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말이 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이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이 문장은 여전히 인간과 사회를 꿰뚫는 통찰로 남아 있다.
나는 여기에 조금 다른 해석을 덧붙이고 싶다.
“잘 되는 집은 대체로 비슷하고, 안 되는 집의 사정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잘 되는 회사는 천차만별이고, 안 되는 회사의 사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이 문장에는 가정과 조직의 본질적인 차이가 숨어 있다. 집은 사람의 관계로 이루어지고, 회사는 시스템과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되는 이유’와 ‘안 되는 이유’의 패턴이 서로 반대가 된다.
1. 잘 되는 집의 공통분모
잘 되는 집은 특별한 비법이 없다. 서로에게 예의가 있고, 말이 오가며, 하루의 일상을 함께 나누는 그 평범한 순간들이 집의 뼈대를 이룬다. 부모는 자식을 존중하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며,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는 균형이 있다.
경제적인 안정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돈이 많아도 불안한 집이 있고, 넉넉하지 않아도 평온한 집이 있다.
잘 되는 집의 공통점은 단 하나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태도다. 말이 오가는 집, 웃음이 있는 집, 식탁이 따뜻한 집. 그런 집은 대체로 비슷하다.
2. 안 되는 집의 천차만별한 이유
반대로 안 되는 집은 각자 다른 사연을 안고 있다.
어디선가부터 소통이 끊기고, 오해가 쌓이며, 작은 균열이 커진다.
누군가는 부모의 무관심을 탓하고, 누군가는 자식의 불효를 이야기한다. 경제적 파탄, 질병, 외도, 폭력, 중독, 무책임 — 그 원인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공통된 결과는 있다.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가족은 하나의 팀이 아니라, 서로를 탓하는 조각난 존재가 된다.
누가 잘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사라졌을 때, 그 집은 이미 안 되는 집이 된다.
3. 잘 되는 회사의 천차만별한 길
회사의 세계는 다르다. 잘 되는 회사들은 모두 각자의 길을 걷는다.
어떤 회사는 창업자의 비전으로, 어떤 회사는 고객 중심의 철학으로, 또 어떤 회사는 탁월한 기술력으로 성공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성공 방정식은 다음 세대에선 통하지 않는다.
1990년대의 성공 공식을 2020년에 그대로 가져다 쓰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스티브 잡스의 창의성, 빌 게이츠의 실행력, 제프 베이조스의 집요함, 일론 머스크의 도전정신 — 그들의 성공을 흉내낼 수는 있어도 복제할 수는 없다.
잘 되는 회사란 결국,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내는 회사다.
그 길은 남이 만들어둔 길이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 스스로의 흔적을 남기는 과정이다.
4. 안 되는 회사의 비슷한 결말
하지만 이상하게도, 안 되는 회사들의 패턴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회의는 길어지고 실행은 늦어지며, 책임은 분산되고 변화는 두려워한다.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해왔어.”
이 한마디가 조직의 생명력을 갉아먹는다.
한때 잘 나가던 기업도, 혁신의 불씨를 잃는 순간 서서히 무너진다.
시장의 변화를 ‘위기’로만 보고, 내부의 안정을 ‘안전’으로 착각할 때, 조직은 퇴화한다.
위기의 본질은 외부에 있지 않다. ‘변화하지 않으려는 내부’에 있다.
5. 변화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집과 회사
잘 되는 집은 언제나 불편함을 받아들인다.
자식이 성장하면서 부모의 가치관과 다를 때, 갈등이 생긴다.
하지만 그 갈등을 통해 서로를 다시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어질 때, 그 집은 더 단단해진다.
잘 되는 회사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술, 세대의 차이, 시장의 격변 — 이런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맞이하는 회사가 살아남는다.
‘우리가 늘 해왔던 방식’이 아니라, ‘지금 필요한 방식’을 찾으려는 태도, 그것이 바로 변화에 대한 존중이다.
6. 시스템과 관계의 균형
가정이 관계의 문제라면, 회사는 시스템의 문제다.
가정은 사랑이 식을 때 흔들리고, 회사는 프로세스가 경직될 때 흔들린다.
그렇다고 둘이 완전히 다르진 않다.
둘 다 결국 ‘신뢰’ 위에서 유지된다.
신뢰가 사라지면, 가정에선 대화가 멈추고 회사에선 보고가 멈춘다.
신뢰가 회복되면, 가정은 웃음을 되찾고 회사는 성과를 되찾는다.
관계든 시스템이든, 신뢰를 지탱하는 힘은 투명성과 진정성이다.
7. 지속가능한 성장의 조건
집이든 회사든, 오래 가는 곳에는 ‘지속가능한 리듬’이 있다.
무리하지 않지만 멈추지도 않는 리듬, 힘을 주되 과하지 않은 균형.
가정은 하루의 대화를 통해 그 리듬을 맞추고, 회사는 주간 회의와 실행으로 그 리듬을 만든다.
결국 중요한 건 ‘루틴’이다.
매일의 작은 실천이 쌓여, 신뢰와 성장의 리듬을 만든다.
거창한 전략보다 꾸준한 일상의 반복이 회사를 살리고, 가족을 지킨다.
8. 결론 – 닮은 듯 다른 두 세계
가정과 회사, 두 세계는 닮은 듯 다르다.
집은 비슷한 모습으로 행복해지고, 회사는 다른 모습으로 성공한다.
반대로 집은 제각각의 이유로 무너지고, 회사는 비슷한 이유로 멈춘다.
결국 모든 성공의 본질은 ‘살아 있으려는 의지’다.
가정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회사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로 살아남는다.
잘 되는 집은 ‘사람의 마음’을 지키고, 잘 되는 회사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다.
그리고 그 둘의 교집합에는 언제나 ‘성장’이 있다.
서로가 조금씩 나아지려는 마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려는 의지, 그것이 잘 되는 집과 잘 되는 회사를 잇는 가장 단단한 연결선이다.
결국, 잘 되는 집도 잘 되는 회사도 ‘완벽’해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려는 불완전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오래 버티고, 깊이 단단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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