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
그리고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것을 더욱 굳게 믿게 해주는 정보에 마음이 끌린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경향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판단과 일치하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그것과 충돌하는 정보는 외면하거나 축소해서 해석하는 태도다. 새로운 사실을 통해 생각을 바꾸기보다, 이미 내려놓은 결론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골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조금 더 쉽게 표현하면 이렇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마음이다.
문제는 확증 편향이 특별히 이상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경험이 많아지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강해질 수도 있다.
경험이 많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상황을 빠르게 판단한다. 처음 가는 길에서는 표지판 하나하나를 확인해야 하지만, 익숙한 길에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고도 운전할 수 있다. 수십 년간 일을 해온 사람은 몇 가지 징후만 보고도 문제의 원인을 짐작한다. 이것이 경험의 힘이다.
하지만 경험에는 함정이 있다.
오래된 경험이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현실을 바라보는 안경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사람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과거의 경험과 맞는 부분만 골라서 바라본다.
그래서 이런 말을 자주 하게 된다.
“나 때는 말이야.”
“옛날에는 이렇게 했어.”
“내가 해봐서 아는데.”
물론 과거의 경험에는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 경험이 오늘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한다.
기술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조직도 변하고, 시장도 변한다. 그런데 우리의 머릿속 판단 기준만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경험은 자산이 아니라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성공 경험은 더욱 위험하다.
실패한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믿는다.
한 번의 성공은 자신감을 준다. 두 번의 성공은 자신의 방법에 대한 믿음을 만든다. 여러 번 성공하면 그 방법을 하나의 법칙처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성공에는 언제나 여러 요소가 함께 작용한다.
능력도 있었을 것이다. 노력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도 있었고, 좋은 조직도 있었으며, 훌륭한 동료도 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운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공의 원인을 자신의 능력으로 설명하고 싶어 한다.
“내가 판단을 잘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남들보다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주식 투자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투자를 시작한 사람이 우연히 상승장에서 큰 수익을 얻는다. 처음에는 자신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세 번 수익이 이어지면 생각이 달라진다. 자신에게 특별한 투자 감각이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 그다음부터는 자신의 판단을 뒷받침해주는 정보가 눈에 잘 들어온다.
자신이 산 종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전문가의 영상은 끝까지 본다. 부정적인 분석은 잘못된 분석이라 생각한다. 좋은 뉴스는 중요한 신호라고 여기지만 나쁜 뉴스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정보는 더 이상 판단을 위한 재료가 아니다. 이미 내려놓은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한 증거가 된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이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우리가 어떤 영상을 몇 번 시청하면 플랫폼은 비슷한 영상을 계속 보여준다.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것이 플랫폼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관심이었다. 몇 개의 영상을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화면에는 비슷한 주장과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콘텐츠만 가득해진다.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생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구나.”
그러나 실제 세상이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니다.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그렇게 편집되었을 뿐이다.
확증 편향은 사람을 바라볼 때도 작동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만든다.
성실한 사람.
무책임한 사람.
똑똑한 사람.
답답한 사람.
적극적인 사람.
믿기 어려운 사람.
한 번 만들어진 판단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그 이후 그 사람이 변해도 우리는 쉽게 판단을 바꾸지 않는다.
성실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실수를 하면 “이번에는 상황이 어려웠겠지”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무책임하다고 판단했던 사람이 좋은 결과를 만들면 “이번에는 운이 좋았겠지”라고 생각한다.
같은 행동을 보면서도 해석은 달라진다.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변한다.
십 년 전의 사람이 오늘의 그 사람과 같을 수 없다.
실력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가치관도 달라진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운영체제는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사람에 대한 판단은 십 년 전 버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관계에서 필요한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사람을 다시 보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 사람을 너무 오래된 정보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 이렇게 자신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확증 편향은 인간의 아주 오래된 본능과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다.
아주 먼 옛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다. 어떤 숲에서 맹수를 만났다면 그 장소를 기억해야 했다. 어떤 열매를 먹고 탈이 났다면 다시 먹지 않아야 했다. 어떤 소리가 위험을 의미했다면 다음에는 더 빨리 반응해야 했다.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고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생존에 유리했다.
