도와 빛의 방향을 살피고, 어떤 렌즈가 어떤 장면에 어울리는지도 고민했다. 그러나 기술을 알수록 사진은 쉬워지기보다 더 어려워졌다. 카메라의 기능은 배울 수 있었지만,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답은 다른 사람이 알려줄 수 없었다.

 

결혼한 뒤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카메라 앞에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더 많은 사진을 찍었다. 아이는 날마다 달라졌다. 어제 할 수 없었던 표정을 오늘 지었고, 오늘 입은 옷은 곧 작아졌다. 아이가 자라는 시간은 기쁨이면서도 아쉬움이었다.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 카메라를 가까이에 두었다.

 

어느 아침, 침대 위에 있는 아이의 모습을 찍었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커튼을 통과하며 부드럽게 퍼졌다. 특별한 조명도 없었고, 정교하게 연출한 장면도 아니었다. 아이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나는 그저 그 순간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셔터를 눌렀다.

 

인화를 맡긴 사진관의 점원이 사진을 보며 내게 물었다.

“이거 정말 집에서 찍으신 거예요?”

 

 

그 한마디가 참 뿌듯했다. 아마도 자연광이 커튼을 지나며 부드러운 조명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빛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사진 속 아이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 기술보다 먼저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시선의 방향을 정했고, 그 시선이 사진에 담겼다.

 

좋은 사진은 좋은 카메라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왜 바라보는지, 그 순간 무엇을 느끼는지가 사진을 만든다. 같은 장소에 서 있어도 사람마다 다른 사진을 찍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메라는 눈앞의 장면을 기록하지만, 사진에는 촬영자의 마음까지 스며든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자랐다. 어느 순간부터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얼굴을 피하거나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나 또한 무거운 카메라와 두세 개의 렌즈를 들고 다니는 일이 버거워졌다. 어깨를 짓누르던 장비는 허리까지 흔들리게 했다. 여행을 떠날 때면 사진을 찍기 위해 장비를 챙기는 것인지, 장비를 운반하기 위해 여행하는 것인지 모를 때도 있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빠른 발전도 사진과 멀어지게 된 이유였다. 스마트폰은 가볍고 늘 손에 있었다. 꺼내는 순간 바로 찍을 수 있었고, 결과도 제법 훌륭했다. 사진은 즉시 보정되었으며 곧바로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었다. 무거운 카메라를 챙기고 렌즈를 바꾸며 노출을 맞출 이유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사진을 거의 10년 동안 놓고 지냈다.

그러나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해서 사진을 향한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빛을 만나면 여전히 한참을 바라보았다. 거리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발견하면 마음속으로 화면을 구성했다. 사람의 얼굴에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면 카메라가 있었다면 어떻게 찍었을지를 생각했다. 사진은 손에서 멀어졌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남아 있었다.

 

사진이란 무엇일까.

 

기술적으로 말하면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필름이나 디지털 이미지 센서에 기록하는 일이다. 뷰파인더로 장면을 확인하고, 프레임의 경계를 정한 뒤, 셔터를 눌러 한순간을 붙잡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사진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어떤 사진은 마음을 움직인다. 어떤 사진은 불편하고, 어떤 사진은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풍경이 아름답고 색이 선명하더라도 달력 사진처럼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초점이 조금 맞지 않고 구도가 불안정한 사진이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한다. 사진은 단순히 현실을 복제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카메라는 오래된 캐논 EOS 5 필름카메라와 캐논 EOS 5D 디지털카메라다. 오랜 시간 내 곁을 지킨 소중한 카메라지만, 최신 장비처럼 모든 상황을 알아서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촬영 조건을 충분히 살피지 않으면 사진은 쉽게 흔들린다. 초점이 빗나가거나 노출이 맞지 않을 때도 있다. 결과를 본 사람은 사진이 별로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럴 때면 생각한다. 내가 좋다고 느껴서 찍은 사진에 반드시 다른 사람의 평가가 필요할까. 내게 소중한 순간을 내 시선으로 기록한 사진이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개인적인 기록으로서의 사진이라면 그렇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없어도 된다. 사진을 찍은 순간의 감정과 기억은 촬영자에게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흐릿한 가족사진 한 장이 타인에게는 평범해 보여도, 나에게는 돌아갈 수 없는 세계의 입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사진으로 다른 사람에게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고 싶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사진에도 문법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화면에 넣고 무엇을 제외할 것인지,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어느 순간에 셔터를 누를 것인지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진다. 촬영자의 의도가 관객에게 닿으려면 관객이 읽을 수 있는 시각적 단서가 필요하다.

 

물론 그 문법은 하나가 아니다.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장르와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현대사진과 포스트모던 예술에서는 단순하거나 낯설고 때로는 황당해 보이는 표현도 허용된다. 기존의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방식 자체가 새로운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사진가의 언어는 빠르게 변하고 끊임없이 진화한다.