빠른 판단은 생명을 지켜주었다.
문제는 우리가 더 이상 구석기 시대의 숲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훨씬 복잡해졌다.
인공지능, 위성통신, 양자기술, 반도체, 글로벌 경제, 복잡한 조직과 사람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정답이라고 보장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런데 우리의 뇌는 여전히 익숙한 답을 좋아한다. 익숙한 방식은 편하다.
이미 알고 있는 방법을 반복하면 실패하더라도 마음은 편하다.
“나는 늘 이렇게 해왔으니까.”
하지만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그 말이 가장 위험한 말이 될 수도 있다.
구석기 시대의 망치는 훌륭한 도구였다. 돌을 깨고, 나무를 다듬고, 사냥을 준비하는 데 충분했다.
그러나 그 망치를 들고 오늘날의 위성통신 시스템을 만들 수는 없다. 문제는 망치가 나쁜 것이 아니다.
망치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는데도 계속 망치만 사용하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종종 경험을 그렇게 사용한다.
과거에 성공했던 방법을 계속 들고 다닌다.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방법을 바꾸지 않는다.
조직이 달라졌는데도 옛날 방식으로 사람을 관리한다.
고객이 달라졌는데도 예전 방식으로 마케팅한다.
기술이 변했는데도 익숙한 도구만 고집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하지만 세상에는 ‘원래’라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은 그 시대에 잠시 가장 잘 작동했던 방식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거대한 변화 앞에 서 있다.
인공지능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고, 문서를 읽고, 분석하고, 정리하는 일을 대부분 직접 했다.
이제는 AI와 대화하며 아이디어를 만들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글을 작성하고, 코드를 만들고, 업무를 자동화한다.
최근에는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AI Agent가 여러 도구를 사용하며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변화 앞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는 아마 이런 말일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잘해왔는데 굳이 바꿀 필요가 있을까.”
그 말은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잘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은 그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잘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더 중요하다.
새로운 도구가 등장했다고 해서 과거의 경험이 모두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험은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AI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무엇이 중요한지는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여러 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결국 경험과 통찰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경험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경험을 절대화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능력은 더 많이 아는 능력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각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중요하다.
어제의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랫동안 믿어온 생각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자신이 존경했던 사람에 대한 판단을 바꾸는 것도 어렵다. 오랫동안 사용했던 업무 방식을 내려놓는 것도 불편하다.
하지만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였다는 증거다.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도 생각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수도 있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내 생각과 반대되는 정보는 무엇인가.”
“내가 틀렸다면 어떤 증거가 나타날까.”
“내가 이 사람을 너무 오래된 모습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과거의 성공이 지금의 판단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내가 고집하고 있는 것은 원칙인가, 단순한 습관인가.”
이 질문들은 불편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생각은 조금씩 넓어진다.
확증 편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편향이 없다는 착각을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본다.
그러므로 가끔은 그 안경을 벗고 렌즈를 닦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안경으로도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는 많아진다. 경험도 많아지고 성공과 실패의 기억도 쌓인다. 그것은 분명 귀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그만큼 오래된 확신도 많아진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확신이 아니라, 어쩌면 조금 더 많은 의심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의심하라는 뜻이 아니다.
내 생각을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내 경험이 항상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내가 믿었던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이 한 문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계속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계속 배우는 사람은 쉽게 늙지 않는다.
몸의 나이는 시간에 따라 늘어난다.
하지만 생각의 나이는 선택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바라보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오래된 믿음을 수정하고, 필요하다면 자신이 익숙하게 사용하던 망치를 내려놓는 사람.
그 사람은 여전히 미래에 살고 있다.
변화가 빠른 시대에 가장 위험한 사람은 경험이 없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경험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자신의 경험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일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오래된 성공보다 새로운 질문 하나가 더 중요하다.
“혹시 내가 틀렸을까?”
이 질문을 할 수 있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그리고 배우고 있는 동안, 우리는 아직 과거에 갇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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