 

그러나 사진을 감상하는 대중의 눈과 마음은 그 변화만큼 빠르지 않을 수 있다. 작가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 반복되면 사진은 어느새 그들만의 언어가 된다. 작품에 설명이 필요한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설명 없이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면 소통의 거리는 멀어진다. 새로움과 친절함 사이에서 사진가는 자신의 위치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사진이 꼭 난해해야 깊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이 한 장을 보고 잠시 멈출 수 있다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사진은 충분히 깊을 수 있다. 좋은 사진은 모든 답을 설명하지 않지만, 감상자가 들어올 작은 문 하나는 열어둔다.

 

사진은 현실의 빛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그림과 다르다. 그러나 카메라가 현실 전체를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촬영자는 수많은 장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프레임 안에 넣을 것과 밖에 둘 것을 결정한다. 셔터를 누르기 전의 순간과 누른 뒤의 순간은 버리고, 오직 한순간만 남긴다.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지만, 동시에 촬영자의 선택으로 새롭게 구성된 현실이다.

 

실수처럼 보이는 요소도 감정의 언어가 될 수 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수평선이 조금 기울어졌다고 생각해보자. 반듯하게 교정하면 안정적인 풍경이 된다. 그러나 그 기울어짐을 그대로 두면 화면에 작은 불안과 긴장이 생긴다. 촬영 당시의 흔들리는 마음이 오히려 더 솔직하게 전달될 수도 있다.

 

셔터속도가 맞지 않아 피사체가 흐려진 사진도 마찬가지다. 기술적으로는 실패한 사진일 수 있다. 그러나 흐릿한 잔상은 속도와 움직임을 보여준다. 정지된 화면에 시간의 흐름을 담는다. 선명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역동적이고, 기억처럼 아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완벽함이 반드시 진실한 것은 아니다. 조금 흔들리고, 조금 기울고, 일부가 잘린 사진이 그 순간의 마음을 더 정확히 드러낼 때가 있다. 사진의 기술은 실수를 없애기 위해 필요하지만, 사진의 예술은 때로 그 실수를 의미로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나에게 사진은 지금 이 순간을 영원으로 보내는 일이다.

 

우리는 모든 순간을 지나간다. 사랑하는 사람도 변하고, 아이도 자라며, 부모님의 얼굴에도 세월이 내려앉는다. 자주 걷던 길은 사라지고, 익숙한 집은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아무리 붙잡고 싶어도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사진은 그 흐름에서 한순간을 건져 올린다. 사진 속 사람은 늙지 않고, 사진 속 햇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촬영자는 그 순간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를 작은 화면 안에 남긴다. 그래서 사진에는 눈에 보이는 장면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흔적도 함께 담긴다.

 

어린 시절의 가족사진이 부족했던 나는 이제야 그 의미를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사진이 많지 않다는 것은 단지 과거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때의 표정과 거리, 집 안의 빛, 함께 있던 사람들 사이의 온도를 다시 만날 기회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시 사진을 시작하려 한다.

 

오랫동안 사용한 캐논 EOS 5와 5D에서 벗어나 새로운 카메라를 살펴보고 있다. 캐논 EOS RP를 보다가 EOS R8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곧 후속 모델이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서두르기보다 새 제품과 기존 제품을 차분히 비교한 뒤 선택하고 싶다.

 

하지만 이번에는 카메라를 바꾸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다. 더 좋은 장비로 더 선명한 사진을 얻는 데 그치고 싶지 않다. 예전보다 천천히 바라보고, 왜 이 장면을 남기고 싶은지 생각하며 셔터를 누르고 싶다. 남들이 좋아할 사진보다 내가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

 

영상도 함께 촬영해보고 싶다. 사진이 한순간을 붙잡는다면, 영상은 그 순간 앞뒤의 흐름과 목소리까지 담는다. 여행의 풍경과 가족의 일상, 내가 바라본 세상의 작은 장면들을 영상으로 기록해 유튜브에 올리는 일도 즐거울 것이다. 거창한 작품이 아니어도 괜찮다. 지금의 삶을 성실하게 남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첫 월급으로 카메라를 샀던 젊은 날의 나는 사진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채우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이제 다시 카메라를 들려는 나는 앞으로 잃게 될 시간을 미리 아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은 시간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다만 시간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아름답게 증명한다. 우리가 그곳에 있었고, 누군가를 사랑했으며, 그 순간을 소중하게 바라보았다는 것을 남긴다.

 

셔터를 누르는 시간은 짧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 한 사람의 시선과 마음, 기억과 사랑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남겨진 사진 한 장은 촬영자의 시간을 넘어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찰나는 사라지지만 사진은 남는다.

 

어쩌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랑의 흔적을 빛으로 기록하여, 언젠가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조용히 미래로 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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